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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품이 컸다. 그의 운명에 도민들은 울었다.경주 이씨 입도조 이익의 손자 이윤...무과에 급제, 훈련판관 역임하며 덕행
제주사 인물이야기  |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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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21  17: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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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李火允:1650~1708)

“아! 슬프다. 이별장(李別將)이 죽었구나.”
경주 이씨 입도조 이익의 손자 이윤(李火允:1650~1708)이 숨졌을 때 제주사람들이 영결(永訣)하며 울부짖던 한 마디다. 평소 남을 위해 베풀기를 좋아했다고 전하는 덕스럽던 그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심재 김석익의 「탐라인물고」에는 이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윤은 자(字)가 여명(汝明)이고, 본관이 경주(慶州)로 간옹(艮翁) 이익(李瀷:1579~1624)의 손자이다. 무과에 등제하여 별장(別將), 훈련판관(訓練判官)을 역임했다. 덕행과 기국(器局)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했다. 죽음에 이르러 그를 떠나보내며 “이별장이 죽었다.”라고 탄식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에 유배된 간옹 이익은 제주에서 헌마공신 김만일의 딸을 맞아 2년 뒤에 아들 인제(仁濟:1620~1669)를 낳았다.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그는 5년 만에 귀양살이에서 풀려 현 제주시 거로에 유배되었던 부부인 노씨(府夫人 盧氏)와 함께 상경하고, 인제는 어머니와 제주에 남아 경주 이씨 제주입도조가 되었다.

이윤은 바로 이인제의 아들이다. 이윤은 1680년(숙종 6) 어사 이증(李增)이 왔을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판관(訓練判官)에 이르렀다. 숙종 때에 제주에 유배 온 만구와(晩求窩) 김진구(金鎭龜)와 교분이 깊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의 아들 이중발(李重發)과 이중무(李重茂)를 김진구에게 수학하도록 하였다.

   
▲ 서귀포시 월라산 정상에 있는 이윤의 묘역
서귀포시 월라산(月羅山) 정상, 제주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너른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고홍진, 김진용 등에 의해 제주의 학문이 진작되던 17세기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보듬어 안은 채 고즈넉이 남태평양 푸른 바다를 굽어보며 지난 세월을 회상하듯 누워있다. 비문은 김진구의 아들로 또한 제주에 유배 왔던 북헌 김춘택이 짓고 썼다.

훈련원 판관 이군 묘표(訓練院 判官 李君墓表)

경주 이씨는 우리나라의 큰 성(姓)으로 대대로 벼슬을 하였는데,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익(瀷)은 광해군 때를 당하여 곧은 절개로 저명하여 제주(濟州)에 안치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인제(仁濟)라고 하는데, 즉 군(君)의 아버지이다. 군(君)의 이름은 윤(火允)이고 자(字)는 여명(汝明)으로 숭정후(崇禎後) 경인(庚寅:1650년, 효종 1) 8월 18일에 태어났다. 젊어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혀 나이 31세에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였지만, 나중에는 즐겨하지 않았다.

드디어 제주로 돌아와 절제영(節制營)에 근무하며 초관(哨官)이 되었고, 파총(把摠)과 천총(千摠)을 역임하고 별장(別將)이 되어 부지런히 출근하여 본보기가 되어 절제영의 교위(校尉)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직계(職階)를 하는 동안 진보(鎭堡)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었고, 만년에는 임시로 행수(行首)들을 인솔하였다.

무자(戊子:1708년, 숙종 34) 7월 6일 병들어 졸(卒)하니 나이 59세였다. 고씨(高氏)를 부인으로 맞아 두 아들을 낳으니, 중발(重發)과 중무(重茂)이고, 두 딸은 김시우(金時雨)와 양이발(梁以潑)에게 시집갔다. 정의현(㫌義懸) 월라산(月羅山)의 병(丙)향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고씨(高氏)와는 같은 언덕이지만 혈(穴)을 달리했다.

군(君)은 비록 먼 후예로 낳고 자라나 가세(家世)가 오래되어, 자못 사대부(士大夫)의 풍모를 사모할 줄을 알고, 또한 침착하고 굳세며 청렴하고 곧아서, 그 몸가짐과 행한 일이 움직임에는 반드시 의로움이 있는 것을 구하여 일찍이 조금도 구차함이 없을 뿐이었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님이 일찍이 제주에 유배를 왔었는데 군(君)이 제일 먼저 와서 문안을 하였고, 거듭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비록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 군(君)을 대함이 아주 두터웠다 하더라도 유배가 무릇 5․6년이었다. 제주(濟州)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선량한 사람을 말한다면 주저 없이 이윤(李火允)이라고 하였다.

이윤(李火允)은 내가 유배를 오게 되어서도 더불기를 더욱 깊이하고 더욱 자세하였는데, 군(君)의 행한 일이 아름다웠음은 죽기에 이르러 뭇사람들에게서 듣게 되었다. 대개 노인과 유식한 사람에게서부터 부녀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하기를,“이별장(李別將)이 죽었으니 제주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그 무사(武士)인 사람들은 온 삼읍(三邑)에서 서로 이끌고 달려와서 잔을 드리고 곡을 하고 상(喪)에 예(禮)를 드리니, 이것은 또한 전에 전혀 있지 않았던 일이니, 그 사람됨이 중후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에 다만 군(君)의 죽음을 매우 애석해 할 뿐만 아니라, 더욱 돌아가신 아버님이 사람을 알아봄에 잘못됨이 없었음을 더욱 감탄한다.

돌아보면, 나는 감히 영원히 살 사람이 아니고, 중발(重發)이 매우 열심히 요청하고 또한 의리상 사양할 수도 없어, 대략 군(君)의 본말(本末)을 알고 있기에 그의 묘에 게재하여 뒷사람에게 알려 말하노라.

무자(戊子:1708년(숙종 34) 12월 13일
광산(光山) 김춘택(金春澤)지음

글=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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