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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진의 味談(3)]'벌기 위한 농사'가 아닌 '살기 위한 농사'

 

매주 토요일을 기다린다. 농민장터에 가기 위함이다. 농민이 직접 일주일 동안 열심히 자라준 농산물을 솎아서 들고 나와 1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좌판 위에 늘어놓고 앉아 있는 장터다. 접이식 천막 대여섯 동을 쳐 놓고 그늘을 만들어 너댓 시간동안 장 판을 벌이고 팔리다 남은 못난이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파장할 때까지 사람다움이 넘치는 장터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지난 5월 노형동 끝자락인 월광로 서쪽 끝자락에 개설된 한살림 제주 담을장 매장 뒤편에서 매주 토요일 열린다. 제주 담을장은 매월 첫째주 토요일 열리는 플리마켓(Flea Market)이다. 플리마켓과 농민장터는 다르다. 담을장에도 참석하지만 농민장터는 이미 1년 이상 자생해온 농부들만의 장터다.

 

플리마켓은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다. 원래는 중고물품들을 형식 없이 늘어놓고 파는 임시개설 시장이지만 지금은 온갖 물건을 다 만날 수 있는 도깨비시장으로 불린다. 개인 셀러들이 모여서 소규모 좌판을 펼쳐 놓고 중고물품은 물론이고 직접 제작한 수제물품들을 위주로 판매한다. 10여년 전 부터 이주민들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형성된 플리마켓은 심심치 않게 곳곳에서 열리더니 한동안은 너무 많이 개설되고 천편일률적인 구성으로 외면을 받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된 느낌을 주고 있다. 장마다 쫓아다니던 장꾼들은 이제 자신이 집중해야 할 장을 골라 참석하고 상품 역시 골라서 내 놓고 있다. 예전만큼의 관심을 받진 못하지만 몇몇 장터는 꾸준하게 지속되며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농부들이 개설한 플리마켓이라 할 수 있다. ‘자연그대로’라는 이름대로 자연재배, 무농약, 유기재배 등 화학적인 처리를 거부한 농사꾼들이 모인 장터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을 농산물을 자신이 직접 재배하는 농부들이다. 그것을 나눠주는 장터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이다.

 

그들 스스로 원칙을 정해 놓고 있다. 첫째는 3무. 제초제를 쓰지 않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농산물만 판매한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GMO 농산물이나 그것들을 이용한 가공식품은 판매하지 않는다. 셋째는 일회용품을 가능한 배제한다. 종이컵이나 비닐봉투 등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용기나 장바구니를 가져 가야한다.

 

 

이 장터의 구성원들은 그 이름에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들이 느껴진다. 검질과 버렝이, 몰뱅이동산, 자연과 공존, 가이아의 정원, 가장자리, 제주자연, 자연친구, 놀부, 호이, 탐모란, 맘놓고, 민경, 지수할망, 언니네 텃밭 등 틀에 박힌 ‘농업’이 아닌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농사’를 짓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이 장터의 중요성은 다양성이다. 한 계절에 집중하여 수십 톤을 생산하는 획일적인 농산물이 아니고 철에 따라 달라지는 농산물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특히 관행농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 토종 농산물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고 제주에 적응해 가는 새로운 작물들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경제논리에 밀려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단순화 시켜버리는 사회 속에서 이는 정말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농민장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단명했다. 그 주축이 되었던 것은 단일작물 위주로 기업화된 농업인들이었고 관변단체들이 개입되곤 했었다. 그들이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보여주기식의 장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운영해 왔다. 즉, 장터가 가지는 최고의 가치인 다양성이 없는, 단지 농산물을 쌓아놓은 또 다른 공판장이었을 뿐이었다. 단일 작물은 한 계절에 생산시기가 몰려있고 결국 사시사철 장터를 운영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농업이 경제행위로서 국제경쟁시대를 맞으면서 과거 정부가 경쟁상대로 삼은 것은 미국, 중국, 남미 등 대량 생산 국가들이었다. 넓은 국토에서 대규모 기계화 영농을 통해 대량 생산하는 나라들을 경쟁상대로 설정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생산량이 많은 개량종 농산물을 도입함으로써 원래 이 땅에 오랫동안 존재해 온 고유한 작물들을 퇴출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면 다행이었을 텐데 결국 경쟁력도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와 규모가 비슷한 유럽의 강소국들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고유한 품종을 철저히 지키고 그것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품종을 농민들 스스로 계속 생산하게 한다. 그 나라, 그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그 지역의 요리사와 소비자들이 우선 소비하고 잉여 생산물은 수출하거나 가공 처리한다.

 

유럽의 농민장터에 가면 다양성이 눈에 들어온다. 한 농가에서 계절에 따라 다양한 농산물을 들고 나온다. 지속성이 있는 것이다. 종이 다른 농산물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한 종류의 작물에 몰두하는 농가도 보인다. 예를 들어 양파나, 토마토, 감자 등은 한가지 작물이지만 다양한 품종으로 개발해서 수확시기가 다르고 성질도(이를테면 당도, 크기, 모양, 수분함량, 영양소 함량 등) 다른 작물을 생산,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경우 소비자는 그 농가들을 전문가 그룹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가 믿음을 가지면 결국 매출로 이어진다. 계통출하를 위해 농협에 매달리고 중간상인의 농간에 놀아날 일도 없다. 결국 자신들의 고유함을 지키는 것이 곧 경쟁력인 것이다.

 

 

우리의 농업 현실을 지적하면 그때마다 농업인들이나 전문가라는 분들이 비웃곤 했다. 우리 농업의 현실도 모르면서 말로만 떠든다는 역지적을 받곤 했던 것이다. 또는 변화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존의 경작지를 다 갈아엎으라는 것이냐? 당장의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것이냐? 나라에서 그렇게 하진 않는다. 등등....

 

모두 다 타당한 이유들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의지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꿀 생각이 없고 현실 안주를 추구하면서 뭐가 문제니 나라에서 해결해 달라, 지원을 해달라, 현대화하자는 등 또 다양한 의견을 내세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라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으로는 한꺼번에 바꿀 그림만 그리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경작지 한구석에 조그만 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그것을 귀찮아한다. 우선 내가 먹을 것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농사를 업으로 보고 돈이 안되면 안한다는 사고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려움을 겪는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 시기를 거쳐 익숙해 질 때까지 힘든 시기를 피하려는 마음이 더 큰 것이다. 현재 100만원을 버는 노력의 세배, 네배의 노력을 들여서 다시 100만원 밖에 벌 수 없다면 그걸 왜 하느냐는 것인데 당연한 듯 느껴진다. 그러나 현재의 100만원이 언제까지 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안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생각 해 보아야 한다.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다양한 희망이 생긴다.

 

지난해, 제주에서 친환경 농가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일을 기억한다. 많이 생산하면 많이 팔리고 수입 또한 많을 줄 알았던 그 분들의 죽음을 보며 많은 이들이 역시 많은 생각과 의견들을 보여 주었다. 그 중 기억나는 것 중에는 친환경 농업을 비웃는 몹쓸 얘기도 있었다. 생산보다 판매가 중요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살기 위해 짓는 것이 농사인데 그것 때문에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민장터에 갈 때마다 그분들을 생각하게 된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것들을 지구는 만들어 내고 농사는 그런 생산활동을 도와 그것들을 거두어 나누는 행위이다. 즉, 지구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농사인데 그 반대로 다양성을 해치고 단순화 하려는 행위를 경제성이라는 명분으로 당연시하는 지금의 상황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다양성을 잃어버린 사회는 결국 인간 또한 단순화된다. 각자가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일부의 위정자들이 그들의 편의에 따라 돈이라는 미끼로 모든 것을 획일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몸부림이 펼쳐지는 공간이 바로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이다.

 

제주로 귀향한 한 농촌 활동가를 중심으로 2018년 태동을 거쳐 농부들 스스로 만든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농사꾼들의 다양성을 표현하면서 단순히 ‘벌기 위한 농사’가 아닌 ‘살기 위한 농사’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매주 토요일, 태풍이나 폭우 때문에 서너번 열지 못한 적은 있지만 꾸준하게 1년 6개월 이상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이전에는 농어민회관 마당에서 매주 일요일에 열렸었다.

 

젊은 처자가 직접 담은 막걸리도 맛볼 수 있고 알러지 걱정 없이 직접 만든 요리나 된장, 간장, 두부 같은 가공 식품도 맛 볼 수 있다. 누가 농사지었는지 알 수 있는 제주다운 토종 농산물들과 유럽 시장에서 봤던 허브도 조금씩 늘어서 있는 자그마한 좌판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 좌판 뒤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다듬으며 담소를 나누는 농부다운 농부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은 채 살고 있는 사람다운 느낌이 살아있는 작지만 소중한 장터가 거기 있는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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