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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67)

우리 주변에 자주 보이는 고양이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다. 고양이는 평상시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축 늘어져 편안하게 바닥에 누워 졸고 있다. 그러면 쥐가 마음을 놓고 대담하게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쥐가 느긋하게 우쭐거릴 때 고양이는 잉어처럼 갑자기 뛰어올라 사납게 덮친다. 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고양이의 먹이가 되어 버린다.

 

사람도 다름없다. 『주역(周易)·계사(繫辭)하』는 말한다.

 

“자벌레가 몸을 움츠리는 것은 펴려는 것이요, 용과 뱀이 엎드려 있음은 몸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최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적아의 힘이 비교적 큰 차이가 날 때에는 위세를 부릴 필요 없다. 강다짐으로 부딪칠 필요도 없다. ‘완병지계’1를 이용해 칼끝을 피할 필요가 있다. 몸을 오그리고 꼬리를 말아 몇 발자국 물러서라. 몸을 일으킬 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 찾으라. 더 먼 곳을 향하며 어떻게 돌진할지 생각하라.

 

완병지계는 상대방의 말과 안색을 살펴보고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기와 형세를 판단하고, 즉 시세(時勢)를 잘 살피고 서로 다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송(宋)나라 주승비2가 재상일 때 묘부와 유정언이 반란3을 일으켜 고종을 협박하며 융태후(隆太后)의 수렴청정을 받아들이라 요구하였다. 여러 지방의 장수가 소식을 듣고 황실을 구하려고 경사로 달려왔다. 주승비는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묘부와 유정언이 다급하게 경사로 들어와 황제의 안전을 위협할까 염려되었다. 묘부와 유정언을 회남(淮南) 양로제치사로 봉하여 군대를 통솔하도록 명령을 내리라고 황제에게 간언하였다. 그런 후에 묘부와 유정언에게 투항하도록 권했다.

 

묘부와 유정언이 투항한 후 조정은 그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현지에 부임하도록 권했으나 그들 부하인 장규(張逵)는 다른 계책을 내놨다. 황제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증표로 철계(鐵契)4를 내려주기를 요구하였다. 나중에 변심하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 조정에서 물러난 후 묘부와 유정언은 서신을 가지고 주승비의 저택으로 찾아가 그 일을 처리하도록 요구하였다.

 

주승비는 붓을 들어 글을 썼다.

 

“철계를 하사하도록 상주할 것을 동의한다. 일을 책임지는 관원은 전장제도를 자세히 살펴 전례에 따라 일을 처리하도록 하시오.”

 

묘부와 유정언이 그 글을 보고는 기뻐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조정에 나갔을 때 묘부의 시위 부숙(傅宿)이 주승비를 만나기를 요청하면서 말했다.

 

“어제 황상께서 묘부와 유정언 두 분 장군께 철계를 하사한다고 허락하셨는데 오늘 철계 하사 의식을 거행할 수 있겠습니까?”

 

주승비는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주위의 여러 관원에게 물었다.

 

“과거의 선례를 찾아보라 했는데 찾아보셨소?”

 

여러 관원이 답했다.

 

“찾을 수 있는 선례가 없습니다.”

 

주승비가 다시 물었다.

 

“과거의 방법으로 철계를 제조하여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만드는지 아시오?”

 

관원들이 답했다. “모릅니다.”

 

주승비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철계를 만들어서 줘야한다는 말이오?”

 

관리들이 모두 웃었다.

 

부숙은 그 자신도 이유가 안 됨을 알고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비웃음을 면하려,

 

“이미 얻었소.”

 

라고 말하며 물러났다.

 

오묘하기 그지없다.

 

“만약 전례가 있으면 전례대로 하사한다.”

 

이 가설은 상대방의 문제를 근거 없는 것으로 만들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도 그들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진부한 사람에게 그 일을 처리하도록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여 그들과 논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상대방을 격노케 하여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상대방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얻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하여 전쟁이 벌어지고 회복할 여지가 전혀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어떨까? 막 연예계에 입성한 배우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여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 나이트클럽에 초청을 받았는데 사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수준 밖에 안 되면서 여기에서 노래한다는 말인가? 만약 오늘 저녁에 당신이 노래를 부른 후 당신에게 꽃을 건네는 사람이 5명만 있다면 내가 당신을 다음에도 노래 부를 수 있도록 해주지.”

 

이런 치욕적인 말을 어느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배우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

 

“제가 한번 해보지요.”

 

그러고서 저축한 돈을 모두 찾아 직접 입장권 20장과 꽃다발 10개를 사서는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자신을 위하여 박수쳐주고 나중에 꽃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후 점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그에게 적극적으로 축하 꽃다발을 전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끝내 처음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친구들조차 입장표 하나 사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세상에 얼굴을 내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자신의 생각을 뒤에 두고 먼저 타인의 요구에 따라야 할 때가 많다. 자신의 진심을 잠시 접어야 할 때도 많다. 약간 굽혔다가 편다고 어디 문제가 있겠는가? 의견이 조금이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다시는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떤 성공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터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완병(緩兵), 공격이나 방어 등을 한 박자 늦추는 계(計), 전략이다. ‘완병지계’는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을 때 쓰는 전략이다. 상대방의 공격을 다소 늦추게 만들어 한숨 돌리고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이때의 여유를 이용해 도움을 받거나 대책을 마련하거나 쉬었다가 다시 반격하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羅貫中『三國演義』第99回)

 

2) 주승비(朱勝非, 1082~1144), 자는 장일(藏一), 채주(蔡州)〔현 하남 상채(上蔡)〕 사람으로 남송시대 재상이다. 진회(秦檜)가 재상이 되자 8년을 은거하였다.

 

3) ‘묘유(苗劉)의 난’, 남송(南宋) 때 묘부(苗傅), 유정언(劉正彦)이 일으킨 정변이다. 왕백언(汪伯彦) 등 1백여 명을 살해하고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나중에 여이호(呂頤浩), 장준(張浚) 등에게 진압되었다.

 

4) 단서철권(丹書鐵券), 쇳조각에 지워지지 않게 주서(朱書)해 공신(功臣)에게 주어 대대로 죄를 면하게 하던 증명서이다. 금서철계(金書鐵契), 금서철권(金書鐵券), 단서철권(丹書鐵券), 단서철계(丹書鐵契) 또는 간단히 철계(鐵契), 철권(鐵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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