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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13)] 근면가

 

제주사회는 전통적으로 삼무(三無)사회였다. 거지 없고(乞無) 도둑 없고(盜無) 대문이 없었다(大門無).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갈래다. 이를 미풍양속으로 보면, 서로 믿고 존중하며 다 아는 사회여서 도둑이 없었다. 그래서 굳이 대문이 필요 없었다. 다만 가축 출입을 통제하고 집주인 출타 상황 알림 기능을 하는 정낭만 있으면 된다.

 

이를 불편한 진실로 보면, 다들 물질적 삶이 궁핍하여 가져갈 재물과 나눠줄 식량이 없어 도둑과 거지가 없었다. 그래서 대문이 없다. 이 해석은 한때 삼무정신을 계승가치(이념)로 삼아 교육했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경제사 관점에서 잉여(surplus)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예전 제주사회는 저생산 사회였기 때문에 축적할 만한 잉여(剩餘)가 부족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그러면 빈 곳간에서는? 지역마다, 시대마다 빈곤(가난)에 대한 대처가 다르다.

 

나라야마 부시코(1983 제작, 1999 개봉)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윤리, 도덕, 제도 발생 이전, 본능 특히 성욕과 종족 보존, 야만성만이 존재하던 사회다. 이곳 사는 사람들은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결혼은 장남만 할 수 있다. 아들 낳으면 밭에 버리고 딸 낳으면 소금장수에게 팔았다.

 

다른 집 식량 훔치는 행위는 중죄다. 다른 사람이 목숨을 빼앗는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70세 넘은 노인은 의식에 따라 나라야마(山)에 버려야 한다(판별 기준은 치아(齒牙) 상태). 이 사회 역시 열악한 저생산 구조여서 잉여나 축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숙명적 절대 가난뿐. 이 사회의 종족 보존 방식은 ‘입 하나 덜기’ 즉, 고려장(高麗葬)이었다.

 

또 있다. 다들 실제 본문을 읽어 봤다고 착각하는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원작에는 매미)’다. 잉여와 자본축적이 존재하지 않는 ‘2차적 집단(secondary group)’에서의 사회적(직업적) 분업(分業)은 매우 위험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분업은 성적(性的)분업, 정치적 분업, 직업적 분업을 말한다. 아담스미스는 최초로 노동 분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강조했다. 경제사를 보면 잉여가 창출되어야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계급이 발생한다.

 

기초적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고 창작과 예술에 전념하는 아티스트에게 돌아오는 건 아사(餓死)다. 아무리 개미가 모질어도 유일 친구인 매미를 정신 차리라고 교훈적 차원에서 굶어 죽게 놔뒀을까? 나눠 줄게 없었다. 일 년 내내 죽게 일하고도 자기네 먹기 빠듯할 정도. 개미가 매미에게 식량을 나눠주게 되면 그만큼 자기네 생존권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다 같이 굶어 죽자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해 봄 재생산 활동이 불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천하 부젠(부자) 하늘이 주곡(주고)중 부제는 부지런이로다
안직(아직) 삶은 양부뮈(부모) 덕이곡 나중 걱정 문제로 고나

 

큰 부젠 하늘엣 부제 족은 부젠 오곰(오금)에 부제
오곰엣 ᄐᆞᆨ(턱) 오곰에 ᄐᆞᆨ

 

낭(나무)도 물도 웃인(없는) 섬이라냐(섬이더냐) 
나도 가민(가면) 물지여 온다 나도 가민 낭지여 온다

 

강진(康津)베(배)에 귀 막은 사공 ᄂᆞ려(내려)사멍(서며) 귀엣말 ᄒᆞᆫ다
족은(작은)베에 짐하영(많이)시껀(실어) 선게(船價)받을 셍각(생각)이 읏나 
모관(濟州牧)이방(吏房)영리방(營吏房) 각시 무싱것이(무엇이) 상덕(上德)이라니
서늘곶듸 도아낭(도실낭, 복숭아나무) 마깨(막개, 방망이) 손에 各(굳은살)가 상덕이라라

 

* 상덕=웃어른에게서 받은 은혜와 덕. 서늘곶=조천읍 선흘리 있는 곶자왈.

 

이처럼 제주 선민(先民)들은 ‘입 하나 덜기’보다 근면(勤勉)을 생존전략으로 택했다. 저생산, 비잉여, 무축적 사회에서의 유일한 혁신 활동이다. 제주 사회 모든 구성원들을 부양(扶養)하기 위해 모두 산, 오름, 바당, 산전, 드르팟 등을 누비고 다녔다. ‘오몽’할 수 없을 때까지 일했다. 농사나 어업, 목축업을 주로 하면서 부업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지 많았다. 다들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도둑질, 동녕질 할 ‘저를(겨를)’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사는 데 사지 멀쩡한 어느 누가 양상군자 노릇을 자임 할 수 있었겠는가?

 

35년 전 실화다. 이른 아침 안커리 살던 큰아버지가 “밧이 가게 마씸” 하며 밧거리 방문을 열어보니, 할머닌 편안히 누워 주무시던 채로 생을 마감하셨다. 할머닌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조 밭 검질 메러 다녀오셨다. 다들 호상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평소 “산이나 바당이나 드르, 어디나 간들 이녁만 열심 허면 먹을 거사 어시 크냐” 하셨다. 그 시절엔 앞 바당 가서 돌만 하나 ‘대싸도(뒤집어도)’ 칼슘과 단백질, 나트륨을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할머닌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검질 메고 조 솎음질하다 할아버지 가시고 일 년 후, 평생의 노동을 내려 놓으셨다. 제주에선 별 특별하지 않은 집안일이다. 지금도 조 코고리를 보면 패랭이에 수건 두른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말씀이 고우셨다.

 

교장선생 각시인 어머니는 연 140일 정도 ‘ᄂᆞᆷ의 미깡 타러’ 다닌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와 허리를 다치기 전까진 그랬다. 고사리 철엔 연 80일 정도 고사리 ‘꺽으래’ 간다. 지금도 촌에서 고사리 꺾기는 거의 전투다. 아무리 부자라도 농번기 철에 집에 있으면 남들이 뭐라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감귤 수확 철이면 친구 분들이 다 과수원에 감귤 따러 가기 때문에 친구 만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보다 내가 남의 과수원 감귤 따 줘야 그 ‘쿰’으로 우리 감귤 따줄 ‘놉’을 구할 수 있다. 교장선생 각시 정도는 군계 중 그냥 일계(鷄)다. 어머니와 같이 ‘미깡 타러’ 다니는 멤버(?)인 판사 어멍, 전 지서장 각시, 전 우체국장 각시, 동물병원 원장 각시, 전 도의원 어멍, 전 도지사 처제, 심지어 대형 횟집 여사장 등이 밭주인보다 더 ‘멩심’ 히 귤을 딴다. 자존심은 버리고 자존감은 높여야 한다.

 

방에 듯(찧듯) ᄀᆞ레(고래, 맷돌) ᄀᆞᆯ(갈) 듯 ᄒᆞ민(하면) 
세간(살림) 못 살 사름(사람)이셔냐 
나록ᄊᆞᆯ(볍쌀)이 낭 지레(지러) 가멍 산뒷ᄊᆞᆯ(밭벼)이 물지레 가랴
그 밥 ᄒᆞᆫ(한)술 날 주어시민 낭글(나무를) 지나 물지나 ᄒᆞ컬(할걸)

 

벨진밧도 버치는(버겁다)뒤 ᄃᆞᆯ진밧이사 내 어떻ᄒᆞ리
불칸(불탄) 밧듸 쉐(쇠) 닮은 년아 무신 벌이로 역귀여(품팔아) 먹으리
모진 벌이로 역귀여 먹나 
아방 싱근(심은) 정ᄌᆞ낭(정자나무)그늘 어멍 싱근 펭제낭(팽나무)그늘 
그늘이사 좋아라 마는 이내 몸은 장ᄌᆞ(장자)를 지난 
瞞(앉아) 놀을 ᄌᆞ를(겨를)이 읏다(없다)

 

서늘곶듸 낭 지레(지러) 가난 짐패(질빵) ᄍᆞᆯ란(짧아) 못 지엄(지고)서라
실프댕(싫다)도 나 말앙 간덜(간들) 기립댕(그립다)도 뉘 ᄒᆞ여 주리
실픈 일을 기리왕(하고파) ᄒᆞ민(하면) 성이 언매(얼매, 얼마)나 가실것가

 

아기(아길)러라 아기러라 우뉴월 마당질을 숨 쉬우는 아기러라
보리곱곡(굽고) 삼 거린듸(갈렸는데) 아기 우회(위에) 날 ᄌᆞᆸ아(집어)노라

 

100% 지금은 안 그렇다. 예전 제주에서는 육지사위는 선호했지만 육지며느리는 싫어했다. 육지사위는 투박한 섬놈들에 비해 상냥하고 고분하며 ‘ᄌᆞᆫ셈’도 좋다. 그러나 육지며느린 남편만 부려먹고 ‘까다’(치장)만 부리며 일은 안한다는 오해가 있었다.

 

이 역시 실화다. 작은아버지가 마산에서 교편생활 할 때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배타고 올라가서, 작은아버지를 제주로 강제 소환했던 적이 있다. 이럴 거면 당장 ‘선생 설러 불라’ 하시면서. 이유는 당시 작은아버지가 그곳 여선생님과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유리창이 ‘벌러지고’ 난리가 충분히 난 후 작은아버지는 지금 작은어머니랑 이곳에서 결혼했다.

 

“새벽이 듬북 ᄒᆞᆫ 짐 안 ᄒᆞ여 온 메누리 조반 안 준다.” 새벽에 둠북 한 짐 안하여 온 며느리 아침밥 안 준다. 어촌, 특히 구좌읍 일대에 통용되고 있는 제주 속담이다. 새벽 일찍 바다에 가서 둠북을 한 짐 가득해 오지 않는 며느리는 아침밥을 못 얻어먹었다. 부지런하고 생활력 강해야 시집살이 제대로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당연 힘들다. 그러니 어느 누가 ‘땅 부제 일 부제“ 인 제주에 시집오려 했겠나. 내 아내는 육지 며느리다. 그래도 제주 고(高)씨다.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소견으로, 제주여자들은 ‘굴툭’이 심하다. 결혼하기 전까진 그렇게 확신했다. 지금은 지역적 특성이 아니라 사람별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본디 ᄌᆞ냑(저녁) 어둑는(어둡는) 집의 오ᄂᆞᆯ(오늘)이(이라고) ᄇᆞᆰ은(밝은) 때 ᄒᆞ라 
어둑경은(어둡거든) 밤이(이라) 말라 밤도 아니 어두워러라본디 ᄌᆞ냑 어둡는 집의 메일(매일) 장상(長常, 항상) 
오ᄂᆞᆯ이믄 성도 언매나(얼매, 얼마나) 가실 것가
이어 방에 고들베(고들배, 연거푸) 영(찧어) ᄌᆞ냑이나 ᄇᆞᆰ은 때 ᄒᆞ져

 

본디 ᄌᆞ냑 어둑는 집의 오ᄂᆞᆯ이 ᄇᆞᆰ은 때 ᄒᆞ라
동지 섣ᄃᆞᆯ(섣달) 지나진(기나긴) 밤의 삼은 삼(麻)이 발 가슴(가웃)이여
발로 발안(밟아) 가슴이라냐 자로 재연(재여) 가슴이라냐

 

ᄌᆞᆷ(잠)도 자겅(자거든) 느리ᄌᆞᆷ(늦잠) 자랴 
무신 ᄌᆞᆷ을 날 새는 중 몰르게(모르게)도 잠시니 
ᄌᆞᆷ도 자겅(자려면) 여시좀(여윈잠) 자라

 

아방 놀단(놀던) 동(東)소낭(소나무) 그늘 어멍 놀단 서(西)소낭 그늘
그늘이사 좋아라마는 瞞(앉아)놀 저시(여유)걱이 읏다

 

ᄌᆞᆷ 안 자멍(자며) 석 세 베(布)ᄒᆞ영 설룬(섧은) 아기 질루랭(기르려) ᄒᆞ난
ᄇᆞ딧(바디) ᄂᆞᆯ(날)에 씰(실) 들어가듯 멩(명)만 잇엉(이어) 넘어나 가민

 

오월 장마 지여(지어) 불라(버려라) 석 ᄃᆞᆯ(달) 열흘 지여 불라
ᄒᆞᆫ ᄃᆞᆯ을랑 누웡(누워) 자곡(자고) ᄒᆞᆫ ᄃᆞᆯ을랑 머리 빗곳(빗고)

 

대죽(수숫대)낭긔 곶가귀(수풀까마귀)도 타 ᄃᆞᆯ려사(달려야) 타(따)먹어진다

 

* 벨진밧=‘별이 떨어진 밭’이란 뜻으로 넓고 좋은 밭을 의미함. ᄃᆞᆯ진밧=‘달이 떨어진 밭’이란 뜻으로 ‘벨진 밧’에 짝 맞추기 위하여 만들어 낸 말. 고들베(고들배)=쉬지 않고 꾸준히

 

“아버지 놀던 동쪽 소나무 그늘, 어머니 놀던 서쪽 소나무 그늘, 그늘이야 좋더라마는 앉아서 놀 여유가 없다.” 나도 안다. 그늘 좋은 거. 먹고 살려고 일만 하다 보니 겨를이 없을 뿐.

 

“오월 장마 지어 버려라 석 달 열흘 지여 버려라. 한 달은 누워 자고 한 달은 머리 빗고.” 그나마 장마 들어 비 오면 밭에 일하러 갈 수 없다. 석 달 열흘, 즉 100일간 장마 들면 한 달은 밀린 잠자고 빈둥빈둥 누워 놀다가, 다른 한 달은 머리 빗고 치장하며 편히 지내고 싶다는 이루어 질 수 없는 허언(虛言)이다. 이상 기후 운운하는 올해 장마가 아무리 길어도 49일이었다 한다. 30년간(1990~2019년) 장마철 기간은 평균 31일로 이 중 16.6일 동안 비가 왔다.

 

제주에선 거지를 ‘동녕바치’, ‘동냥아치’라 한다. 게와시, 거러지, 걸바치, 걸바시, 동냥바치, 걸바지, 걸렁바쉬 등도 같은 말이다. 구걸행위는 동녕(洞糧)질이라 했다. 제주사회에서는 거지를 동정의 대상으로 보거나 혹은 반대로 혐오의 대상으로 본다.

 

전자는 거지를 가엾고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나태하고 게으른 존재로 보는 경우다. 전자는 주로 개인적 결함이 아닌 자연재해로 인한 빈민인 경우이며 후자는 무능력, 나태, 게으름과 같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기인하여 거지가 된 경우이다.

 

빈곤에 대한 대책 역시 빈곤 원인이 ‘자연재해’냐 혹은 ‘개인적 결함’이냐에 따라 다르다. 전 근대 사회의 빈곤은 대부분 자연재해에 기인한다. 제주사회 역시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인 삼재(三災), 즉 풍재(風災), 수재(水災), 한재(旱災) 발생이 빈곤의 주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자연재해는 농경 본위(本位) 사회에서 농가소득에 직접 피해를 주었으며 대부분 흉황(凶荒)과 기근(饑饉)으로 이어졌다.

 

찰스 부스 빈곤조사, 라운트리 빈곤조사, 마르크스 자본론 이전에는 개인주의적 빈곤(죄악)관이 주를 이뤘다. 주홍 글씨, 개별구제 금지, 허가받은 거지, 지능 지수 등. 근대 사회복지 이후 적극적 국가 개입 빈곤관, 복지 국가적 빈곤관으로 전환했다. 핵심은 빈곤의 원인이다. 개인적 일탈이냐 경제 구조적 문제냐에 따라 빈곤과 거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

 

일찍부터 제주사회에서 구빈대상은 주로 자연재해로 인한 빈곤과 기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나태로 인한 빈곤은 사회적으로 죄악시하여 거지를 혐오했다. 엘리자베스 빈민법 이후 제도적 구빈활동은 노동 능력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면 조건부 수급 자활 참여제도다. 예전엔 동네에 동녕바치가 나타나면 돌멩이나 연탄재로 ‘맞치곤 했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지금 돌이켜보면 사지 멀쩡하고 일할 능력이 있어 보이는 동녕바치에게만 그랬던 거 같다.

 

참고문헌

 

고재환(2001),『제주속담총론』, 민속원.
김동국(1979), “빈곤에 관한 연구”,『부산대학교 법학연구』제22권 2호, pp. 273~291.
김상규(2009), “속담에 나타난 빈곤․분배의 분석 및 개선방안의 모색”,『사회과학연구』제15권 제1호, pp. 5~27.
김영돈(2002),『제주도 민요 연구』, 민속원.
김오진(2009),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후와 그에 대한 주민의 대응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김준형(2011), “조선후기 거지, 문학적 시선과 전승”,『한국어문학연구』제56집, pp. 73~102.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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