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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3)

지난 7일 오전 1시30분 충남 천안시의 천안동남서 문성파출소에서 당직 근무 중인 이태영 경사는 천안 사직동의 남산 중앙시장 경비원으로부터 "10대 절도범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장에 도착해 보니 때가 절은 옷을 입은 조그만 학생이 검은 시장바구니를 든 채 경비원에 잡혀 덜덜 떨고 있었다.

 

바구니 속에는 한복 한 벌이 들어 있었다.

 

중앙시장 상가 문이 닫히기 전 숨어 들어갔다가 한 가게에서 한복을 훔쳐 상가 셔터를 열고 나오려다 경비원에 들킨 것이다.

 

파출소로 연행해 조사하니 놀라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어렵게 생활하던 중 겨울 이불과 먹을 것을 훔치려 상가에 들어갔으나 큰 이불은 들고 나오기 어렵고 훔칠 음식은 없어 생각 없이 한복을 들고 나오던 중이었다.

 

중학생인 A군(13)은 몸이 아픈 할머니(82), 그리고 두 남동생(11ㆍ8)과 천안 목천읍의 한 농가주택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가 읍사무소 보조금으로 받은 10여 만원이 이들 네 식구의 생활비 전부다. 할머니는 난방비를 아끼려고 보일러를 항상 '외출'로 놓는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방바닥은 얼음장같이 차가웠지만 엷은 여름이불 뿐이었다.

 

"너무 추워 바람이라도 막아 보려고 이불 두 채의 끝을 빨래집게로 물리고 동생들과 그 속에 들어가 생활했어요."

 

이 경사는 같은 순찰조인 최영민 순경과 함께 그날 아침 A군의 집을 찾았다. 난방 기름은 떨어져 있고 연로하고 몸도 편찮은 할머니는 말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남동생들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몇 개월째 씻지 않은 상태였다. 입은 옷도 세탁하지 않아 때국물이 흘렀고 몸에서 악취가 풍겼다. 무엇보다 이들 네 식구의 긴급 구조가 필요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파출소 직원들이 급한 대로 지갑을 열었다. 겨울이불과 라면 5상자를 집에 들여놓고 돈 20만원을 마련해 전했다. 최 순경은 비번인 날 아이들을 목욕탕에서 씻기고, 이발소에도 데려갔다. 그런데 A군이 동생들과 달리 이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머리를 자르면 집 난방이 안 돼 더 춥다"는 게 이유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최 순경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A군 사연을 들은 절도 피해자인 한복가게 주인은 선처를 요구했고 이불 한 채를 건넸다.

 

이들은 난방기름도 구입해 당분간 큰 추위는 안 겪을 듯하다. 이 경사는 "학교 무료급식이 시행되는 마당에 어떻게 이런 가족이 방치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겨울이 지나고 또 찾아올 겨울을 이들이 어찌 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A군 부모는 오래전 이혼하고 각자 재혼해 살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천안 거주)와 같이 주민 등록이 돼 있지만 시골 할머니 집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제주와 먼 곳의 사연이지만 그래도 우리네 세상사 이야기다. 우리 한국땅 어딘가에선 A군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동·청소년들이 아직도 많다. 그들은 이 추운 겨울날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를 퍽이나 부러워 한다. 물론 그 제주에도 아직 우리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지 않는 차가운 방구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 민족의 명절 설이 다가오는 이 시기만이라도 춥고 배고픈 우리의 이웃들을 다시금 돌아봤으면 한다.

 

☞조한필은? =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즈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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