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30)

두 개의 붓으로 동시에 그리다 ;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는 뜻을 가진 쌍관제하(雙管齊下) 전고는 송나라 때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畫見聞志)』에서 나왔다. “당나라 장조(張璪)는 산수 송석(松石)을 잘 그리기로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다. 더욱이 소나무를 그리는 데에 의경(意境, 예술적 경지)이 특출하다. 손에 두 개의 붓을 들고 일시에 한꺼번에 내려, 하나는 살아있는 가지를 그리고 하나는 시든 가지를 그려낼 수 있다.”

 

정치하든 사업하든 서로 경쟁하는 데에는 실제적으로 역학 법칙을 따라야한다. 서로 다른 힘 가운데에서 어떻게 평형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신에게 조력자와 방해자가 생기게 되는데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고려해야할 문제 중 하나다.

 

전국시대 때, 한(韓, BC403~BC23)나라의 공자 한구(韓咎, ?~BC273)는 왕위 다툼을 벌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당시 한구의 동생은 주(周, BC1046~BC256)나라에 있었다. 주나라는 동생을 중용하면서도 한구가 성공할지 안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에 한구가 군주가 되지 못한다면 주나라도 다시는 그의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게 분명하였다. 주나라 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때 기모회(綦母恢)가 말했다. “100대의 전차와 한구의 동생을 호송해 귀국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한구가 성공해 왕위에 오른다면 100대의 전차로 동생을 호위해 안전하게 돌아가게 한 것이 되고 ; 한구가 실패해 군주가 되지 못하면 한나라에 역신을 헌상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이처럼 두 가지 모두 준비하는 방법은 양단을 잡고서 그 중간을 이용하는 가장 좋은 책략이다. 일전쌍조(一箭雙鵰)와 같은 효과를 보는 것으로 방식만 다를 뿐이다. 화살 하나를 쏴서 두 마리 수리를 맞추어 두 가지 다 노린다는 것이 아니라 왼쪽을 치고 나서 오른쪽을 치는 것으로 각개격파다. 물론 양쪽 다 효과를 얻은 것이니 여전히 ‘양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唐)나라 때에는 관원을 선발하는 데에 엄격한 절차가 있었다. 과거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이부(吏部)의 검증을 거쳐야했다. 이림보(李林甫)는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탐했던 인물이다. 이부시랑(吏部侍郎)이 되고 나서 관리를 선발하는 대권을 걸머쥐었다. 집권자에게 아첨해 정치 자본을 우려내는 작태를 연출한다. 표면적으로는 강직해 아첨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암암리에 못된 짓을 벌였다.

 

이부는 매해 관리를 선발한 후 방을 붙여 합격자를 공포하였다. 어느 해, 방을 붙이기 전에 현종(玄宗, 685~762)의 동생 영왕(寧王)이 사람을 보내 이림보에게 10명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실제로 글쪽지가 붙어있었으니 그들에게 관직을 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림보는 명단을 받아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왕께서 이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분명 알고 계실 것인데도 한꺼번에 10명이나 뽑으라하시니!”

 

영왕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이림보는 곧바로 말을 바꿨다. “왕께서 이 일을 내게 처리하도록 주셨다는 것은, 나를 높이 보신다는 뜻이겠지요. 왕께서는 황실이시니, 황실을 위하여 일을 하시는 것이니, 어찌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일장연설은 영왕을 편안케 만들었다.

 

이림보는 계속해 말했다. “영왕이시여, 이렇게 하시지요. 조정의 법과 기율을 유지도 하고 다른 사람이 기회를 틈타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하려면 제가 10명 중에서 1명을 선발해 대중 앞에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언명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그는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수석합격자로 만들고 좋은 관직을 내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이림보는 충성스럽고 공손하며 유능하고 노련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영왕에게 그가 충심으로 조정을 위하여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찌 영왕이 마다하겠는가.

 

방을 붙이는 그 날, 이림보는 대중 앞에서 언명하였다. “아무개는 영왕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는 조정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다. 어찌 용인할 수 있겠는가! 아무개는 선발할 수 없다.” 말을 끝내자 사람마다 말을 전했다. “이림보는 영왕의 체면까지도 무시하면서 부탁한 사람을 내쳤다. 실로 맑고 깨끗하다.” 이 말이 전해지고 전해져 현종에게까지 알려졌다. 현종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조정에 그러한 대신이 있다니, 크게 중용해야할 것이니라.”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여러 방면을 동시에 아울러 돌아봐야 한다. 그 중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은혜와 위엄을 병행하여야 하고 강하고 부드러운 두 가지에 조화를 이뤄야하며 강온 양책을 써야한다. 이 모두 쌍관제하 지략의 가장 좋은 주해다.

 

쌍관제하는 총명한 머리가 필요하다. 충분한 믿음이 있어야한다. 방법을 선택하는 데에는 독창성을 띠어야 한다. 이런 지모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보기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책략을 실행할 때에는 반드시 깊은 고려가 있어야하고 조심하게 일을 진행하여야 한다. 여러 방법 중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분별해내야 한다. 어떨 때에는 강함이 주가 되고 어떨 때에는 약함이 주가 되며 ; 상이 주가 되어야 할 때가 있고 벌이 주가 되어야 할 때가 있다. 모두 목적에 따라 정해야 한다. 이 책략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면 재주 피우려다 일을 망치는 것과 다름없다. 한쪽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기나니 항상 신중하여야 한다.

 

[인물과 용어 소개]

 

○ 장조(張璪, 생졸 미상) :

 

조(藻)라 하기도 한다. 자는 문통(文通), 오군(吳郡, 현 강소성 소주蘇州) 사람이다. 당나라 때 화가다. 관직은 검교사부원외랑(檢校祠部員外郎)을 지냈다. 형(衡)·충주(忠州)사마로 폄적되었다. 산수와 송석(松石)을 잘 그렸고 두 개의 붓을 쥐고 동시에 그림을 그려 ‘쌍관제하(雙管齊下)’라는 말이 나왔다. 손가락에 먹물을 찍어 그리는 지화(指畵)를 창시하였다. 「산당금회도(山堂琴會圖)」, 「쌍송도(雙松圖)」가 있고 회화이론서 『회경(繪境)』을 지었다.

 

 

○ 한구(韓咎) :

 

한리왕(韓釐王, ?~BC273), 성은 희(姬), 한(韓) 씨, 이름은 구(咎), 한 양왕(襄王)의 아들, 전국시대 한나라의 국군(國君, BC295~BC273)이다. 소대(蘇代)의 도움을 받아 공자 기슬(幾瑟)과 자리다툼에 성공해 한왕에 올랐다. 12년(BC284), 진(秦) 소왕(昭王)과 서주 신성에서 회합해 진나라를 도와 (齊)나라를 공격하였다. 15년(BC280), 한비자(韓非子)가 한국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20년(BC275), 한나라는 진나라에게 패하여 4만여 명이 참수를 당했다.

 

○ 기모회(綦母恢) :

 

생졸년 미상, 전국시대 동주(東周)의 대신, 생평 사적은 『전국책(戰國策)』에 여려 차례 보인다. 일찍이 공손연(公孫衍)이 진나라와 강화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을 자주 지적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3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