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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없는 전쟁의 두려움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1917 (4)
김상회 정치학 박사  |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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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4  11: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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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선. 독일군과 마주한 최전선에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영국군 부대에 마침내 ‘내일 총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영국군 사령부는 공중정찰을 통해 독일군이 퇴각한다는 정보를 파악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퇴각이 독일군의 기만전술임을 파악한다. 에린모어 장군은 급히 스코필드 병장과 블레이크 일병을 독일군 점령지역을 통과해 전방부대 매킨지 대령에게 공격취소명령서를 전달하도록 한다.

   
▲ ‘개싸움’에서라면 인정에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 미사일엔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잔뜩 웅크리고 폐허가 된 채 버려진 독일군 점령지역을 통과한다. 길은 가시밭이다. 독일군이 버리고 간 참호에서 지뢰가 폭발해 매몰될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인이 떠난 농가에서 소젖을 짜서 수통에 담으면서 전진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농가에서 소젖을 짜 비상식량을 조달하면서 독일 전투기와 영국 전투기 몇대가 벌이는 공중전을 한가로이 올려다본다. 

말이 ‘공중전’이지 커다란 글라이더 몇대가 한가롭게 하늘을 노니는 모습에 가깝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비행기를 하늘에 띄운 1903년으로부터 겨우 10년 남짓 지난 시점이니 당시의 ‘전투기’라는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당시 전투기 용도는 적진 정탐용과 간혹 적진 폭탄투하에도 동원됐다고 하는데, 폭탄투하는 부정확하기 이를 데 없어 대단히 위험하거나 무모한 짓이었다고 기록된다. 또한 적재화물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기관총 탑재는 언감생심이었다. 

‘공중전’이라고 해봤자 상대 전투기들이 아군 진영을 정탐하지 못하게 날개를 흔들어 으르렁대며 ‘몸’으로 막아서고, 근접한 조종사들끼리 서로 주먹을 흔들어 보이고, 심한 ‘쌍욕’을 퍼붓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골목싸움을 하늘로 옮겨놓은 것이 당시의 공중전이다. ‘매우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지면 조종사들이 권총이나 카빈총을 상대 전투기에 발사하거나 수류탄을 던지는 정도였고, ‘공중전’이 더 격렬해지면 상대 전투기를 향해 밧줄을 던지는 것이 주요 공격방식의 하나였다고 한다.

운 좋게 밧줄이 상대방 프로펠러에 걸리면 적기 1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리는 것이다. ‘공중전’의 최종병기가 밧줄이었던 셈이다. 그것이 차라리 권총 발사보다 격추 확률이 높았다. 그야말로 ‘좋았던’ 옛날에 대한 아련한 향수까지 느끼게 하는 ‘once upon a time’ 같은 이야기다. 이런 공중전을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이 다분히 자조적으로 ‘Dog Fight(개싸움)’라 불렀다고 한다. 썩 어울리는 표현이다.

   
▲ ‘독일군 퇴각’ 정보를 입수한 영국군이 총공격을 시도하지만 오판이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개는 총칼 들고 싸우지는 않는다. 그저 맨몸으로 으르렁대고 짖어대고 몇번 물어뜯어대다 한쪽이 꼬랑지 내리고 물러설 뿐이다. ‘개싸움’은 공중에서만 벌어졌던 것이 아니고 땅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러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영국군 병사들은 일제히 착검하고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독일군 참호 속에 뛰어들어 뒤엉켜 총을 쏘고 칼로 찌르는 ‘개싸움’을 치러야 한다.

과학기술이 ‘진보’하면서 더 이상 ‘개싸움’은 없다. 1917년으로부터 28년이 지난 1945년 8월 6일, 그리고 9일 미국은 B-29 전폭기에 탑재한 묵직하고 통통한 원자폭탄 2발을 정확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해 단 한순간에 30만명을 몰살했다. ‘개싸움’ 속에 상대를 죽여야 하는 병사들은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러나 구름 아래 펼쳐진 도시에 원폭을 투하한 티베츠(Paul Tibbets) 대령은 과연 인간으로서의 죄의식을 느꼈을까.

그로부터 다시 70년이 흐른 지금은 굳이 수고스럽게 폭탄 싣고 장거리 여행할 필요도 없다. 수십만, 수백만의 인간의 삶의 터전은 모니터 위의 작은 좌표에 지나지 않는다. ‘워 게임(war game)’하듯 모니터 보고 앉아 단추만 누르면 미끈한 미사일이 저 혼자 알아서 수백·수천㎞를 헐떡거리며 날아가 인간들이 모여 사는 아무 곳이나 들이받는다.

   
▲ ‘전투’는 사라져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되레 더 잔혹한 전쟁이 기다릴 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개싸움’은 무척이나 처절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어찌 보면 목가적牧歌的이고 인간적이기도 하다. ‘개싸움’에서라면 인정에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 미사일에 어떤 호소가 통할 것인가. 영화 1917이 보여주는 참호 속에서 뒤엉키던 보병들도, 전투기 조종사끼리 서로 얼굴을 보고 ‘쌍욕’을 해대며 총질을 하던 ‘인간’들도 사라졌다. 

현대기계문명은 병사들이 ‘개처럼’ 뒤엉켜야 하는 ‘전투’의 수고로움도 덜어줬다. ‘전투’가 사라진다. ‘전투’가 사라지면 ‘전쟁’도 따라서 사라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투’는 사라져도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삶의 터전이 모니터 상에 작은 좌표 한점으로 환원되고, ‘기계화된 살육’에 아무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전투’ 없는 ‘전쟁’은 더욱 두렵다. 수고로운 ‘개싸움 전투’ 없이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면 ‘전쟁’에 대한 유혹은 더욱 강해질 수도 있겠으니 말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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