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 사업으로 상처와 갈등을 겪어온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이 14년 만에 제주도.도의회와 상생의 두손을 맞잡는다.
26일 제주도와 도의회, 강정마을회 등에 따르면 오는 31일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상생 화합 공동선언식'이 열린다.
이날 공동선언식에는 원희룡 지사와 좌남수 도의회 의장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와 절대보전지역 해제 등 과오에 대해 공식 사과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청와대와 중앙부처 관계자, 강정마을 주민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최근 강정마을회와 협의를 거쳐 제주도의회에 ‘강정마을 갈등 치유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체결 동의안’을 제출한 바 있다.
해당 협약(안)은 도와 강정마을회가 지난 2월부터 협의를 벌여왔다. 지난달 강정마을총회에서 최종 의결됐다. 동의안이 도의회를 통과하면 도와 강정마을회는 다음달 중으로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주요 협약 내용을 보면 도가 강정지역 주민공동체회복지원금 조성을 위해 ‘2021~2025년 중기지방재정계획’에 따라 오는 2025년까지 매해 50억원씩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기금 조성은 올해부터 추진한다. 전체 규모는 250억원에 이른다.
기금이 조성된 2025년 이후에는 기금의 운용을 강정마을과 협의한다. 기금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제주해군기지 내 강정크루즈항을 이용하는 크루즈 선박 입항료와 접안료의 일정금 등을 기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기금은 ‘제주도 강정지역 주민 공동체 회복 지원 조례’에 따라 강정마을이 원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 사업 등을 지원하는데 쓰도록 했다.
또 정부와 도가 추진 중인 강정마을 지역발전계획 사업과 관련해 직원 고용시 지역주민 우선 채용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시설 운영을 민간에 위탁할 때도 강정마을과 협의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역발전계획 사업과 공동체회복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주도 조직인 ‘강정공동체사업추진단’도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유지하고, 인원도 적정하게 배치해 강정마을 주민 불편사항과 민원 해결을 지원키로 했다.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2007년 4월 강정마을회장이 주민 유권자 1200여 명 중 87명만 참여한 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리고 이를 공식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 결정에 반대한 주민들은 당시 마을회장을 주민 갈등을 조장한 책임으로 해임하고 새로운 마을회장으로 강동균씨를 선출했다.
강 회장이 해군기지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다시 한 결과 반대 680표, 찬성 36표, 무효 9표가 나왔다. 이에 따라 마을회의 입장을 '해군기지 반대'로 공식 확정했다.
그러나 2007년 5월 해군기지 입지 선정 이후 마을 공동체는 급속도로 붕괴했다. 주민간 해군기지 찬반 의견이 부딪히면서 가족 간에도 갈등이 발발하는 등 마을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과정에서 연행된 사람은 2017년 말 기준 모두 696명이다. 이 중 611명이 기소됐고, 2019년 10월 기준 478명이 확정 판결을 받았다. 실형 3명, 집행유예 174명, 벌금 286명, 무죄 15명이다. 벌금 액수만 2억9000만원이 넘는다.
2016년 2월 해군기지가 완공된 이후에도 강정마을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해군은 공사지연으로 인한 추가비용 발생분 등에 대한 구상금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청구했다. 모두 34억5000만원이었다.
국방부는 또 행정대집행 비용 8970만원을 청구했다. 정부는 2017년 해당 구상권을 철회한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강정마을 내 상처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019년 5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해군은 해군기지 찬반을 결정하기 위해 마련됐던 2007년 6월17일 강정마을 임시총회를 막기 위해 사전모의 등의 물밑작업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임시총회 결과에 따라 제주해군기지 유치의 반대 분위기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판단하에 해군이 총회 저지를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펼쳤다는 것이다.
해군에서는 제주기지사업단장이 나서 마을회장을 찾아 임시총회에서 예정된 주민투표를 막아줄 것을 직접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해군 측 관계자가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하는 강정마을 사업추진위 회의에 참석, 주민투표를 막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해군과 강정마을 사업추진위가 사전 논의, 임시총회 투표함을 탈취해 임시총회 및 주민투표를 저지하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해 6월17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투표함 탈취는 실제로 벌어졌고, 결국 주민투표는 무산됐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투표함이 탈취당했다”는 112 신고를 몇 차례 받았으나 “출동하겠다”는 말만하고 실제 현장에는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서귀포시청 공무원들은 서로간에 “성공했다”는 말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제주도청 역시 거들었다. 제주도 측에서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2008년 9월17일 경찰과 해군, 국정원, 제주도 등은 제주시 탑동의 모 식당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과 관련해 유관기관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는 당시 제주도 환경부지사가 주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당시 제주도 자치행정국장은 해군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환경영향평가 동의 과정에서 제주도의회가 장애가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환경부지사는 “분열은 좋은 상황”이라며 “이제는 추진단계다. 걸림돌을 제거하고 가야 한다. 해군이 이를 주도해서 공세적으로 가야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 제주도와 해군은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강정마을 추진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경찰이 체포ㆍ연행하는 과정에서 해군기지 반대 주민 폭행과 집회참가자를 향한 욕설, 물품 강제 압수, 강제 연행, 허위사실을 통한 검거, 차량 압수 등의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기지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강정마을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원희룡 제주지사도 2019년 7월 과거 행정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같은해 9월 강정마을 해군기지 주민들을 직접 만나 사과했다.
이어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도 지난해 8월 강정마을을 찾아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에 대해 공식사과했다. 갈등의 당사자였던 해군의 공식 사과는 강정마을이 제주해군기지 부지로 결정된지 13년 만의 일이다.
이날 부 총장은 "국방부는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관사건립 반대 시설물 철거와 관련된 행정대집행 비용 납부명령을 직권 취소하기로 했다"면서 "이번 결정은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치유하고 민.관.군이 상생발전하고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또한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운동을 해군과 경찰.제주도 등의 공기관이 다앙한 형태로 방해하고, 반대주민들을 괴롭혀 온 사실 또한 진상조사로 밝혀졌다"면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갈등을 해소하고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