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김종민 전 4.3중앙위 전문위 강연 "군법회의 수형인 적법절차 없었다"

4.3 68주기 추모주간 행사가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에서도 추모강연 열기가 일었다. 제민일보 기자 재직시절 '4.3은 말한다' 집필진인데다 4.3중앙위 전문위원을 맡았던 김종민 전 위원이 나섰다.

 

그는 "4.3사건 시절 대량학살 사태를 초래한 책임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책임"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경 제주4.3희생자 및 피해자 유족회와 제주출신으로 뭍지방에 사는 제주인의 모임인 '육지사는 제주사름'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가톨릭청년회관 3층 바실리오홀에서 김종민 전 4.3 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을 초청,  '다시 4.3을 말한다'는 주제로 제주4.3 68주년 기념 강연을 열었다.

 

강연회에는 강종호·이재윤·허상수 재경 4.3유족회 공동대표를 비롯한 재경 4.3유족과 도민, 그리고 고시홍 소설가, 김규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의장, 김승호 전태일 노동대학 대표, 양문흠 동국대 명예교수,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 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 양윤모 영화영론가 등 사회각계 인사를 포함하여 100여 명이 참석, 4.3의 실상과 미해결의 현안 과제들에 대해 강의를 듣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종호 재경 4.3유족회 공동대표는 여는 인사에서 3살에 강제징용에 끌려간 아버지를 잃고 재가한 어머니와 헤어져 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8살에 몽둥이를 들고 초등학교에 모이라 하여 '폭도'로 찍힌 두 사람을 죽이는 데 가담하고, 곧바로 당시 14살이었던 삼촌의 행방을 대지 못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총살당한 후 '역사적인 고아'가 되어 살아온 통한의 삶을 증언했다.

 

그리고 4.19이후 4.3진상규명동지회 활동 이후 4.3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그간의 과정을 회고하면서, 유족들이 그동안 억울한 죽음에 대한 명예회복만 얘기했지만 이제는 배.보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운동을 벌일 것임을 밝히면서 사회각계의 지지를 호소했다.

당면 현안은 트라우마 센터 건립과 군법회의 수형인 문제 해결

김종민 전문위원은 "4.3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4.3이 4.3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탄압의 국면, 저항의 국면, 그리고 그런 탄압과 저항을 무색케하는 엄청난 수난의 국면이 겹쳐지면서 7년 7개월 이어진 것이 4.3이었다."고 4.3의 개요와 성격을 요약했다.

 

김 위원은 11살에 부모와 동생들을 잃고 혼자 살아 남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내가 15살만 됐어도…"라고 말하는 (15살 정도의 완력이 있었으면 집이 다 타기 전에 시신을 수습해서 묻을 수 있었다는 뜻) 어떤 유족의 사례를 얘기하면서 이제라도 트라우마 치유센터가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위원은 또 당시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불에 타 폐허로 변해버린 제주도를 지금처럼 복원해낸 어르신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그동안 일부 극우세력들이 "군법회의 수형자들은 당시에 죄가 인정된 것이니 희생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그간 재판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항들을 설명하고 당시 사형 선고를 받았음에도 육지에서 경찰로 있었던 경우, 군법회의 기록의 부재, 당시 9연대 관계자와 경찰의 증언 등 여러 근거를 들어 "그 당시 법에 따라 군법회의 자체가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은 당시 갓난이부터 노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는 초토화 국면에서 왜 혐의가 있다는 젊은이들은 굳이 군법회의라는 형식을 거쳐 육지 형무소까지 싣고 갔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는 법치국가라는 대외적 이미지를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 수립 후에도 미군이 한국 군·경찰 작전 통제

주요 쟁점 질문에서도 김 위원은 초토화작전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우선 한민당과의 결별, 총리 국회인준 실패, 반민특위 구성·활동, 미국의 원조 지연 등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이승만 정권이 4.3을 극적인 반전의 계기로 이용하려 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제주도 반도들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라. 그래야 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제시했다.

 

 

아울러 "당시 미국은 소련과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유럽에 집중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놓고 국무부와 국방부가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결국 철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시급히 사태를 평정하려고 초토화 작전을 밀어부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미군정 시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협정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남한의 군과 경찰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4.3학살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초토화 작전 개입과 관련해서는 당시 작전을 수행한 송요찬을 포상하라는 서한을 보낸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육지 사는 제주사름' 관계자는 "향후 2018년 4.3 70주기를 중요계기로 보고, 군법회의 수형인들의 법적 투쟁, 4.3 당시 및 그 이후의 유족·도민의 삶에 대한 연구 등 진상규명 활동, 유족에 대한 피해 배·보상, 미국의 책임 인정, 4.3의 역사적 자리매김 등을 과제로 삼아 4.3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