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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제주] 정화.탐방.교육.마을해설사 주역 ‘조천 용천수 지킴이’
"사람과 자연 공존 고민 ... 물학당 꾸려 용천수 보존 담론 이어갈 것"

 

제주는 물이 귀한 곳이다. 강이나 물이 흐르는 유수천이 많지 않고, 빗물은 대부분 땅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화산섬 특성이다. 옛 선인들은 그래서 땅 틈새를 통해 솟아나는 ‘용천수’가 많은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갔다. 삶에서 필요한 식수는 물론 멱을 감고, 빨래를 할 터가 돼준 곳이 용천수다. 용천수가 많은 마을일수록 마을은 번화했고, 그러다 보니 용천수와 얽힌 이야기도 샘솟았다.

 

그러나 용천수는 이제 우리네 삶과 '거리두기' 상태다. 실생활에 쓰임새도 이젠 사실 별로다. 당장 수도꼭지만 틀어도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사이 용천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과거 1025개소나 있었던 용천수는 지하수관정 개발과 상수도 보급, 도심지 개발 등의 이유로 약 400개소가 사라졌다. 그렇게 용천수는 실제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용천수가 많았던 조천마을엔 용천수를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직접 지키겠다는 움직임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주민들로 이뤄진 ‘조천 용천수 지킴이’가 그 주인공이다.

 

 

‘조천 용천수 지킴이’는 2019년부터 조천 용천수에 대한 교육, 정화활동, 탐방활동, 동아리 활동, 용천수 해설 등을 하고 있다. 여행자 또는 지역 학생들과 함께 용천수와 마을역사 탐방을 하고, 해양정화활동을 통해 파래 제거 작업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조천리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용천수 지도를 만드는 데 한창이다. 

 

용천수 지킴이를 처음 모집한 강연식(55) 조천리장은 조천리의 용천수가 다른 지역보다 더 많다는 점을 눈여겨 봤다. 그로 인해 용천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숙제로 남아있었다. 개발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항상 이뤄지지만 이게 지속되다 보면 보전이 불가능할 것이란 위기의식에 놓였다. 그는 서둘러 뜻을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게 된다.

 

용천수 지킴이 회원들은 처음부터 커다란 뜻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좋아서 참여한 이도, 부끄럽지만 취지가 좋아 용기내 참여한 이도 있다. 여러 동네에서 살아봤지만 조천마을이 유난히 좋아서 정착한 이주민, 정년퇴직한 역사교사, 공예지도사, 글과 그림을 창작하는 사람 등이 하나 둘씩 모였다.

 

강연식 조천리장과 김수정(45) 대표를 주축으로 김현지(43)씨, 부좌홍(67)씨, 백미라(58)씨, 문순열(55)씨 등 서로 다른 11명의 조천마을 주민들은 2019년 ‘조천 용천수 지킴이'로 하나가 됐다.

 

 

 

용천수 지킴이 김 대표를 만나 생각을 물었다. 활짝 웃음으로 얘기를 꺼내던 그는 용천수 주변 식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땐 사뭇 진지했다.  

 

용천수 지킴이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예컨대 구멍갈파래는 썩으면서 벌레가 꼬이고, 자연경관을 해치는 등 최근 제주도민들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유독 조천에 자주 보이는 환경보호종 두이빨사각게의 주 먹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모조리 없애면 이것들을 먹고사는 생물들은 먹이를 잃는 셈이다. 

 

“점검을 하다보면 주민 어르신들이 탕 안에서 세제를 이용해 빨래를 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면 주변 식생이 폐사할 수도 있어 잘 설득해 제지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용천수를 보전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세대의 시각이다. 어르신들이 용천수로 빨래를 하고, 채소를 씻고, 목욕을 하는 것 등은 그들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그 생활양식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사실 날씨 좋은 날 점검을 하다가 어르신들이 탕에 몸을 담그거나, 빨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김 대표의 말이다.

 

용천수 지킴이는 적어도 조천 내 용천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배우고, 알아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를 위해 주기적으로 주변 식생을 조사하고, 모니터링 하고 있다. 의문이 풀리지 않으면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어느덧 ‘지킴이’라는 단체명이 중압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가 이곳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곳의 식생과 역사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두루미나 흑로, 왜가리 같은 새가 왜 특정 시기만 되면 조천에 날아와서 먹이활동을 하는지, 왜 특정 시기만 되면 시금치 같은 번행초가 자라는지 등 우리가 자세히 알아둬야 용천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이 쯤에 이르자 김 대표의 눈은 흡사 매의 눈으로 변해갈 지경이다.

 

 

 

용천수를 지키고, 중요함을 알리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다. 돈이 궁핍할 때도 있고, 11명이 아무리 열심히 한다한들 달라지는 게 있나 싶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 탕이 너무 더러운데 청소 안할거냐’, ‘뭘 하는진 모르겠지만 집 앞에 널려있는 쓰레기도 좀 치워달라’ 등 용천수 지킴이가 종종 받는 주민들의 요구도 난감한 점 가운데 하나다. 

 

하루에 3~4시간씩 개인 시간을 내 활동하는 용천수 지킴이들은 마을 주민들조차 활동취지와 노력을 잘 알아주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계속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들의 정열을 식히진 못했다. 

 

지킴이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여러 장애물들이 있긴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여러 지역을 가봤지만 용천수 관련 단체가 없더라. 오히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같아 즐기고 있다. 활동 규모가 더 커져서 조천 뿐만 아니라 도내 용천수가 있는 다른 지역도 우리가 만들어 둔 이 시스템을 수용, 보전했으면 좋겠다.” 

 

요즘 용천수 지킴이는 조천야학당을  ‘물학당’으로 서서히 바꾸고 있다. 2009년 새로 지어진 조천야학당은 1925년 설립 당시 가난한 학생들과 청년, 부녀자들의 배움터였다. 용천수 지킴이는 그 당시 가치를 이어받아 물을 주제로 모여 배우고, 공유하는 물 배움터로 이 공간을 바꾸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초등학생들에겐 용천수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여행객들에겐 마을 해설사가 되겠다." 이게 지킴이가 가슴 속에 새기는 나름의 소명이다.

 

"누구일지언정 용천수의 가치를 알게 되면 결국 ‘용천수 지킴이’가 또 한명 등장하는 것 아닐까요? 그 가치를 일깨우는 게 우리 역할입니다. 삼다수 원산지가 조천읍인데 언젠간 물컵으로 용천수를 떠 마실 날도 오겠죠. 우린 그날을 소망합니다." 조천용천수지킴이 김 대표가 해가 질 무렵 바닷가에 자리잡은 용천수를 바라보며 되뇌는 말이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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