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 역사의 경험들 정치적 박해 또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떠난 난민은 우선 범죄자가 아닙니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피난 나온 사람들입니다. 포괄적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시간적인 공간을 허물어뜨리면 우리나라에도 무슬림 난민이 온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무슬림 이주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에 볼세비키 혁명을 피해 카잔 투르키 무슬림 난민 수백명이 서울로 와서 정착하게 되는데 그들은 기능을 가진 고급 기술자들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뀌는 시대에, 그러니 한복이 서양식 의상으로 바뀔 때 였습니다. 왕조에서 제국으로 바뀌는 첫 단추는 복식이었습니다. 정부 관리들과 군인들이 복장이 바뀌지요. 모자, 구두, 양복 등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들 무슬림 난민들은 정치적 난민들이었지요. 이후 6.25가 발발하기 전 다시 다른 나라로 갑니다. 또한 이 시기에 UN군의 일원으로 터키가 참전하게 되었고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하게 됩니다. 반도이자 분단국가의 섬. 제주 섬, 말 키우는 변방 유배지, 4.3의 경험, 6.25의 난민에서 우리들도 국내 난민에 대한 역사의 경험을 한 적이
혹시 커피 좋아 하세요 ? 은은한 향과 맛으로 세상의 커피 매니아들이 매우 좋아하는 아라비아 커피의 고향은 예멘입니다. 그 예멘사람들이 요새 제주에 단체로 왔습니다. 관광객들이 아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피난 온 사람들이지요.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입니다. 이들은 오랜 내전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고향을 떠난 유랑민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유랑민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분단의 반도국,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흘러오는 곳은 세상에 없습니다. 육지로 연결된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닌 섬을 귀착지로 정한 매우 드믄 경우이고 다시 이런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 이들이 어떻게 제주섬으로 오게 되었는가를 거슬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주 섬에 오기 전에 머무르던 곳은 '노비자'로 3개월 머물 수 있는 곳은 말레이시아입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문화 공동체여서, 그리고 형제국이라고 여기는 그곳은 이슬람협력기구(OIC) 인구대비 무슬림(이슬람 신자를 통칭하는 아랍어)이 절반을 넘는 국가입니다. 전세계 이슬람 57개국중 하나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의장국을 역임한 국가이나 세계난민기구 협약국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렴한 항
▲ 김대용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유럽의 시각으로 중동은 동양(East), 근동(Near East), 오리엔트(Orient: 라틴어로 동양의 의미), 레반트(Levant: 해뜨는 곳) 등으로 불려졌다. 13세기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던 이탈리아 상인들은 지중해 동부를 레반트라 지칭했고, 그후 16, 17세기에 서구 유럽이 발칸 반도 이남의 오스만 터키 제국을 동양이라 지칭하였으며, 동시에 극동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였다. 19세기 페르시아와 인도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개입이 증대되면서 오스만 터키 지역은 근동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그후 1902년 미 해군 제독 이며 해양역사학자인 알프레드 마한(A.T.Mahan)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분석시 Near East(근동), Middle East(중동), Far East(원동)등으로 분류한 것이 시초다. 페르시아 만 주변 지역을 처음으로 중동이라 호칭했으며, 1930년대 후반 이 지역을 식민지화 한 영국정부가 왕립지리학회의 제의로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호칭을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후반 영국 정부가 중동 사령부를 설립하면서 중동이라는 용어가 공식화되었다. 이후 영국의 중동사령부가 이집트로
▲ 김대용/ 제주한라대 교수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이해하는 건 사실 세계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소양이다. 이슬람 문화권은 지구상 최대의 거대한 종교 문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서구 기독교 문화권과 대등한 세계사의 주역이다. 지구촌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이슬람 세계의 이해 없는 국제화 세계화는 허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슬람 이야기] 1편에서 거론했던 바다. 이슬람 세계는 만민평등, 평화와 형제애를 지향하는 이슬람이란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 문화공동체다. 57개국이 이슬람국가이며 무슬림(Muslim: 아랍어로 이슬람 신자를 통칭한다)수는 무려 16억 인구나 된다. 이들은 특유의 응집력으로 의식주와 관혼상제의 의식을 공유한다. 흔히 지구촌 3대종교인 기독교·불교와 더불어 지구촌 최대의 종교공동체인 것이다. 우리네 생활 중에 유교의 가르침이 관습화 되어 관혼상제의 근본을 이루는 것보다 더 깊게 이슬람은 일상생활에 녹아있다. 그런 무슬림들이 생활 패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방법과 가치관을 규정하는 ‘이슬람’이란 종교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관습화된 생활종교로서 그들이 일상
▲ 김대용 제주한라대 교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가 기억나는 때가 있다. 경제성장이 지상과제였던 1970·80년대 석유파동까지 거치며 사우디라고 총칭된 중동 건설 현장으로 취업열풍까지 몰아쳤다. 사막의 열풍 속에서 마른 땀을 흠치며 외화벌이에 나섰다. 희망의 땀과 고난의 가족사가 뒤켠에 있었지만 사우디에서 신기루처럼 이슬람세계도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메카·메디나 등 성지가 있고 성서인 꾸란이 아랍어로 쓰여져 흔히 아랍 중동지역이 이슬람의 전유물인 것처럼 혼동하기 쉬우나 그러나 이 지역은 방대한 이슬람 세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57개국이나 되는 방대한 이슬람 국가 중에서 산유국이 밀집한 사우디반도 걸프 연안국가들은 석유로 부를 축적했다. 이에 따른 국가 인프라 시설로 도로·항만·병원·학교의 건설은 그들의 후속타였고, 우리에겐 외화획득을 위한 최대의 해외 건설시장이었다. 그것뿐이었다. 단지 해외 건설시장이며 우리경제발전의 디딤돌이 된 그 지역의 문화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우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 일변도의 경제 제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