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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의 폭도발언에 대한 논평

 

지난 5월 29일 우근민 도지사와 출입기자들의 오찬 간담회에서 튀어나온 돌출발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날 발언 이후 31일엔 제주도가 해명에 나서는 한편, 이 사실을 단독보도하면서 이슈화시킨 J인터넷언론사에 대해 법적 대응을 공언하자, J사가 다시 녹취록과 녹취영상을 전면공개하면서 맞대결로 치닫는 듯하며, 그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등 중앙일간지는 물론, 민주당 등 정당과 트위터 등 웹상에서도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바, 4․3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문화운동으로 함께해 온 우리 두 단체는 이 문제에 관련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다음과 같이 뒤늦었지만 공식논평을 내는 바이다.

 

“폭도 놈의 새끼들 끼어 가지고”라는 도지사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 하나로 제주섬뿐만 아니라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사실, 4․3주간이 들어 있는 4월도 훨씬 지났고, MB정권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4․3왜곡의 망발로 대못을 박았던 사건들이 줄을 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4․3에 관한 한 아직까지는 무풍지대이며, 오히려 ‘4․3국가추념일’ 지정에 대한 기대가 한창인 요즘, 느닷없이 터져 나온 이 사안은 참으로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도 하필 제주도를 대표한 도지사의 발언이라는 측면에서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폭도’라는 용어는 적어도 제주도에서만은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미 4․3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에 가까운 용어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그동안의 4․3진상보고서의 내용과 학계의 연구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수구세력들 이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용어에는 무고하게 낙인찍혔던 4․3희생자들과 유족들의 ‘기막힌 세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4․3의 진상규명이란 유족들에게는 바로 이 ‘폭도’로 억울하게 내몰렸던 한 맺힌 역사에 대한 규명작업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도에서 사용하더라도 이는 매우 신중히 구사되었어야 할 일이었다.

 

4․3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과거사 중 정부가 유일하게 공식적인 보고서를 채택하고, 그에 따라 2003년 대통령이 직접 유족과 도민들에게 공식 사과한,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역사해법은 아직까지도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대한민국 정부의 민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사적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지사의 발언은 사건 발발 55년이 지난 2003년 대통령의 공식사과를 받아 냈던, 지난한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투쟁의 결과 얻어낸 도민사회의 승리를 희석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발언일 수도 있는 작지만 문제의 소지가 큰 발언이기도 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결론부분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미군정기에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4․3사건은 …(중략)… 사건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되어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종전 직후에는 일본군 철수와 외지에 나가 있던 제주인 6만여 명의 귀환으로 급격한 인구변동이 있었다. 광복에 대한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수백 명의 희생, 극심한 흉년 등의 악재가 겹쳤고,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경찰의 군정경찰로의 변신, 군정관리의 모리행위 등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3․1절 발포사건이 터져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중략)…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중략)… 미군정은 초기에 이를 ‘치안상황’으로 간주 …(중략)… 한편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무장대 측 김달과의 ‘4․28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사태해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평화협상은 우익청년단체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 등으로 깨졌다. …(중략)…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북쪽에 또 다른 정권이 세워짐에 따라 이제 제주도 사태는 단순한 지역문제를 뛰어 넘어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중략)… 이때부터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킬 대대적인 강경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이와 관련 미군정보고서는 9연대는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다.…(후략).”

 

도지사가 말한 내용과 문맥상 관련 있는 항목과 주요 대목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4․3은 매우 복잡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문제다. 또한 무장봉기 발생과 관련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남로당 잔당들만 들고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당시 다양한 사회모순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으며, 무장봉기 이후에도 평화적인 사태 해결을 위해 경비대와 무장대가 평화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오히려 우익청년단체에 의해 무산되었으며, 국가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된 것도, 사건 발발 5개월이 지난 정부수립 이후의 판단이란 점, 대량학살계획에 의해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 등이다.

 

이 많고 복잡한 내용을 지사는 “냉정하게 보면 경찰이 무슨, 명령 내리면 가는 것 아니냐. 월남전이고 어디고 싸우다 보니 몰라갖고 할 수도 있고 그런데. 폭도 놈의 새끼들 끼어갖고. 나 그거 얘기했다. 북한에 가서 영웅묘지나 데리고 가고. 김달삼이, 이덕구 묘지나 데려가고….”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의도는 유족과 경우회의 반목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결국 지사의 불충분한 표현과 복잡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단순한 인식은 4․3과 관련하여 제주사회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발언이 되고 말았다.

 

공공기관의 수장으로서 공식적인 용어들을 사용할 때는, 특히 이념적인 대립과 갈등이 현존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에는 공식적으로 정리된 개념만을 사용하여 오해의 소지를 줄이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정리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도 과거의 인식과 개념들을 동원하여 설명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진전시켜온 법적·제도적 후속조처들은 그 의미가 탈각되고,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도 혼란만 가중시키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번 발언사태의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는 요인들은 도지사의 공식적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된 표현 자체의 문제보다, 그 표현을 둘러싼 역사적 인식, 사실과 표현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한 용어의 선택과 사용에 관한 것들이다. 제주도청은 제주도 행정의 최고기관이다. 그러므로 최고 수장의 공적 자리에서의 의사표명이나 주무부서가 해명자료를 낼 때에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공식문서의 성과들을 반영한 입장표명과 문서작성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만큼 공적인 일은 권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 권위가 실추될 때, 그것은 부적절한 것이며, 사회적으로 이슈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제주도청 공보관실은 해명자료를 통해 지사가 “폭도라고 말한 것은 김달삼, 이덕구 등 북한이 영웅시하는 남로당 잔당세력이었음.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4․3에 개입함으로써 과잉진압의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들이고, 좌우 이념대립과는 무관한 대다수의 민간인 희생자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임.”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앞의 진상보고서의 서술을 놓고 볼 때, ‘개입’과 ‘정통성 도전’, ‘잔당세력’ 등에 대해서도 쉽게 언급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4․3의 복잡한 측면들을 간과한 것으로 공공기관의 발표라고 하기엔 함량미달인 해명이다.

 

이번 지사 발언의 문제점은 우선 4․3의 그 복잡한 배경을 너무 단순하게 설명하려 한다는 오류, 또한 4․3사건진상보고서가 채택된 이후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용어 사용에서부터 사건의 인식에 있어, 과거의 구태의연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 도청의 공식해명과정에서도 좀 더 면밀한 공적인 입장표명보다는 또 다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며, 이러한 안이한 인식과 표현들이 겨우 아물어 가는 많은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리고, 도민사회의 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들이다.

 

돌아보면 지난 MB정권 당시 정권 초반부터 보수우익의 4․3 흔들기 공세는 전면적이었다. 수많은 퇴행적 망발과 각종 소송전 등 이미 정부가 확정한 역사적 평가를 뒤집기 위한 전면적 공세가 임기 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4․3유족회와 4․3단체들 그리고 도민들은 대부분 법적 승소를 통해 방어해냈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이미 4․3의 민간인 희생이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진압의 여파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국가폭력이었다는 진상내용을 뒤집지는 못하게 해냈다. 한마디로 4․3 평가에 대한 공격적 도발에 대한 방어전에서 다시 한번 도민사회는 승리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 지사는 최근 유족회와 경우회의 ‘폭넓은 화합을 위한 만남’을 주선하면서까지 광폭행보를 보여 왔는데, 그 행보의 와중에 터진 이번 돌출발언은 그동안 4․3만큼은 잘해왔다고 자처했던 우 도정의 자부심에도 깊은 상처를 안기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도지사는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다. 특히 민선도지사는 그 자체로 정치인이기도 하다. 정치인으로서의 도지사는 모든 도민을 아우르는 정치력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인식과 그에 따른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통섭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의 발단이 도민사회의 반목과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자해지 차원에서, 발언에 대한 해명이나, 기사보도로 이슈화시킨 언론사에 대한 ‘법적대응 검토’라는 맞섬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유족과 도민사회에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이 소란을 종식시킬 것을 권고한다.

 

(사)제주4·3연구소
(사)제주민족예술인총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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