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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27) ···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천행(天幸)

‘명량’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꼭 봐야 할 영화가 돼 버렸다.

 

5000만명 중 1500만명이 이 영화를 봤다. 초고령층과 영유아를 빼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본 꼴이다. 이 영화 한 편이 온 국민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을 되돌아 보는 계기를 갖도록 했다.

 

명량해전은 충무공에게도 벅찬 전투였다. 그는 난중일기에서 이 날의 승리를 “이는 진실로 천행(此實天幸)”이라고 결론지었다. 13척으로 왜선 133척과 대적했다. 좁은 물목이라 가능했다.

임진왜란 발발이후 연전연승을 거뒀던 충무공이지만 명량해전은 두려웠다. 전력상 너무 열세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전투였다. 부하들을 혹독하게 다그쳤다.

거제현령 안위가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왜선에 머뭇거렸다. 이순신이 다가가 소리쳤다. “안위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물러나 도망간다고 살 것 같으냐.” 중군장 김응함에겐 “네가 중군장으로 대장(통제사)을 구하려 하지 않으니 그 죄를 면할 듯싶으냐. 당장 처형해야 하지만 형세가 급하니 우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마”라고 질타했다. 이 말을 듣자 두 사람은 적진으로 돌진했다.

갑자기 적선 3척이 안위를 에워싸며 공격했다. 충무공이 배를 돌려 구출에 나섰다. “안위 배가 죽기를 각오하고 마구 쏘아댔고(殊死亂擊), 내 배도 빗발치듯 어지럽게 쏘았다(如雨亂射).” 왜선 30여 척이 침몰했다. 나머지 100여 척은 퇴각했다.

충무공은 항상 전력상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전투를 벌였다. 불리한 상황에서 싸움을 벌인 건 명량이 유일했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한 후 딱 두 달 만이다. 전라도 해역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려는 왜적을 막으려면 피할 수 없는 전투였다.

왜 왜적들은 한 번의 패전에 기죽어 ‘약체’ 조선 수군을 더이상 공격하지 않았을까. 왜 충무공이 다시 판옥선과 무기를 만들어 기사회생할 겨를을 줬을까.

명량해전과 함께 그보다 9일 전 있었던 직산전투가 왜군의 승세를 꺾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천안 두정동과 직산역 사이에서 명나라군에 패배한 왜 육군은 서울 진격을 포기하고 남하했다. 왜 수군이 애써 이순신을 돌파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왜군의 진격이 막힌 것이다. 당시 조선으로선 진실로 천행이었다.

돌이켜 보면 임진왜란(1592년 음력 4월 13일)이 터졌을 때 충무공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천행이었다. 전쟁 발발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정읍현감(종6품)에서 일곱 단계나 뛰어올라 전라좌수사(정3품)가 됐다. 유성룡은 물론이고, 당시 조정 대신들이 사람 보는 안목은 있었다. 후일 원균을 두둔했던 우의정 이산해도 그를 추천했다.

충무공은 부임하자마자 왜를 가상의 적으로 삼아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성을 보수하고 무기를 점검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었다. 거북선 제작도 이때 시작했다. 왜 수군의 근접백병전술을 무력화시킬 비밀병기였다. 4월 12일 거북선에 화포를 싣고 나가 사격훈련을 마쳤다. 전쟁이 터지기 하루 전 1년여에 걸친 전투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다. 어떻게 이처럼 타이밍이 절묘할까.

그러나 임진왜란 연구자들은 연이은 해전 승리를 요행으로 보지 않는다. 고려 말부터 화포 제작 기술이 발전을 거듭했고, 40년 전 이미 왜선보다 우수한 판옥선이 등장했다. 또 탁월한 지휘관 이순신을 뽑아 내세우는 발탁 인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됐다. 천행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명량2로 이어집니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스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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