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제주 도민들이 얼마나 개방에 알레르기 증상이 강한지는 중국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중국 광둥과 제주도는 동시에 개방 경쟁을 벌였다.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 구상을 앞세워 특별자치 지역으로 변하고, 광둥은 중국경제 개방의 상징지역으로 성장하던 무렵이였다. 중국은 여권.비자 같은 국적 관련 행정을 주권.치외법권이라는 거창한 시각에서 벗어나 아예 국가 비즈니스로 보며 개방에 열을 냈다. 반면 국제자유도시로 발돋음하겠다던 제주는 이와 달랐다. 외지인과 외국인을 제주도민과는 다른 인종으로 생각하는 제주 사람들의 반외세 감정이 개방의 발목을 잡았다. 공무원들의 교묘한 행정규제와
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한국은행 제주본부 조사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인적자본지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 평균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타 지역과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 지금처럼 전국 평균치보다 크게 낮은 수준에 있는 상황이 오래 계속될 경우, 우리 제주 지역의 성장 동력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제주 지역과 다른 지역 간의 인적자본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데는 구조조정 요인, 산업구조 특성, 실질임금 및 노동생산성 차이 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제주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교육 등 인적자본 투자의 확대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지구촌은 인재 확보 전쟁 중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인재의 대항해(大航海) 시대다. 노동의 이동성이 높아져가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서 우수인력의 유입은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면서 경쟁력 향상을 위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세계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글로벌 인재의 확보를 위해 주요국 간 핵심 인재를 지키고 뺏으려는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이 고급 두뇌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인재 육성은 국가(nation) 발전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region)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다.
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에 맞춰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제주 경제와 사회의 내일을 위한 설계”를 화두로 던집니다. 제주 혁신을 위한 전략을 제시합니다. 기고는 “제주 혁신하여 재창조의 길을 가자”를 시작으로 “제주 혁신하려면 지사부터 변해야” “관료 개혁” “제주 경제의 선진화 전략“ 등의 주제로 제주가 가야 할 길을 담론의 소재로 삼습니다. / 편집자 주 시대흐름 읽는 혜안으로 인재양성 주춧돌 쌓은 선조들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고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핵심과제다. 고려시대의 ‘국자감’, 조선시대의 ‘성균관’ 같은 곳이 바로 국가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던 교육기관들이다. 국자감과 성균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국가는 생활비를 지원했고, 또 뛰어난 학자들을 배치하여 젊은 선비들의 학문 연마를 적극 지원했다. 해방 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도 정부가 서울대 등 국립대를 잇달아 설립했던 것도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