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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6) 군국주의자 자신들의 광기 합리화

 

바다의 천둥, 나는 제비

 

교래리 비밀비행장은 가미카제 전용 특공기지였다. 가미카제는 일본인들이 오래전부터 호국의 바람이라 믿었던 신풍(神風)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일제는 무엇보다 가미카제용 비행장이 필요했다. 1945년 7월, 교래리 비밀비행장이 완공되자 육해군 모두에게 비밀 지령이 하달된다.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하면 비행기로 자살특공을 펼치라는 내용이었다. 또다시 일본 육군과 해군간의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먼저 불을 지핀 쪽은 해군이었다. 일본 해군은 자살특공부대로 신요(震洋)와 카이텐(回天) 기지를 건설했다. 신요는 폭탄을 장착한 자폭용 소형 보트였고, 카이텐은 미사일 모양으로 생긴 1인용 인간어뢰였다. 어뢰 속에서 잠망경으로 바다 위 적함을 확인하고 전속력으로 달려가 부딪치도록 설계되었다. 1.55톤의 화약이 탑재된 카이텐은 한번 발사하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탄두가 불발해도 수압 때문에 안에서 문을 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귀포 삼매봉․성산포 일출봉․고산 수월봉 해안에는 신요 기지가, 모슬포 송악산과 함덕 서우봉 해안에는 카이텐 기지가 각각 구축되었다. 종전 전 마지막 10개월 동안 2500명 이상의 병사가 이 자살특공 임무로 내몰렸다.

 

일제 최후의 저항은 하늘에서도 준비되고 있었다. 해군에 제로센과 시덴카이가 있었다면 육군에게는 히엔(飛燕)이 있었다. 히엔은 당시 육군이 보유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속도도 빠르고 회전 반경도 작았다. 날개폭 12m, 길이 8.75m, 높이 3.7m의 소형 전투기로 250kg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교래리 비밀비행장은 이 히엔에 특화된 비행장이었다. 건설할 때부터 가미카제 전용 비행장으로 설계되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해방 후 미24군단 항복 접수팀이 도착해서 제주도 내의 일본군 병기를 폐기할 때 찍어둔 사진에 히엔 2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미카제 특공대

 

전세(戰勢)뿐만 아니라 숙련된 조종사나 비행기, 폭탄 등 모든 면에서 연합군에 뒤졌던 일제는 심각한 물자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레이테 해전이 한창이던 1944년, 일본 해군 중장 타키지로 오니시는 아주 신박한 공격 방법을 창안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는 일제가 항복하자 할복자살했고, 그가 할복할 때 사용한 칼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시되었다.

 

원 플레인 원 쉽(one plane one ship).

 

비행기 한 대로 군함 한 척을 폭파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결론적으로, 자살특공은 명령하는 자 관점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작전이었다. 복잡할 것도 없었다. 폭탄 실은 비행기를 출격시켜 적의 군함 갑판에 내리꽂기만 하면 되었다. 조종사 한 명과 비행기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가미카제 공격 성공률은 6%에 불과했고, 나머지 비행기는 허공에서 격추되거나 바다에 추락했다. 조종사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0%였다. 실패해도 돌아올 수 없게 편도행 연료만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자살특공대원들은 자신이 죽으면 야스쿠니 영새부(靈璽簿)에 이름이 오른다는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지상(地上)의 신(神)인 일왕이 자신을 군신(軍神)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주고 참배도 해준다는 확신에 차서 자발적으로 전쟁 기계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왕이 내린 사케를 무릎 꿇어 받아 마시고, “야스쿠니에서 만나자” 목이 터져라 외친 다음,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전쟁에서 전사하면 야스쿠니에 합사되고, 일왕이 신사 참배하여 과거의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면, 군국주의가 부활하여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은 한 철 사쿠라처럼 전장에서 꽃잎을 떨구고, 다시 야스쿠니에 합사되고, 그러면 일왕이 다시……. 뭐랄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되는 것 같기도 한, 참으로 해괴한 후불제식 악성 순환 고리였다. 김수남은 이게 뭘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것은 군국주의자들이 자신의 광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급조한 논리일 뿐이라고 주석했다. 그것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가장 악질적이고 추악한 범죄행위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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