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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34) ... 모질디 모진 운명, 그리고 전율

 

1597년 음력 4월 1일 충무공 이순신은 한 달여 간 심문을 받던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경남 초계(합천군)에 있던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처분이 내려졌다. 8월 2일까지 네달 간 백의종군했다. 백의종군은 군인이 계급 없는 백의(白衣) 신분으로, 군대 일에 종사(從軍)하는 걸 말한다. 권율의 군사자문 역할을 한 걸로 보면 된다.

 

석방 첫날부터 술을 들고 인사 오는 지인이 많았다. 이순신은 연일 취했다. 난중일기에 “정(情)으로 권하며 위로하기에 사양할 수 없어 몹시 취했다…술병째 가지고 와서 함께 취하며 위로해줬다”고 적었다. 낮술도 했다. “일찍 길을 떠나 오산에 이르니 술을 준비해 장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취하도록 마시고 길을 떠났다.” 원수 같은 왜적이 다시 쳐들어왔는데 제 역할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을 것이다.

 

백의종군길(路)이 지난달 말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에 의해 고증됐다. 한양을 떠나 충남·전남북·경남에 이르는 640㎞, 긴 여정이다. 경남(161㎞), 전남(123㎞) 구간은 3~6년 전 해당 지자체에 의해 이미 고증·정비돼 충무공의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데 활용됐다. 이번에 수도권과 특히 현충사가 있는 충남 구간이 밝혀진 건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백의종군길 이순신은 큰 사건을 겪는다. 본가가 있는 아산에 도착, 감옥에서 풀려난 아들을 보러 순천에서 바닷길로 올라오던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선상에서 돌아가신 채 고향에 도착했다. 충무공은 그날의 참담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어머니 장례를 끝까지 치를 순 없었다. 의금부 관리가 길을 재촉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못하구나.” 두 형이 먼저 작고해 상주가 된 충무공은 백의종군하면서 조문을 받는 기구한 운명이 됐다.

 

아산 배방읍 중리(맹씨행단 인근)를 지나 광덕산을 넘으니 천안군수가 광덕면 보산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한양 갔다 내려오던 임천군수를 만나 조문받고 공주 일신역(신관동)에서 잤다. 밤비가 내렸다.

 

이순신은 백의종군길 겪은 일을 난중일기에 세세히 적었다. 그러나 칠천량해전(7월 16일)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한 데 대한 애통함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던 날(8월 3일)의 착잡함은 담지 않았다.

 

 “맑음. 이른 아침에 선전관이 뜻밖에 들어와 교서를 주며 당부하는데, 곧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상중인 사람에게 관직을 내리는 기복수직교서(起復受職敎書)였다. 교서는 왕(선조)의 사과문과 다를 바 없었다.

 

“지난번 그대의 직함을 갈고 백의종군토록 한 것은 사람(왕)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이같은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尙何言哉)” 할 말이 없다는 말을 두 번 반복했다.

 

“그대를 상복을 입은 채로 다시 기용해 옛날같이 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부하를 어루만지고 도망간 자들을 불러 단결시켜…군의 위엄을 떨치게 하라…그대가 나라 위해 몸을 잊고 나아감은 겪어봐 아는 바이니 구태여 무슨 말을 길게 하리오?” 왕의 사과를 받은 신하 심정은 어땠을까?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그날의 충무공을 대변했다.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그는 명량과 노량진에서 운명과도 같은 전투를 치른다.

 

☞조한필은?

 

=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스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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