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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보리밥 나무 열매[조시중의 숲길 산책 (1)] 보리밥 나무 열매의 강인한 생명력
조시중 논설위원  |  joe-micha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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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05  11: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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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전세계는 물론이고 제주에서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조시중 제이누리 논설위원은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기 위하여 제주도 구석구석에 숲길을 걸어가며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소재를 글로 옮긴다. 주요 소재는 사람들 발길이 드문 숲속에서 자생하고 있는 야생나무와 열매들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기도 하고, 열매를 먹어보기도 하며 그 맛을 느껴보기도 한다. 농민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도 하고, 조상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농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풍부한 자연 생태계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새겨보기도 하는 생각이다.

학명이나 원산지 같이 어려운 내용은 전문가들의 몫이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이 영역을 넘어서기에는 과분하다. 대신에 이 글은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적은 이야기이므로 그저 신변잡기처럼 가벼이 읽어도 될 일이다. [편집자 주]

   
▲ 보리밥 나무.

또 한 해의 겨울이 지나간다. 봄이 가까워 오면서 보리 싹이 푸릇푸릇 해지고 풍성한 수확이 계절이 다가온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있던 숲속에서도 약간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조금 있으면 푸른 새싹들은 찬란한 태양에 반들반들 빛을 발하며 깊고 풍성한 숲이 되어 신선한 공기와 풀잎 냄새가 코를 간지럽힐 것이다.

이 숲속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마스크가 필요 없지만, 앞으로도 지긋지긋한 마스크는 옷을 입는 것처럼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혹시는 고독하게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리밥 나무는 제주도 산야에 자라나는 보리수나무과에 속하는 야생식물이다. 바닷가에나 산간 지방에서도 많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나무의 꽃은 8-10월에 피지만, 열매는 차가운 겨울 눈보라를 이겨내고 3-4월에 엷은 분홍빛으로 익어간다.

보리밥 나무는 보리수나무과에 속하기는 하지만 '보리수(볼레)'와는 다르다. 보리수(볼레)는 가을에 빨갛게 익는데 열매는 콩알 정도다.

열매는 보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보리 볼레'라고 불렀던 것 같다. 옛날부터 춘궁기에 배고프면 따먹었다하여 '보리밥 나무'로 불렀다 한다. 허기를 잠시나마 잊으려 하였던 조상들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

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이 열매는 척박한 토양을 일구며 살아왔던 은근하게 끈질긴 조상들의 생명력과 같다.

   
▲ 보리밥 나무 열매.

2월 중순, 아직도 겨울의 찬 기운이 산야를 웅크리게 하는데도, 벌써 열매가 익어 가는걸 보니 봄이 곧 올 모양이다.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으니 달콤하기도 하고 약간 신맛이 나기도 한다. 약간은 떫은 맛 같기도 하다.

트랙터를 몰고 지나가던 젊은 농부가 “뭐 햄수과?” 라며 인사를 건네자 손을 흔들어 주었다. 농부들은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일터로 향하지만 이 열매를 눈여겨 볼 시간이 없다.

눈이 덮여있는 한라산 정상을 배경으로 시리도록 맑고 푸른 하늘 아래에는 여러 가지 신선한 농작물들이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잘 자라나서 곧 사람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브로콜리 수확을 하면서 포장에 손놀림이 바쁜 농부에게 말을 건넸다.
“한 상자에 얼마우꽈?”
“만오천원 마씨!”
“시장에서 만오천원이면 여기서 만원만 주문 되컹게 마씸”
“예! 만원에 한 상자 가졍 갑서!”

만원을 건네주고 브로쿨리 한 상자를 차에 싣고는 농부가 건네주는 귤을 나누어 먹으면서 잠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이 브로콜리는 백화점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물건보다도 훨씬 신선하다. 밭에서 걸어 나오면서 혹시 과잉생산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항상 아름답다. 흙이 묻고 거칠지만 가장 순수한 손이다. 어려운 사정이야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잘 이겨내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 보리밥 나무.
   
▲ 조시중 논설위원

숲 속 한쪽 구석에 보리밥 나무가 눈에 띄었다. 다른 나무들은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있는데, 보리밥 나무는 상록수여서 잎이 무성하게 남아 있어 쉽게 구별이 간다. 걸어들어 가서 보니 3월에 익을 열매가 벌써 익어가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그만 나무 하나에서 맺은 많은 열매를 보니 풍성한 기분으로 잠시 행복하다. 멀리 정면에 한라산과 그 자락에 뻗어 내려오는 다른 오름 들을 마주 보며 편안하게 주저앉아 약간은 덜 익었지만 보리밥 나무 열매의 향기를 한 입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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