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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의 '아버지로 살기, 아버지로 죽기'(2) ··· 유복자 콤플렉스

나에게 아버지는 없었다.

 

태어나기를 버림받은 이름으로, 유복자로 태어났으니 아버지란 존재를 접해본 경험이 없다. 내게 아버지란 지워진 존재였다. 분명 존재하기는 했었으나 영원히 사라져버린 전설 속의 존재일 뿐이었다. 몇 장의 사진이나 유품들이 남아있어 고대 잉카제국이나 그리스처럼 실존을 증명하고 있기는 했지만, 내게 아버지란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이상향일 수밖에 없었다. 상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는, 지워진 존재였다.

 

내게 아버지는 그리움이었고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갈증이었지만, 아버지란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이기도 했다. 유복자 콤플렉스. 아버지를 겪어보지 못한 아들이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갖는 두려움. 그것은 나의 무의식과 의식을 지배하는 암세포와 같은 것이었다. 무한 자가증식을 통해 결국 나를 죽이고, 자기도 죽을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자라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정황상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들이란 다투면서 배우고 크는데, 아이들의 다툼 뒤에는 항상 어른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의 부모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로부터 공격당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자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 아이를 공격한다. 그 공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깨우침, 타이름 등 간접적이면서 소극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나무람, 욕설, 체벌, 폭행 등의 직접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지만 후자의 경우는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줘 아버지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갖게 한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 나는 남의 아버지로부터 엄청 혼이 났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클 수는 없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럴 개연성이 충분하다. 나는 그 누구보다 개구쟁이, 말썽쟁이에다 천덕꾸러기였으니까.

 

기억할 수 없는 남의 아버지로부터의 공격. 나는 그것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내게도 아버지가 있어 나를 보호해줬다면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애초부터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아버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으니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밖에.

 

아버지로 산 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남자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컸고, 살았고, 살고 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에게도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보다 아랫사람인데도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는 쩔쩔맨다.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가장 애를 먹었던 것도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아닌 존재들, 예컨대 어머니나 할아버지, 삼촌, 기타 등등은 두렵지 않았다. 학교에서 내쫓기는 것도, 심지어는 교도소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란 존재는 두려웠다. 아버지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반응과 두려움은 극복할 수 없는 콤플렉스였다.

 

그러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얼마간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남의 아버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보다 남의 아버지로부터 나의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남자는 약하지만 아버지는 강하다란 말도 성립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유복자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도 나를 제어하고 지배하고 있다. 아마도 죽는 그 순간까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성준은?

 

=제주 출생. 제주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단국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작가회의, 단국문인회 회원이다. 제주와 경기도에서 20여년 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시인으로도 등단,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 <나를 위한 연가>, <발길 닿는 곳 거기가 하늘이고 세상이거니> 등의 시집을 펴냈다. 최근엔 창작 본풀이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와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를 내기도 했다. <이청준과 임권택의 황홀한 만남>, <이야기로 풀어가는 우리 시조>, <읽기만 하면 기억되는 고사성어 365>, <글쓰기의 이해와 활용>, <통섭의 자리에 서서> 등 다양한 전문서적을 펴내기도 했다. 1년 전 고향 제주에 돌아와 제주 관련 글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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