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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개발의 서막부터 모든 기업 도산까지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10)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정경유착
조중연 작가  |  kalito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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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03  1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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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이 제주에 와 지역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1962년 추정) [사진=제주도]

제주도 개발의 서막

반민특위 제1호로 잠깐 체포되었던 박흥식은 5·16쿠데타 직후 부정축재자로 다시 지목된다. 1949년 1월 반민족행위처벌법 제4조 7항의 ‘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장을 경영한 죄’로 구속되어, 반민법 공판에서 무죄 언도를 받기까지 103일간 옥고를 치렀던 박흥식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 일주일 후 5월 23일 밤 박흥식은 자택에서 연행되어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혁명정부는 그가 민주당 정부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막대한 이권과 특혜 융자를 챙겼을 거라 생각했다. 당국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은 화신산업의 회계장부를 말 그대로 ‘탈탈’ 털었으나, 공식적으로 낸 정치자금 100만원 외에 어떤 혐의도 발견하지 못한다.

43일의 옥고를 치른 박흥식은 소정의 벌과금을 내고 석방된다. 그 즈음 혁명정부는 종합경제재건 5개년 계획안을 발표하는데, 박흥식에게도 국가재건에 적극 참여해서 타기업의 모범이 되어달라고 종용한다. 박흥식은 부정축재자로 몰렸던 일 때문에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하고 있었다. 혁명정부는 박흥식의 풍부한 사업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국가재건을 위한 아이디어만이라도 제출해 달라고 삼고초려를 한다. 박흥식의 화신산업은 이미 6대 사업 계획안을 갖고 있었다.

박흥식은 일제강점기에 사 두었던 제주도땅을 떠올려 제주도를 관광 허브로 키워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것은 곧바로 1961년 9월 박정희의 첫 번째 제주도 방문으로 이어졌다. 사전 조사 형식이었다. 박정희는 제주도의 온화한 기후와 천혜의 자연조건, 광활한 초원 등의 이국적 풍치에 매료되었다. 제주도의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과 민속을 자원으로 관광 개발, 광활한 초원을 활용한 축산, 그리고 따뜻한 기후에 적합한 감귤을 특산품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다.

   
▲ 1976년의 5.16도로. [사진=제주사진DB]

바야흐로 제주도 개발에 물꼬가 트인 순간이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가장 먼저 도로가 뚫렸다. 1962년 3월 24일,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한라산 횡단도로 공사가 시작되어 1963년 10월 11일 비포장 상태로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1966년 전 구간 포장이 완료되었다. 5․16도로가 개설되자 제주와 서귀포가 한 시간 거리로 단축되고, 제주도가 일일생활권으로 바뀌었다. 이어 1970년 11월 3일에는 일주도로가 포장 완료되었고, 1973년 12월 17일에는 제2횡단도로가 개통되었다.

조선 제일의 갑부의 몰락

그 즈음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케와 한일관계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었다. 일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의 실세였고, 박정희 주변에는 만주사관학교 출신 관료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른바 ‘만주 네트워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여기에 또 박흥식이 등장한다. 대한해협을 오가며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사이에 다리를 놓은 자가 박흥식이었다. 박흥식은 일제강점기의 인맥을 활용하여 박정희의 밀서를 기시 노부스케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물밑 작업을 바탕으로 한일기본조약이 맺어졌다.

박흥식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박정희로부터 송도해수욕장 개발권과 재생 섬유 비스코스 인조견사(人造絹絲) 회사인 흥한화섬(흥한화학섬유) 단독 설립권을 받았다. 화신산업 6대 사업 계획으로 박흥식이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내용이었다.

박흥식은 1962년 5월 15일 자본금 3억원의 흥한화섬을 설립한다. 곧바로 남양주 도농 17만평 부지에 8억5천만원 짜리 초대형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대적인 공사였다. 그러나 외자와 내자 유치에 차질을 빚으면서 화신산업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박흥식은 넉넉잡아 2년이면 공장을 완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외자 차관 기간을 2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정했는데, 정부의 지급 보증이 자꾸만 늦어지는 바람에 기계도 돌리기 전에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또 하나는 8억5천만원이면 될 거라 생각했던 내자가 실제 금액을 뽑아보니 14억원에 육박했다. 이후 물가 급상승까지 더해져 25억원으로, 끝내는 4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화신산업은 옛 종로경찰서 대지 1400평과 신문로 사옥을 팔아 공장건설자금으로 충당하였다. 이로도 부족하자 화신산업 소유의 부동산을 시장에 내놓고, 박흥식의 사재마저 털었으나 내자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악재가 계속되자 주거래은행이었던 산업은행과 별도로 조흥은행으로부터 편타 대출을 받게 된다. 내자조달도 어려운 판에 차관 상환까지 밀어닥쳤으니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박흥식의 몰락은 이 이름도 생경하고 뜻도 어려운 ‘편타 대출’로부터 시작된다. 장기영 부총리가 조흥은행에 편타 취급을 강요해서 흥한화섬에게 3억5000만원을 대출하도록 압력을 넣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대출한 금액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해주는 ‘한도 외 대출’로 특혜 융자를 해준 것이다.

1965년 벽두부터 민정당과 민주당은 임시국회에서 이 ‘금융 특혜’를 문제 삼고 나섰다. 야당은 장기영 부총리가 화신산업에 특혜를 주도록 은행에 압력을 넣었고, 방법과 절차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가이드라인을 내렸음을 폭로했다. 야당은 조흥은행의 ‘편타대출’ 사건을 은행법 위반이 아니라 정치 스캔들로 비화시켰다.

급기야 박정희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 ‘대통령하야권고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정권 최고책임자인 박정희가 직접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므로 책임지고 하야하라고 정치 공세를 벌인 것이었다. 야당은 1963년 대통령 선거 때 화신산업 등 3개 재벌 회사가 15억원의 정치자금을 냈으며 박정희가 보답 형식으로 145억원의 특혜 여신을 해주었다는 사실까지 거듭 폭로했다. 민정 이양이라는 혁명공약을 깨고 여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박정희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 박흥식은 투자자금과 여론의 뭇매까지 더해져 안팎 곱사등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계속된 이중고와 재정난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산업은행 차관의 상환 기일이 다가오자 장기차관 500만 달러를 도입해서 타개에 나서려 했으나, 정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무렵 동시에 제출된 다른 회사의 차관 도입 신청서 일곱 건 중 화신산업 건만 불발되었다. 야당의 정치 공세와 사늘한 여론을 의식한 조치였다.

   
▲ 조중연 소설가

그 무렵 정계와 재계에는 박정희가 박흥식을 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결국 박흥식은 담보로 잡힌 화신백화점과 사업체, 그리고 사유재산까지 모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재계의 주류에서 밀려났고,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 제일의 갑부의 몰락’이라 논평했다. 이후 화신소니, 화신레나운을 설립하고 재기를 도모했으나, 1980년 300억원 부도로 모든 기업이 도산하면서 기업가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정경유착의 말로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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