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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73주년 기획(3)] 한국판 게르니카, '여순사건' 강종열 화백을 만나다

 

“오늘은 드디어 그림이 완성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캔버스 속 이들은 역사가 살아있고, 나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한 더 이상 죽은 자들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는 전령으로 부활했습니다. 신이시여, 이제 당신이 내린 명을 완수했습니다.”

 

‘존엄, 여수의 해원(解冤)’ 전시장 곳곳에 적혀있는 작가노트의 일부다.

 

전남 여수의 한 바닷가가 배경인 그림이다. 겁에 질린 마을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 양쪽에는 집이 불타고 있고, 곳곳에는 시체들이 널려있다. 그 옆엔 확인 사살을 위해 총을 든 군인들이 어슬렁거린다.

 

여수지역에서 활동하는 강종열 화백(70)이 장장 3년 간 혼을 실어 그려낸 ‘여순사건’이다.

 

강 화백이 담고자 한 것은 여순사건의 참상이다. 공포, 슬픔, 원통함 등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겪은 역사적 사실이다. 작품에는 여순사건 당시 상황,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가족들이 마주했을 73년 동안 겪어온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두운 색채는 여순사건의 한을 대변하는 듯 하다.

 

가로 14.5m, 세로 1.9m에 달하는 이 대작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대표작 게르니카(1937년)를 떠올리게 한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에서도 스페인 내란 중 1937년 4월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독일 비행기가 이 마을을 맹폭, 2000여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었다.

 

강 화백은 게르니카의 두 배에 이르는 크기의 이 작품을 위해 5년 전부터 자료수집과 스케치를 하고,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작품명으로 도시의 이름을 달아낸 피카소와 같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을 널리 알리고자 한 바람을 담았다.

 

 

 

◆ 치열하게 고민했던 고통의 3년 ... "희생자 고통 느끼려 자화상 그리기도"

 

“그림 하나하나 보면 다독거려주고 싶고 그래요. 당신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 

 

강 화백은 3년을 고통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역사의 원통함을 붓터치로 모두 표현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림 속 희생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겨울엔 차디찬 맨바닥에서, 여름엔 모기가 떼지어 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자신이 죽음과 고통을 느껴봐야 죽음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는 ‘사살된 남자’라는 자화상을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작업을 한창 하다보니 잠에 들면 시체가 꿈에 나타나기도 했어요. 심지어는 내가 나무에 시체로 걸려 있는 모습도 나왔습니다. 하루에 1~2시간 밖에 못 잤죠. 그뒤로 내가 시체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자는 마음으로 나 자신이 죽은 모습을 그렸더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두려운 감정이 사라져 붓질도 자신있게 됐어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망연자실한 얼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시신의 얼굴 등 인물 자체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당시 사회상황을 현재도 느낄 수 있도록 살려내는 게 강 화백이 생각하는 그림의 역할이었기 때문. 

 

“하루에 정해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어요. 이를 완벽하게 다 쏟아부으면 집으로 돌아갈 힘도 없는데 묘한 느낌이 들어요. 하루는 작업실에서 집으로 퇴근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어요. 아직도 그 감정이 생생해요. 모든 것을 씻어내려버리는 눈물이었는지 이후엔 간만에 4~5시간을 잘 정도로 편안했어요.” 

 

 

◆ 73년 만에 악수하는 군인과 민간인 ...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

 

그가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화해와 용서’다. 이들의 용서와 화해없이는 여순의 진정한 해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

 

이 그림 가운데에 있는 군인과 민간인이 악수를 하는 장면이 그 메시지를 명확히 한다. 주변 사람들은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며 ‘화해를 못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았느냐’고 말하는 듯 울면서 기도하고 있다. 

 

“여순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야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잘못된 이념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건이죠. 그런데 73년이 지난 지금도 좌우 대립에 의해 자손들이 서로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잖아요. 서로 마주보고, 악수하고,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앞으로도 갈등이 계속 될 수 밖에 없어요. 관람객들도 작품들을 보면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물음을 던져봤으면 합니다.”

 

여순사건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작품들이 강 화백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목탄을 이용한 작품이 나오기도 했는데, 서글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목탄화는 강렬한 색채는 사라졌지만 각기 다른 속도감 있는 선들로 탄생돼 전시 분위기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제주에도 4.3과 관련된 좋은 작가들이 많아요. 여순을 다룬 작품이 탄생한 시기는 조금 늦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림에 의미가 깃들면 힘이 생기니까요.” 

 

 

 

강 화백이 그린 8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 이번 전시는 지난 19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여수엑스포국제관 B관 1층 전시장에서 이뤄진다.

 

동백꽃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강 화백은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 다수의 개인 초대전에 참가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이번 전시를 포함해 100회의 개인전, 600여회의 단체전, 40여 회의 아트페어에도 참여했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과 다수 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동서미술상, 순양예술상, 대한민국 미술인상을 받기도 했다. 강 화백의 작품은 로마교황청의 바티칸성당, 필리핀 대통령궁, 동티모르 대통령궁, 워싱턴 시립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에도 소장돼 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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