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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28)] 세시풍속(1)

 

세시(歲時)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1년 단위로 시간적 주기에 따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전승의례(傳承儀禮)이다. 태음력(太陰曆)을 기준으로 한 해를 춘(春), 하(夏), 추(秋), 동(冬) 사(四)계절, 3개월 단위로 나눈다.

 

음력 정월부터 3월까지 봄, 음력 4월부터 6월까지 여름, 음력 7월부터 9월까지 가을, 음력 10월부터 12월까지 겨울로 삼는다. 1년을 24절기로 나누어 한 달을 2절기(節氣)로 구분해 15일 마다 한 절기를 맞이한다.

 

세시풍속은 생활공간과 생산 활동에 따라 다르다. 제주도 세시풍속은 절기, 물때, 달거리 등 시간 주기에 따라 산간, 중산간, 해안이라는 생활공간에서 농사, 목축, 어로, 수렵 등 생업(生業)활동 관행(慣行)이 반영된 지역적 특수성이 나타난다. 제주도 세시풍속은 농사와 어로(漁撈), 의례(儀禮) 등의 생활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월이라 상한 일에 청산녹형 노픈 곳듸(높은 곳에)
구름 새로(사이로) 연(鳶)만 둥실 뜨엇구나(떳구나)
남의 집도 소년님네 묵은 옷일 ᄇᆞ려(버려)두고
새옷일 들겨 입어 거리마다 연 구경을 가시는디
일주 낭군 어딜 가서 연 구경을 못가시나
그 ᄃᆞᆯ(달)그믐 허송ᄒᆞ(하)야
이월이라 경칠(경칩) 일에 나무섭(잎)도 봉을 지고
가지마다 침구를 ᄒᆞ(하)는디 일주 낭군 어딜 가고
침구 ᄒᆞᆯ 줄(할 줄) 모르시나 그 ᄃᆞᆯ 그믐 허송ᄒᆞ야(달거리)

 

정월이라 십오일에 청산(靑山)녹산(綠山)도 노픈 곳듸
뜨고 오는 건 연연(鳶鳶)이여 이내 낭군 어딜 가곡
뜨고 올 충(줄) 몰르더라 그도 설루와(서러워) 못 살더라
그ᄃᆞᆯ(달)도 구뭄(그믐) 다 보네고
이월이라 겡친(경칩) 일엔 불카단(불났던) 낭(나무)도
속입(잎) 돋앙(아) 돌아 환싱(생) ᄒᆞ(하)건마는
이내 낭군 어딜 가난 다시올 충(줄) 몰르더라(모르더라)
그도 설루와(서러워) 못 살더라 그 ᄃᆞᆯ(달)도 구뭄(그믐) 다 보네고

 

제주에서는 명절을 ‘멩질’, 설을 ‘정월 멩질’이라 한다. 이날 친족 집을 돌며 제(祭) 낸다. 먼저 종손 집에서 지낸 다음 서열(序列)에 따라 윗대 조상을 모신 집 순서로 돌거나, 반대로 아랫대 친족 집에서 마지막으로 종손(宗孫) 집에서 도제 명절을 지낸다. 집안마다 다르다. 설 차례 역시 집안 가례(家禮)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기제사 방식대로 병풍(屛風)쳐 지방(紙榜)써 붙이고, 삼헌관과 양 집사가 서서 참신, 강신, 초헌, 아헌, 종헌, 첨작, 유식, 잡식, 철변 순으로 진행한다. 이후 음복(飮福)하고 다음 집으로 이동 한다.

 

설날 친족들끼리 세배를 주고받으며 서로 덕담이 오간다. 새로운 한 해에 대한 다짐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진다. 특히 삼년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 혼백상이 있어 상식(床食)을 놓아두는 경우 찾아가 고인에게 세배 드렸다. 이러한 세배를 '상에 댕긴다'라고 한다.

 

설 멩질이 돌아오면 자식들은 부모님께, 연소자는 연장자나 친척 어른들께 새해 문안 인사를 드린다. 이를 ‘세배’ 또는 ‘과세’라고 한다. 예전에는 멩질 때 제주(祭酒)로 쓰기 위해 담근 동당주를 볼 수 있었다. 가끔 ‘청주’를 쓰기도 했다. 정월 멩질 때 만드는 떡은 침떡, 새미떡, 은절미, 곤떡, 절변, 솔변, 멍석떡, 전, 우찍, 중과, 약과, 과즐, 강정, 요외 등이다. 침떡은 땅, 새미떡은 하늘, 은절미는 땅, 곤떡은 해, 반착곤떡은 달, 전(煎)은 구름을 상징한다.

 

정월 대보름날은 ‘액막이 날’이라 하여 ‘방쉬’를 한다. 방쉬는 ‘신을 내 쫓는다’는 뜻이다. 이때 방쉬의 ‘쉬’자는 ‘신’이다. 이 날은 도액(度厄)하는 날이라 집에 따라 정월 멩질 때보다 더 많이 정성 드려 음식 차린다.

 

입춘(立春)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계절(季節)로 ‘새 철 드는 날’이라 했다.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 양력 2월 4일에 해당된다. 이 날은 하늘에 올라갔던 신(神)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신이나 인간에게도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고 여겼다. 각 가정마다 새 봄을 맞이하고 잡귀(雜鬼)를 예방하는 의미로 흰 종이에 좋은 글귀를 쓰거나 그림 그린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기둥 대들보 천장 등 집안 구석구석에 써 붙인다. 이를 ‘입춘축 붙이기’라 불렀다.

 

입춘축은 붙이는 장소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대문에는 ‘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을 써 붙이고 마루에는 ‘화기자생군자택근천하무난사和(氣自生君子宅勤天下無難事)’, ‘백인당중유태화일근천하무난사(百忍堂中有泰和一勤天下無難事)’라고 써 붙였다. 글씨 대신 돌하르방을 그려 붙이기도 했다. 잡귀를 예방하고 집 지켜 준다는 의미에서 돌하르방에 오방신장의 푸른 옷, 붉은 옷을 입혔다.

 

입춘날은 금기사항이 많았다.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라 농사 풍요를 기원하고 집안에 액(厄)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여자들의 집 밖 출입을 삼갔다. 특히 다른 집을 방문을 금했다. 여자가 다른 집을 방문하게 되면 그 집 밭에 잡초가 무성해진다는 속설(俗說) 때문이다. 또한 이 날 돈 거래를 하면 일 년 내내 재물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고 하여 돈이 오가는 일을 삼가 했다. 이 날 상주(喪主)를 만나면 그 해 운(運)이 대통(大通)하여 잘 산다는 속설이 있었다.

 

입춘 날 제주에서는 탐라국시대부터 전해졌다는 입춘굿 놀이가 벌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제주 목관아(牧官衙)에서 제주 목사(牧使)를 비롯한 관리들과 무당 등 관·민 합동으로 풍농(豐農)을 기원하는 입춘 굿 일명 춘경(春耕) 또는 입춘춘경(立春春耕)을 크게 벌였다고 한다. 입춘 굿 놀이는 일제 강점기 때 그 맥이 끊겼다가 1999년 ‘탐라국 입춘 굿 놀이’로 복원되었다.

 

입춘 날에는 기상(氣象)과 곡식 모양을 보아 그 해 농사 풍흉을 점치는 입춘점이 행해졌다. 보리 뿌리점(占)은 입춘 드는 시절 보리밭 가서 보리 세 개쯤 뽑은 뒤, 보리 뿌리가 있으면 그 해 보리농사가 잘 되고 없으면 잘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키점의 푸눈체점 치기는 부녀자들이 부엌에서 화덕 앞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입춘 시간에 푸눈체를 덮어 두었다가 입춘 시간이 지난 후 열어 보고, 좁쌀이 몇 알 있으면 조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입춘 날 바람 많이 불면 그 해 내내 바람이 많아 밭농사가 어려워진다고 믿었다.

 

음력 2월 농가에서는 그 해 풍년을 비는 뜻에서 여러 의례를 행한다. 그 중에서 처음 밭갈이 때 지켜야 하는 풍속이 있다. 밭이랑이 남쪽과 북쪽으로 되어 있을 경우 먼저 동쪽과 서쪽으로 몇 이랑 밭갈이 한 후 밭의 본 이랑대로 갈게 된다. 그래야 그 해 농사를 ‘세경신중 하눌님’이 보살피셔서 풍년 든다 믿었다. 시제(時祭)는 5대손에서 지제(止祭)된 이후 조상에 대한 묘제(墓祭)를 말한다. 시제는 보통 ‘춘추(春秋)단절’이라 해서 봄 2월과 3월 그리고 10월에 지낸다.

 

삼월이라 삼짇 일에 수수 강남 끄레기는
가노라고 하직ᄒᆞ고 만리 강남 지부새(제비)는
오느라고 선신을 ᄒᆞ는디 일주 낭군 어딜가서
선신ᄒᆞᆯ줄 모르시나 그ᄃᆞᆯ(달) 그믐 허송ᄒᆞ야
ᄉᆞ(사)월이라 초패(파)일에 월상 절상 호련등은
창찬을 반 올리고 저리 노피(높이) 뜨엇구나
남의 집도 소년님네 등불 구경 가시는디
일주 낭군 어딜 가서 등불 구경 못가시나 그ᄃᆞᆯ 그름 하송ᄒᆞ야

 

삼월이라 삼짇 일엔 강남 갓단(갔던) 지부새도
알을 치레(치러) 오건 마는 이내 낭군 어딜가난
돌아올 충(줄) 몰르는고 그도 설루와 못 살더라
그 ᄃᆞᆯ도 구뭄(그뭄) 다 보내고
ᄉᆞ(사)월이라 초파일에 놈으(남의) 집도 소년님네
등불 귀경(구경) 가건 마는 이내 낭군 어딜 가난
등 귀경도 안 오는고 그도 설루와(서러워) 못 살더라
그 ᄃᆞᆯ도 구뭄 다 보네고

 

제주도에 ‘3월이 되면 해촌(海村) 사람들이 고사리 볶은 거 얻어 먹으래 온다’라는 속담이 있다. 고사리는 대개 3월 15일에서 4월 15일 사이 캔다. 그래야 너무 세지 않고 맛 좋다. 이 무렵 산으로 고사리 캐러 간다. 그러다 고사리 더 꺾을 욕심에 간혹 길 잃고 헤매기도 한다. 그럴 경우 헬기나 드론이 뜨고 경찰과 소방소원들이 고생하신다는 지역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제사상에 올릴 고사리는 꼭 스스로 꺾어야 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고, 일 년에 네 번 명절과 제사 준비하는 내 아내도 반드시 지킨다. 청명 전후로 ‘고사리 장마’가 지나 여린 고사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드르’로 나가 고사리 꺾기에 여념 없다. 그러나 산소 위에 자란 고사리는 꺾지 않는다. 이 고사리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고사리가 돋아날 때 꺾고 또 꺾어서 아홉 번 재생(再生)하므로 자손이 번성한다. 그리고 조상신이 제사 때 먹다 남은 제물을 고사리 세 줄기로 지게처럼 뻗은 가지에 끼워 승천(昇天)하신다. 이런 믿음 때문에 기제사(祈祭祀)와 명절 때 꼭 고사리 탕쉬를 상에 올린다.

 

메역(미역) 해경(解耕)이란 성장기 미역을 일정 기간 동안 채취를 금(禁採期))하였다가 다 자랐다 판단되는 날을 기해 해금(解禁)하던 일종의 해촌 규약(規約)을 말한다.

 

한식(寒食)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치르는 명절이다. 한식은 설이나 추석처럼 집집마다 제사 지내러 다니지 않고 집안에 따라서 ‘문전(門前) 멩질’이라 하여 해뜨기 전 간소하게 지낸다. 이 명절 때 모든 제물은 찬 음식으로 준비했다. 전날 미리 음식을 장만해 메(밥)와 갱(국)을 식힌 다음 차례를 지내고 음복이나 식사까지 찬 음식을 먹었다.

 

한식날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 하고 특별히 택일(擇日) 하지 않아도 ‘손 없는 날’이라 동티나지 않는다. 그래서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해도 좋으며 비석을 세우는 등 묘소를 단장해도 괜찮다. 청명절과 한식날 전후로 묘제를 지내는데 시제(時祭)라고 한다. 묘제(墓制)는 5대손에서 지제(止祭)된 조상에 대한 제의(祭儀)로 집안에서 제를 지내지 않고 묘소에 가서 지낸다.

 

마을의 말이나 소 수십 마리를 한 곳에 모아 하루 한번 씩 번갈아 가며 차례로 당번을 맡아 방목 한다. 이때 한 곳으로 모인 마을 소 떼를 ‘둔쇠’라고 한다. ‘번갈아 가면서 먹이는 쇠’ 또는 ‘쇠먹이는 당번’이라는 뜻이다. 둔쇠 먹이기는 4월 새 풀이 돋아나기 시작할 때부터 10월 풀이 세어 없어질 때까지 반 년 동안 이어진다.

 

 
▲ 진관훈 박사

제주도에서는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를 고비로 하여 특히 조금 때가 되면 ᄇᆞ들레기(베드레기)를 미끼로 하여 게 잡는 일이 흔하다. 4월 8일 밤에는 ‘난ᄀᆞ매기(고둥)’가 유독 많이 잡힌다 하여 사람들은 이를 잡으러 바닷가로 몰리는 풍속이 있다. 이 날 밤에 바닷가에 있는 해물(海物)들이 모두 바위 위로 나온다고 할 정도로 일 년 중 가장 많이 잡혔던 날이라 온 마을이 법석였다. 이날 집집마다 비릿한 바르쿡(생선국, 예전 남군지역에서는 바다의 여왕인 ‘옥돔’만을 생선이라 했다) 냄새가 진동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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