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80052275109_e45797.jpg?iqs=0.9307443507129723)
지난해 12월 3일 이른바 '계엄의 밤'을 둘러싼 오영훈 제주지사의 행적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공백 시간' 논란이 고발 조치로 번져 진실공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 지사가 계엄 선포 직후 약 3시간 동안 자택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두고 정치적 책임론이 불거졌고, 이를 둘러싼 논란과 파문은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제주도는 "오 지사가 불법 계엄에 동조했다"는 주장을 퍼뜨려 도청 공직자 전체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일부 인사를 지난 12일 경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은 제주에서 활동중인 고부건 변호사로 확인됐다.
도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공적 비판을 넘어선 악의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고발 대상인 고부건 변호사는 도가 스스로 배포한 보도자료와 당시 청사 통제 상황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라며 이는 도민으로서의 상식적 비판이라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행정안전부가 전국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12·3 계엄 당시의 가담 여부와 대응 실태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면서 논란은 지역 차원을 넘어 전국적 관심사로 확산됐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공방을 넘어 위기 상황에서 공직자의 행적을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는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행정 책임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법·제도적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9월 12일 법무법인을 통해 SNS에 글을 올린 고부건 변호사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고 변호사가 2023년 윤석열 정권 심판 도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고부건 변호사 페이스북]](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9864087626_4e74b3.jpg?iqs=0.9552876563566299)
◆ 제주도의 고발, 문제는 없나 = 제주도는 지난 12일 법무법인을 통해 SNS에 글을 올린 고부건 변호사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문제의 글은 오 지사가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행안부 지시에 동조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강재병 제주도 대변인은 지난 3일 긴급 브리핑에서 "명백한 허위 주장으로 제주지사와 공직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다른 광역 지자체와 비교할 때 이례적이다. 서울시, 부산시, 대전시 등은 계엄 직후 행정안전부의 통제 지시에 따라 자체 대응을 했지만 비판적 여론 제기에 대해 고소·고발로 대응한 사례는 없다. 때문에 이번 조치는 의혹을 진화하기보다 오히려 비판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나온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의혹 확산을 막으려는 목적이 뚜렷해 보인다"며 "비판 여론을 입막음하는 방식은 도민의 불신만 키운다"고 말했다.
고발 당사자인 고부건 변호사도 "근거없는 의혹제기가 아니다. 행안부 지시에 따라 제주도청이 폐쇄되었다고 제주도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분명히 기재돼 있다"며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오영훈 지사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다.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가 비상계엄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청사 출입문 폐쇄 및 출입자 통제'라고 분명히 적시했음에도 이후 긴급 브리핑에서는 '실제론 평상시 야간 출입 수준'이라며 표현상의 문제라고 말을 바꿨다"며 "도정이 직접 낸 공식 자료와 뒤늦은 해명이 서로 배치되는 상황에서 이를 비판한 시민을 고발하는 것은 명백한 입막음 시도"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도의 대응은 법적 대응 보단 오히려 정치적 해석을 낳게 만들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에서도 고발은 없는데 민주당 소속 오 지사가 비판자를 정면 겨냥해 법적 책임을 묻는 형식은 오히려 정치적 파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 오 지사의 3시간 공백, 청사 통제 논란까지 = 논란의 핵심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오 지사의 '3시간 공백' 행적이다.
도의 설명에 따르면 오 지사는 수도권 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제주에 도착한 뒤 자택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 방송을 접했다. 이어 자정 무렵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새벽 1시 30분 도청으로 복귀해 긴급 영상회의를 주재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당시 청사 출입문 폐쇄와 출입자 통제 조치 역시 행정안전부 당직실의 지시에 따른 절차적 대응이었다"며 "평상시 야간 통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도 입장에서 보면 '자택 체류'는 단순한 동선일 뿐 위기 대응 자체가 지연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고 변호사와 비판 측 시각은 다르다.
고 변호사는 "계엄이 선포된 뒤 국회가 해제안을 의결하기 전까지 오 지사가 자택에 머문 사실은 도가 배포한 보도자료와 기록으로 확인된다"며 "그 시간 도청은 행안부 지시에 따라 '폐쇄'됐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같은 시각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행안부의 폐쇄 지시를 거부하며 청사의 기능을 유지한 사례를 거론하며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으로서의 태도와 비교할 때 오 지사의 처신은 도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고 비판했다.
결국 단순한 동선 문제가 아니라 도민 보호와 도정 수장의 상징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주장이다.
홍명환 전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장도 비슷한 입장을 냈다.
그는 "민주당 지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오 지사는 약 2시간 반 동안 자택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며 "이는 도민의 기대를 저버린 결정적 실토였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비판자를 허위사실 유포라며 고발한 것은 차기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대응으로 비친다. 도민과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도리를 저버린 것"이라고 직격했다.
결국 도가 설명한 대로 청사 통제가 평상시 야간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계엄 하달에 따른 실질적 폐쇄였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를 가리기 위해서는 행안부 당직실이 보낸 지시 원문과 도가 이를 내부적으로 어떻게 하달했는지, 당시 출입 기록과 폐쇄회로(CC)TV 자료가 함께 공개돼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명확한 근거 자료가 제시되지 않는 한 오 지사의 '3시간 공백'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 후 제주도청 앞 상황이다. [출처=KBS제주]](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986141283_a81e8c.jpg?iqs=0.45773308996365925)
◆ 표현의 자유와 도정 책임의 경계 = 이번 사안은 단순히 오 지사의 동선이나 청사 통제 여부를 둘러싼 사실관계 다툼을 넘어 민주사회에서 어디까지가 정당한 비판이고 어디부터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라는 법·제도적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이 명예훼손으로 인정되려면 법적으로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구체적 사실이 객관적으로 허위임이 입증돼야 하고, 다른 하나는 그 발언에 상대방을 해치려는 뚜렷한 비방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 변호사가 지적했듯이 도 스스로 배포한 보도자료나 행안부 지시 내용을 근거로 한 비판이라면 이를 곧바로 '허위'로 단정하기 어렵다. 또 위기 상황에서 광역단체장의 행적과 의사결정은 국민적 관심사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안에서 폭넓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법리다.
반면 도는 이번 사안이 단순한 정치적 비판을 넘어 오 지사 개인뿐 아니라 도청 공직자 전체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비판의 화살이 조직 전체로 확산되면서 도정의 신뢰가 흔들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수 법률 전문가들은 도의 논리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 차례 판례를 통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은 명예를 가질 수 없으므로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대법원 1997.9.9. 선고 96도3376 판결, 2002.1.22. 선고 2000도3756 판결, 2016.12.27. 선고, 2014노2406 판결)고 판시해 왔다.
따라서 '제주도청 공직자 전체의 명예 훼손'이라는 주장은 법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논란의 법적 쟁점은 오 지사 개인의 행적에 대한 평가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즉 공직자 개인을 향한 비판이 허용된 공론의 범주인지, 아니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인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행정안전부가 진행 중인 12·3 사태 당시 지자체 대응 진상조사는 이번 사건을 가르는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당시 청사 통제가 단순한 야간 통제 수준이었는지, 계엄 지시에 따른 실질적 폐쇄였는지, 또 오 지사가 자택에서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회의록과 내부 기록이 공개된다면 발언이 허위인지 아닌지, 혹은 단순한 해석 차이인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는 향후 수사와 재판에서 법적 책임의 범위를 판단하는 핵심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사안은 도민의 표현의 자유와 지방정부의 행정 책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민주사회에서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은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그 비판이 명백히 허위로 드러날 경우 책임 또한 분명히 져야 한다.
반대로 행정기관이 권력을 동원해 성급히 고발 조치에 나선 경우라면 오히려 도민의 권리를 위축시키고 행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사안은 본질과 다르게 정파적 논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당시 문서 원문과 회의록, CCTV 등 1차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 실체적 진실을 밝히면 될 일이다. 사실 공개야말로 허위와 진실을 가르는 가장 이른 길이자, 제주도정이 도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으로 꼽힌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