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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시평세평(3) ··· 따뜻한 가슴으로 내려놓으시길

# 별도봉의 어귀에 들어서며

 

아직 어스름한 새벽의 별도봉 산책로.

 

얼굴을 복면마스크로 알카에다처럼 중무장한 여자와, 팔을 나치처럼 위아래로 흔드는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잠시 후 주파수가 다른 두 개의 전파가 교차한다. ‘국정원의 내란음모 사건’ 이 ‘우리가락 좋을시고’를 타고 흐른다.

 

국정(國政)과 국악(國樂)의 크로스오버 앙상블에 배가 고파 우짖던 새들이 그만 자기 곡조를 놓치고 뚝 울음을 그친다.

 

자연의 소리가 전파의 소리에 제압당해 소멸한다.

 

 

 

# 별도봉의 둘레길을 걸으며

 

별도봉의 해안 단애는 감히 태평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경승이다.

 

발아래에 산지포를 에워싸서 10년 대역사 끝에 완공된 저탄소 녹색항만(Green Port) 제주외항이 있다.

 

명실상부하지 않은 미완성의 국제자유도시 ‘세계가 찾는 제주’를 향해 대형 크루즈선이 시커먼 탄소를 내뿜으며 입항하고 있다.

 

승객 2천명을 태운 유람선 한 척이 뱉어 내는 매연이, 자동차 3110만대분과 맞먹는다는 수치가 있다.

 

그런 저 배는 투자할 자본을 싣고 오는가, 점령할 자금을 싣고 오는가.

 

중국의 부동산 자금이 3천억원 넘게 들어왔고, 앞으로 몇 조원이 더 들어 온다고 하는데, 내 삶이 여전히 팍팍한 시민들은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자랑스러운 제주특별자치도의 특혜(?)인 ‘부동산투자 이민제’니 ‘노비자’니 악화(惡貨)는 디테일을 파고드는데, 내막을 헤아려 볼 재간이 없는 시민들 사이에선 괴상한 말만 무성히 번진다.

 

엘리자베스 베커의 ‘여행을 팝니다’에서 따오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은 1960년대 캄보디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주(州)였다.

 

이곳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해마다 수십억달러가 쏟아져 들어왔다.

 

2009년 유엔(UN)의 조사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시엠립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가난한 주(州)로 전락했다. 여행의 양날인 관광산업의 과실을 투자자들이 싹쓸이해 갔기 때문이다.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이해영 교수는 “지금과 같은 중국인 투자는 제주도내 고용창출, 매출증가 등 지역경제와는 전혀 분리된 일종의 ‘영지(enclave)경제권’이 형성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우근민 도지사는 지난달 27일 도정 중점추진사항 보고회 말미에 “중국인 관광객 없이 손가락 빨면서 살아 볼래?” 하고 오히려 하늘같은 시민들에게 겁을 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겁이 나질 않는다.

 

중국인이 경영하는 여행사의 패키지로 들어와서 무료관광지를 돌고, 면세점에서 쇼핑한 후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중국인 소유의 호텔에서 묵었다 가는 여행이, 시민에게 무슨 짭짤함이라도 있어서 겁이 나겠는가.

 

시민에겐 손가락이 아니라 역시 밥이 하늘이고, 구빈(救貧)은 도지사의 제일 책무이지만 중국인 관광객이 구빈(救貧)에 답은 아닌 것 같다. 만일 도지사만의 에메랄드빛 확신이 있다면, 도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속 시원히 설명할 요량이 못된다면, 우근민 도지사야말로 장차 중국의 위완화가 시민을 내모는 질겁할 일을 지금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인 관광객 200만’ 자랑 끝에 불붙는 게 두려워서 뒤늦게 깨달은 오류가능성을 고해할 작심이 안서더라도 천박한 어휘로 겁주는 건 도리가 아니다.

 

마땅한 도리는 도민에게 당장 설명하는 것이다.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설명회를 12번씩 하면서까지 ‘시장직선제’의 승률을 일약 85.9%까지 끌어 올린 넘치는 친절함으로...

 

불과 100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중화(中華)가 되살아날까 아슬아슬하다.

 

# 별도봉을 빠져 나오며

 

여명을 뚫고 하얀 배드민턴공이 허공을 가른다.

 

배드민턴장 바로 앞에 준공 당시 시장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반질거리는 대리석에 눈물겨운 감사와 공로를 구구절절 음각해 놓았다.

 

올림픽 경기장에도 대통령 이름이 없는데, 뭐 하러 시민의 산책로에 이름을 새겨 놓았을까? 영원한 전설이 되고 싶었나 보다.

 

요사이 그 분이 좋은 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열었다고 한다.

 

좋은 호텔과 좋은 책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책은 닳고 닳은 채 헌책방에 있어도 독자가 찾아낸다.

 

“특별자치도 허난 무신거라?” 시민의 구어체를 인용했지만, 정작 시민은 우근민 도지사와의 사이를 미루어 보아 안 읽어도 책의 내용을 다 짐작한다.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이 불안해지는 묘한 사이를...

 

글을 쓰는 일은 끊임없이 자신의 몰염치와 부끄러움을 확인해야하는 수련이다.

 

그 분이 말하는 공(功)과 과(過)는 시민의 차가운 이성으로 살펴 볼 일이지, 장본인들이 무슨 공(功)으로 도민사회를 이분(二分)시킨 과(過)를 상계할 수 있단 말인가?

 

출판기념회에서 “네가 나온다면 내가 링 위에 오를 것이다”라고 분기탱천한 분이, 좋은 책을 쓸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민은 없다.

 

시민들은 우러러보는 분의 말씀을 읽고 싶다. 누가 읽을까?

 

아무도 읽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세상에 잡담 하나 더 보탤 뿐이다.

 

외적을 막기 위한 팔만대장경도, 나랏말씀인 훈민정음도 백성들 모아 놓고 돈이 오고가는 출판기념회를 열지는 않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림사 앞에서 보살님들이 시민들에게 차(茶) 공양을 하고 있다.

 

차를 건넨 보살님이 합장을 하고 찻잔을 받아 든 나도 두 손을 모은다.

 

난 종교인은 아니지만 신앙은 숭상한다. 유일신은 미심쩍어도 신의 섭리는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무서워서 함부로 못산다.

 

그런데 술을 먹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어도, 집무실에서 아낙네의 옷고름을 만지작거려도, 끄떡없이 잘 나가는 분들을 보면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이었다면 큰일 날 일이, 그 분들에겐 별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신이 아니라도 자식이 무서워서 막 살아 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완결판을 꿈꾸시고 계실지도 모르는 두 분!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도덕성 분야의 중대한 흠결로 인해 다음 경기에 출전자격이 미달됨을 시민의 이름으로 알려드립니다.

 

그 길만이 갈기갈기 찢긴 지역사회의 구악(舊惡)을 척결하는 길임을 인정하시고, 이제 따뜻한 가슴으로 시민의 품에 돌아오시길 빕니다.

 

두 분 모두 그만하면 할 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功成而身退 (공을 다하면 몸을 물리는 것)

 

홍이장군 곽재우

 

이마에 매었던 붉은 머리띠 풀어 내려놓고

 

홍의장군이란 이름도 함께 벗어놓고

 

내 안에서 자랄 수 있는 헛된 자만과

 

자칫 커질 수 있는 여러분의 기대도 내려놓고

 

거문고에 배 한 척으로 남은 생을 보내려 합니다

 

그게 제가 가야 할 길 아닌가 합니다

 

그게 제가 사는 길 아닌가 합니다

 

 

 

비운 찻잔을 돌려드리며 “성불하십시오”라는 인사 뒤에 돌아오는 말이 귀밑을 써늘하게 자극한다.

 

“평화를 빕니다.” 아내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보았나 보다.

 

그때 울음을 그쳤던 아침 새들이 비로소 자기 곡조를 되찾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불국정토가 오려나...

 

☞김성민은? =탐독가, 수필가다. 북제주군청에서 공직에 입문, 제주도청 항만과 해양수산 분야에서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엔 중앙일보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주관한 제26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전력도 있다. 그해 12월엔 제주도에 의해 행정부문 ‘제주를 빛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월간 한맥문학사의 ‘한맥문학’에 의해 수필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한 수필가다. 공직을 퇴직한 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깊은 독서와 보이차의 매력에 흠뻑 젖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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