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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경의 공감(共感)통신(3)...그 파괴성을 경계한다

 

   
 

 

영토 문제를 둘러싼 한·일 및 한·중 간의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그 답답한 분쟁을 지켜보다 문득 한권의 책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2003년에 출간된 『위로(치유)하는 내셔널리즘-풀뿌리 보수주의 운동의 실증연구』라는 책이다. 이유가 있다. 2001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의해 대표되는 일본의 풀뿌리 내셔널리즘 운동이 일본 정치의 최근의 우경화 경향과 더불어 다시 부각되어 확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 중의 한 명인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말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지부활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관해 불안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공허함과 소외감을 일본인으로서의 프라이드로 메꾸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의 공동체인 ‘국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요 멤버 중의 한 명이었던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전쟁론』(1998)에서 현대 일본사회에 만연하는 자기중심주의, 모럴의 저하, 사회적 고립감의 증대 등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공성의 재건을 지향하는 방법으로 내셔널리즘을 주장하였다. 주목할 대목이 있다. 그 방법으로 자기중심주의의 대항가치가 되고, 공공성의 주체로 설정되고 있는 것이 NGO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시민사회 그룹이 아니라 오직 ‘국가’라는 점이다. 그가 보기에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의 책임은 부패한 관료나 정치가에게 있지만 국가는 국민을 배반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다. 고바야시 요시노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일반 참가자들도 관료와 정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국가는 신성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국가'란게 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일반 참가자들은 자칭 ‘보통 시민’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보통’이 의미하는 바는 60,70년대의 ‘새로운 사회운동’이 내걸었던 ‘보통 시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예컨대 일본의 문화인 그룹이 중심이 돼서 1965년에 결성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이 주창했던 ‘보통’이란 표현은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인식틀과 당파성, 그리고 배제의 구조를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 ‘보통 시민’이었던 것이다. 반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멤버들이 스스로 일컫는 ‘보통 시민’은,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불안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통’이 아닌 사람들을 발견해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보통 시민’이 아닌 것은 좌익, 아사히 신문, 한국, 북한, 중국 등이다. 자신들에 관해서 ‘보통 일본인’이 아니라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좌익, 아사히 신문, 한국, 북한, 중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가 ‘보통’이라는 표현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보통 시민’을 적극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때문에 오구마 에이지는 안심했다. 배제의 논리 외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운동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저조해짐에 따라 풀뿌리 내셔널리즘의 운동도 활기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오구마 에이지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들이 일본 정치의 우파적 경향을 선도하는 세력이 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파 포퓰리스트의 지지기반이 되고, 결과적으로 마이너리티(소수)를 억압하고 국제관계의 악화를 불러오는 정치적 세력의 기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일본사회에서 이질적인 소수파라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그들은 도시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더욱이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우파적 사회그룹과 정치그룹이 소멸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낳은 사회적 토양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장기적인 불경기로 인한 초조함, 사회로부터의 고립의 원인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젊은 층이 내셔널리즘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적으로뿐 아니라 국제관계면에서도 그렇다. 세계대전을 거친 인류사는 이미 그 내셔널리즘의 파괴성을 명백히 목도했다. 내셔널리즘을 출현시키는 사회적 구조에 관한 경각이 사라져선 곤란하다. 그런 사회를 개혁하는 방편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손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다시금 영토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이라면 내셔널리즘에 대한 경각과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

☞나일경?=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쳤다. 이어 일본으로 유학, 일본 게이오 대학(慶応義塾大学)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생활이 16년여다. 현재는 일본 나고야의 추쿄(中京)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정치와 정치이론 및 시민사회론을 전공, 강의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서울 신촌에 무대를 둔 풀뿌리사회지기학교의 교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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