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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식스 센스(2)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는 반전 영화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진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반전에도 흔히 ‘식스 센스급 반전’이라고 과장하기도 한다. 아동심리학 의사인 말컴 박사는 그레이라는 소년의 심리 치료에 실패했던 기억을 지우고 살아간다. 한 소년을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구하진 못했지만, 심리학 의사로선 성공한 말컴 박사. 반전은 거기서 시작된다.

 

 

말컴 박사가 필라델피아 시장으로부터 그의 탁월한 업적을 기리는 표창장을 받고 우쭐하는 날, 대수롭지도 않게 잊고 지냈던 과거의 소년 환자 그레이가 청년이 돼 나타난다. 어린 그레이는 이미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는 그레이가 자신을 팽개친 말컴 박사를 원망하고 증오하며 그에게 총격을 가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도 자살하는 충격적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1년 후, 자신이 구하지 못한 그레이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말컴 박사가 의사로서의 책무를 소홀히 한 잘못을 회개라도 하듯,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또 다른 꼬마 콜의 상담에 매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의 대단원은 말컴 박사가 사실은 1년 전 이미 그레이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정리된다. 참으로 기발한 ‘반전’이다. 영화는 사실상 시작하자마자 끝난 셈이다.

 

소설이나 영화작법에서 마지막에 나타나는 반전은 독자나 관객들에게 단순한 재미 이상의 강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뒤늦게 주제를 선명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1986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이 선보였던 유명한 ‘반전反轉 캠페인’이 있다.

 

건물 공사장에 백인 노인이 한명 있다. 갑자기 복장도 불량하고 생김새도 마이크 타이슨 같은 흑인 젊은이가 노인을 향해 거칠게 돌진해 덮친다. 누구나 노인을 공격하는 강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곧이어 공사장 건물에서 자재가 노인이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다. 그제서야 관객들은 젊은이가 노인을 구하기 위해 덮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전 기법’을 동원한 또 다른 인상적인 외국의 공익광고도 유명하다. 턱시도를 잘 차려입은 한 노인이 행복한 얼굴로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다. 화려한 파티의 유복한 노인 같아 보인다. 그러나 카메라가 조금씩 멀어지면서 비로소 그 노인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구걸을 위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전 영상’들은 누군가가 보여주는 대로, 혹은 단편적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의 함정을 경고한다.

 

‘식스 센스’ 속에서 말컴 박사가 집에 침입한 환자에게 총격을 당한 후, 아내는 말컴 박사에게 극도로 냉랭해진다. 집에 돌아온 그에게 눈길조차 안 주고 돌아누워 티슈 한통을 모두 뽑아가며 눈물을 짜고 있다. 결혼기념식날 식당에서도 그가 오기 전에 혼자 식사를 마치고, 늦게 도착한 그에게 말 한마디 안 하고 먼저 계산서를 집어 들고 자리를 뜬다.

 

말컴 박사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영화를 따라가는 관객이라면 당연히 아내의 행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신의 환자를 무책임하게 버린 남편을 경멸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토록 위험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무언의 시위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말컴 박사가 사실은 죽었다는 ‘반전’이 이뤄지고서야 관객들도 말컴 박사 아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와 그녀의 깊은 상실감을 알 수 있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학파 중에서 ‘회의주의(skepticism)’는 ‘에포케(Epoche·판단중지)’를 제안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아무리 그럴듯하고 완벽해 보이는 주장도 반론 가능하고 반전 가능하다. 그래서 단편적인 현상으로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 섣부른 판단보다는 차라리 고개를 갸우뚱하는 ‘판단중지’가 덜 위험하다.

 

전체적인 맥락은 도외시한 채, 단편적이고 파편과 같은 주의·주장들이 ‘단톡방’을 넘어 명색이 언론이라는 영역에까지 횡행하고, ‘책임감 느껴야 할’ 정치인들까지 여기에 뛰어든다. 특정한 의도를 맥락 없이 ‘띄엄띄엄’ 보면 열광하기도 쉽고 그만큼 분노하기도 쉽다.

 

우리가 지금 열광하거나 분노하는 모든 일들이 멀리서 보면, 혹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때까지는 일단 ‘판단중지(epoche)’하고 맥락을 살피고 조금 참을성 있게 지켜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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