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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厚黑)’의 도(道)로 춘추(春秋)를 쓰라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52)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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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3  09: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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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이란 ‘뻔뻔하다’ 뜻이다. 낯가죽이 두껍고 속이 검다는 의미다. 손자(孫子)가 말했다.

“주군(主君)은 분노로 인해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장수는 화가 치민다고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된다.”

도량은 시련을 겪을 때에 체현된다. 일상생활 중에도 희로애락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듯 숨겨야만 한다.

러시아 명저 『거장과 마르가리타』1 중에서 지옥의 왕은 평상시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선글라스를 벗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배역이 신비로운 암시를 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종오의 『후흑학』2을 읽고 나서야 문득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진정한 역량이 있는 인물은 남에게 자신의 의도를 쉬이 간파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은 자아제어에서 온다. 자신의 모든 정서와 행위를 반드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아제어는 어렵고도 어렵다. 그러면서도 가장 필요하다. 자신을 제어할 수 없으면 타인에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제어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먼저 제어하여야 한다.

자신의 감정, 태도, 비밀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언행을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자극을 받더라도 냉정함을 유지하여야 한다. 절대 흥분하거나 격해져서는 안 된다. 충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심신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 자신의 정서를 극복하여야 한다.

이백(李白)은 의미심장한 시를 썼다.

“뛰어난 현인은 호랑이처럼 변한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헤아리지 못한다오. 처음에는 자못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기에.”3

다른 의미에서 용회(用晦)4를 보존하여야 한다는 처세 방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특수한 상황에서 숲에 웅크려 때를 기다리는 맹호처럼, 깊은 물속에서 뛰어오르기를 기다리는 교룡처럼 변화무쌍한 흉금이 있어야 한다. 타인이 쉬이 예측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 반대로 자신은 그 사이에서 조용하고 여유롭게 노닐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이 출중하거나 자신을 뽐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반감을 사게 된다. 큰 손해를 입고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된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표면상으로는 없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충만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주왕(紂王)은 서백후 주문왕(周文王)의 세력이 갈수록 커지는 것을 보고는 붙잡아다 옥에 가두었다. 주문왕이 상(商) 왕조에 구류되었을 때 주왕은 그를 시험하려고 문왕의 아들을 잡아다가 삶아서 고깃국을 만든 후 먹으라고 보냈다.

주문왕은 자기 아들이 이미 고깃국이 됐다는 것을 알고, 슬픔을 겨우 참으며 국을 억지로 삼켰다. 그렇게 주왕의 신임을 얻었다.

그와 동시에 주문왕의 신하들은 보물과 미인을 대량으로 주왕에게 보내면서 끊임없이 유세를 펼쳤다. 주왕은 재물을 좋아해 기꺼이 받았고 엽색에 더욱 빠져들었다. 많은 재물과 미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문왕을 옥에서 빼내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문왕이 돌아간 후 힘을 다하여 실력을 배양하였다. 나중에 기병해 주왕을 토벌하였다. 결국 주왕의 상 왕조를 멸망시키고 주 왕조를 건립하였다.

공자는 젊었을 때 노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한다. 노자는 공자에게 말했다.

“양고(良賈)는 심장약허(深藏若虛)하고 군자는 성덕(盛德)이나 용모약우(容貌若愚)하여야 한다.”

무슨 말인가?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어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군자는 고상한 품행을 갖추고 있지만 겉으로는 어리석은 듯 보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장사치라면 재물을 숨겨 타인이 쉬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고상한 덕을 지닌 군자는 표면상으로는 일반인과 별반 다름없게 보이게 한다는 말이다.

한(漢)나라 시기 장량(張良)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다리를 건너다가 자기 신발을 강물에 내던지는 노인을 만났다. 다리에 올라가자 노인은 그에게 신발을 주어오라고 하지 않는가. 장량은 노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아무 소리 없이 강으로 내려가 신발을 주어왔다.

장량이 신발을 노인에게 건네주자마자 노인은 다시 손을 뻗어 신발을 강물에 던지며 또 가져오라 했다. 장량은 화를 참고 다시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어왔다. 연속 3번이나 그렇게 했다. 장량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불만도 표시하지 않고 노인의 신발을 공손하게 주워와 노인 발에 신겼다.

노인은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시험을 통하여 노인은 장량이 넓은 도량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가르칠만하다고 판단해, 당시 병법의 정수인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전수했다고 전한다.

나중에 장량은 유방(劉邦)을 보좌해 천하를 통일하였다. 바로 장자방(張子房)이다.

   

우리는 인정에 이끌리고 체면을 중시한다. 심지가 세지 못하다. 당겼다 놓았다하며 찰거머리처럼 성가시게 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타인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반면에 성공한 사람은? 예부터 지금까지 대업을 성사시킨 인물은 ‘얼굴이 두꺼운’ 게 사실이다. 휘황찬란한 흰소리를 지껄이기도 하고 이런 저런 부탁의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 낸다. 더할 수 없는 대담한 일도 거리낌 없이 처리하기도 하고 더할 나위 없이 비천한 거동도 서슴없이 자행하기도 한다.

장량 외에도 넓은 도량을 가진 성공한 인물을 찾을 수 있다. 한신(韓信)은 가랑이사이로 기어갔다. 도량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5은 부차(夫差)6에게 패한 후 자신과 처자 모두 오(吳)나라 궁궐로 잡혀가 노예처럼 살았다. 도량이다! 도량이 얼마나 넓으냐에 따라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느냐가 달려있다.

현재 도량에 따른 결과는 과거처럼 그렇게 심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는 경우는 아직도 많다. 낯가죽이 너무 얇아서 일찍부터 집에만 틀어박혀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성공을 어찌 얘기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수양이 깊으면 깊을수록 도량도 넓어진다. 그에 따라 성공도 커진다. 한 순간을 다투는 것보다 천추를 다투는 것이 좋다. 일시의 화를 참고 한 걸음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도 넓다. 한 걸음 물러서면 곳곳이 활로요 발전할 공간이다. 가치도 없는 사람에게 정신역량을 헛되이 쓸 필요가 없다. 사사로움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이렇다. 세상을 살면서 ‘낯가죽이 두껍고 속이 검은〔후흑(厚黑)〕’ ‘뻔뻔한’ 도리를 적당하게 운용하면 가는 곳마다 성공할 수 있다. 대적할 자가 없게 된다. 전진하든 후퇴하든 태연자약할 수 있다. 세인의 눈이나 평가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거장과 마르가리타(The Master and Margarita)』는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Afanasyevich Bulgakov, 1891~1940)의 장편소설이다. 1928년부터 1940년 죽을 때까지 집필과 수정을 멈추지 않았다. 소설은 감추어져 있다가 스탈린이 죽고 문학이 재평가 받게 된 시기에 1967년 잡지 『모스크바』를 통해 처음 출간되었다. 1930년대 현대 모스크바에 악마 볼란드와 그 수행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광란의 마법을 통해 소비에트 시대의 관료와 저속한 문인을 벌주고 풍자한다. 모스크바에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애인인 ‘거장’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새우는 여자 마르가리타 니콜라예브나가 있다. 마르가리타는 악마의 대무도회에 여주인으로 참여해 줄 것을 요구받고 거장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있다는 희망에 그 제안을 수락하는데……. 모스크바와 예르살라임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2) 1912년 중국의 이종오(李宗吾)가 제창한 ‘후흑학(厚黑學)’, 후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이다. 면후는 두꺼운 얼굴, 심흑은 검은 마음이다. ‘후흑학(厚黑學)’은 한마디로 “얼굴이 두껍고 뱃속이 시커먼”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종오는 중국역사 인물을 예로 들면서 영웅호걸이라 불리고 중국역사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인물이 한결같이 낯가죽이 두껍고 뱃속이 숯덩이처럼 검어 승리를 쟁취했다고 한다. 낯가죽이 두껍고 뻔뻔할수록 뱃속이 숯덩이처럼 시커메, 음흉할수록 성공했다는 뜻이다. 후(厚)라는 것은 후안(厚顔), 즉 낯가죽이 두껍다는 뜻으로 모든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으며, 흑(黑)은 흑심(黑心)으로 뱃속이 검어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 염치없음을 말한다. 예컨대 기차 입석표로 남의 자리에 앉고서도 조금도 불안하지 않으며 임자가 나타나면 태연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후흑의 기초적인 기량이 갖추어졌다 할 수 있다.

3) 「양보음」을 길게 읊조리니 어느 때나 화창한 봄을 맞으려나.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조가(朝歌)의 늙은 백정 극진(棘津)을 떠나 나이 팔십에 서쪽의 위수가로 와 낚시질 했던 일을. 백발이 맑은 물에 비추어도 어찌 부끄럽겠는가. 때를 만나 기운차게 펼칠 경륜을 생각하였네. 삼천 육백 허구한 날을 낚시질로 보내며 인품으로 슬며시 문왕과 친하였다네. 뛰어난 현인은 호랑이처럼 변한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헤아리지 못한다오. 처음에는 자못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기에.(「梁甫吟」李白)

4) 동양에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어둠의 철학을 가장 잘 정리한 내용이 주역의 36번째 ‘지화명이(地火明夷)’ 괘이다. 땅속에 불이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용회이명(用晦而明)’이 나온다. 지도자는 “어둠을 써서 정사를 밝힌다” 뜻이다. 왕필(王弼)은 “밖에 밝음을 드러내면 교묘하게 피하게 된다”고 주석하였다. 결국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을 키우다)하라는 이야기이다. 회(晦)는 한 달 중에서 그믐을 가리킨다. 거의 달빛이 사라진 때이다. 일반적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빛을 드러내야지, 왜 어둠을 키워야 된다고 말한단 말인가. 어둠은 중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수신과 처세의 기본으로 삼아온 철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면 상대방은 자기를 알아보기 어렵다. 알아보기 어려워야만 안전할 수 있다.(조용헌, 「어둠(晦)의 철학」 축약)

5) 월왕(越王) 구천(句踐, 약BC520~BC465), 성은 사(姒), 본명은 구천(鳩淺), 옛날 문자가 달랐기에 음역해 ‘句踐’이라 하였다. 또 이름은 담집(菼執), 하(夏)나라 우(禹)의 후예이며 월왕 윤상(允常)의 아들이다. 춘추말기 월나라 국군으로 『순자(荀子)·왕패(王霸)』에서는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하나라 했다.

6) 부차(夫差, 약BC528~BC473), 성은 희(姬), 오(吳) 씨, 춘추시기 오나라 말기 국군으로 합려(閤閭)의 아들이다. BC495~BC473 동안 재위하였다. BC494년 ‘부초의 전투(夫椒之戰)’에서 월(越)나라를 대파하고 월의 도읍(현 절강浙江 소흥紹興)을 점령해 월나라를 굴복시켰다. BC473년에 월나라가 기병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부차는 자신했는데 5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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