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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조커(1)

‘조커(joker)’는 ‘정의의 사도’ 배트맨의 대척점에 선 최악의 악당이다. 배트맨 시리즈는 썩 단순명쾌한 ‘선악 구도’로 짜여있다. 당연히 요한복음의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 실현된다. 어두운 하늘에 배트맨이 아침 해처럼 떠올라 조커가 드리운 무거운 어둠을 걷어낸다. 하지만 조커는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악당 조커는 어찌 보면 영웅 배트맨의 존재 이유다. 조커가 없다면 배트맨은 할 일이 딱히 없다. 조커의 난동과 포악성이 극에 달할수록 배트맨의 활약이 절실하고 그만큼 눈부시다. 회색과 대비된 흰색보다는 완전한 검은색에 대비된 흰색이 더 눈부시다.

 

영웅을 돋보이게 하고 싶다면 악당은 철저히 악당다워야 한다. 슈퍼 히어로가 있으려면 슈퍼 빌런이 필수적이다. 슈퍼 히어로의 탄생을 위해 오늘도 악당들은 괜히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노라며 핵폭탄 하나씩 들고 왔다갔다 하더니, 이젠 우주를 통째로 날려버리겠다고 나댄다. 판이 점점 커진다.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엑스맨, 스파이더맨, 킹스맨….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맨’자 돌림 영웅들의 전성시대다. 영웅들이 이렇게 바쁜 것을 보면 물리쳐야 할 악당들이 참으로 많은 모양이다. ‘◯◯맨’ 영화들은 단편으로 끝나지 않고 모두 시리즈물로 제작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의 악이란 잡초와 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모양이다.

 

 

하지만 영화 ‘조커’는 우리에게 익숙한 ‘맨’ 시리즈의 단순한 ‘선악구도’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조커가 그토록 극악무도한 악당이 된 이유를 추적하는 데 집중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받은 ‘아서(Arthur)’는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홍보맨 일을 하며 성실히 산다.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가혹하다. 동네 어린 ‘양아치’들이 재미삼아 두들겨 패고, 직장 동료들에게도 배신과 조롱을 당한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마저 자신을 기만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아서는 ‘마음 편히’ 악당이 된다. 직장 동료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도 죽이고, 토크쇼에 출연해서 자신을 조롱한 토크쇼 진행자도 ‘리얼타임’으로 죽여버린다. 빌런들이 모여서 슈퍼 빌런을 만들어 낸 꼴이다.

 

고자(告子)는 맹자(孟子)의 성선설과 순자(荀子)의 성악설을 이렇게 꼬집으면서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창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善)과 불선(不善)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치 동쪽으로 흐르는 물과 서쪽으로 흐르는 물이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도 덧붙였다. “사람의 본성이란 본래 선도 악도 아니며, 다만 교육하고 수양하기 나름이며 자신이 처한 환경과 수행의 과정에 따라 어떤 품성도 될 수 있다.”

 

칸트도 “도덕상의 선악은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의지의 산물일 뿐이다”고 주장하면서, 인성엔 선의 자질과 악의 자질이 공존한다고 봤다. 미국 교육학자 토마스 듀이 역시 “인성의 본질에는 선악이 없고, 다만 환경의 영향으로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역시 인간의 내부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조커’는 타고난 악당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를 악당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조커는 사회의 산물이고, 사회적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선과 악의 선택이 ‘의지의 결과물’이라고 규정한다면, 선을 선택할 의지가 약했다고 할 수는 있겠다. 끔찍한 ‘악’을 저지르는 뉴스들이 쉬는 날이 없다.

 

‘악’과 ‘빌런’은 현실인데, 히어로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영화처럼 악당이 나타나면 반드시 어디에선가 ‘맨’이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절대 오지 않을 ‘맨’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평범한 아서가 최악의 빌런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작은 빌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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