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그분과 처음 만난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우연찮게 친구 순정이네 집에 놀러갔는데 그분이 나를 무척이나 반기셨다. 순정이나 친구들 말로는 ‘생전 없던 일’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가 헤어질 때쯤 친구들 몰래 나를 부르시더니 다짜고짜 말씀하셨다. “우리 순정이 어떵(어떻게) 해보라!” 영문을 몰라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그분은 아들을 부탁하셨다. 공부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하는데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그렇다고 머리 다 큰 놈 두드려 팰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면 반항만 할 것 같아 부탁하는 것이니 순정이와 사귀면서 공부 좀 같이 하라고 부탁하셨다. 얼떨떨했다. 순정이와는 별로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분을 처음 뵙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분은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순정이와 어울려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면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고 하셨다. 아예 여름방학 동안 순정이와 함께 과수원에 가서 같이 공부를 하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내놓으셨다. 어머니마저 여의고 집도 절도
▲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내가 만난 아버지 중에 우는 아버지는 없었다. 한숨을 쉬기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는 봤지만 우는 아버지는 본 적이 없다. 남자는 울 수 있지만 아버지는 울 수 없는 것인지,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백무범 선생님의 눈물이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선생님들 같았으면 반 아이들을 개 패듯 팼을 상황이었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때리기는커녕 혼자 자책하며 우셨다. “다 내가 너희들을 잘못 키운 탓이다.” 선생님께서는 교실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몽둥이를 교탁 위에 올려놓더니 이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6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길게 한숨을 쉬시더니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우리는 봤다, 어느 순간 선생님의 두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없이 선생님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어두워져가는 교실이 눈물바
▲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은 모든 존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근원임을 강조한 말이다. 무게가 6~10톤에 이르고 몸길이가 7~10m에 이르는, 난폭하기로 소문난 백상아리를 사냥하는 바다생태계의 최대의 폭군인 범고래. 그도 조련사의 지속적인 칭찬을 받게 되면 변화하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수중 쇼를 한단다. 이처럼 칭찬은 상대를 기쁘게 하고, 그 기쁨은 다시 베타 엔돌핀이나 도파민 등의 호르몬을 분비시켜 모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한다. 매슬로우(Maslow)도 ‘욕구 5단계설’에서, 인간이 생존과 안전의 문제가 해결된 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칭찬과 인정은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칭찬은 즉각적인 반응일 수 있다. 상대방이 빼어난 점, 잘한 것을 추어주거나 높이 평가하는 반응이다. 그런데 요즘 칭찬이 너무 흔하다. 자그마한 일에도 칭찬을 남발하다 보니 칭찬이 난무한다. 그런 경향은 젊은 사람일수록 더하는 것 같다. 물론 칭찬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칭찬을 통해 상
▲ 이성준/ 논설위원 아버지란 존재를 접해본 경험이 없기에, 내게 아버지의 길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삶이란 원래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요, 없는 길을 찾아가는 고행의 길이면서 구도의 길이라지만 아버지의 길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길을 혼자 고민해 보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다 아는 아버지의 길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과 자괴심, 아버지 없이 자란 티를 내는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한다. 아버지, 이럴 땐 어떻게 했어요? 아버지에게 묻고 싶고,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없으니 그럴 수가 없다. 아버지가 있다고 해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집 뒤에 있는 산처럼 말없이 앉은 채 지켜보고, 지켜준다. 가끔은 화를 내며 소리치기도 하고, 내리치기도 하지만 말없이 앉아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 아버지를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롭다. 애초부터 빼앗겨 버린 것에 대한 갈증
▲ 이성준 논설위원 나에게 아버지는 없었다. 태어나기를 버림받은 이름으로, 유복자로 태어났으니 아버지란 존재를 접해본 경험이 없다. 내게 아버지란 지워진 존재였다. 분명 존재하기는 했었으나 영원히 사라져버린 전설 속의 존재일 뿐이었다. 몇 장의 사진이나 유품들이 남아있어 고대 잉카제국이나 그리스처럼 실존을 증명하고 있기는 했지만, 내게 아버지란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이상향일 수밖에 없었다. 상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는, 지워진 존재였다. 내게 아버지는 그리움이었고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갈증이었지만, 아버지란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이기도 했다. 유복자 콤플렉스. 아버지를 겪어보지 못한 아들이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갖는 두려움. 그것은 나의 무의식과 의식을 지배하는 암세포와 같은 것이었다. 무한 자가증식을 통해 결국 나를 죽이고, 자기도 죽을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자라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정황상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들이란 다투면서 배우고 크는데, 아이들의 다툼 뒤에는 항상 어른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의 부모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로부터 공격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