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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게는 신용을 지킬 필요 없다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4)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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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0  11: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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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용을 지키라고 제창하는 목적은 교역 중에 상대방에게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려하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자기편이나 맹우에게 믿음으로 대한다. 만약에 적이라면? 적에게도 신용을 지켜야 할까? 그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에 머물 때의 일이다. 공자가 밖으로 나가려면 포(蒲)나라를 경유하여야했다. 때마침 포나라의 공숙씨(公叔氏)가 군사를 일으켜 위(衛)나라와 대적하려 하였다. 공숙씨가 공자가 포나라를 경유해 위나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병사를 보내 공자를 도중에 막아서서는 공자에게 말했다. “위나라에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을 보내줄 것이오.”

공자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길을 막아선 병사에게 위나라에 가서 맹약을 맺지 않겠노라고 약속하였다. 병사는 그 말을 믿고 성을 나서게 하였다. 성문을 나서자마자 공자는 곧바로 마부에게 위나라 방향으로 질주하라고 명했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물었다. “방금 맺은 약속을 위반하여도 되는 것입니까?” 공자가 답했다. “강요당하여 한 약속은 성하지맹(城下之盟)(★)이다. 신도 준수할 수 없다.”

가장 신용을 지키는 사람은 성하지맹과 같은 약속에 구애받지 않는다. 진정한 신의는 언약을 하는 데에 있지 않다. 이 도리를 알아야한다.

   

전국시대에 초(楚)양왕(襄王)(★★)이 태자로 있을 때 제(齊)나라에 인질로 간 적이 있었다. 초 회왕(懷王)이 붕어하자 태자가 제왕에게 고별인사하고 초나라로 돌아가려하자 제왕이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에게 초나라 동쪽 변방의 토지 5백 리를 주면 그대는 돌아갈 수 있지만 주지 않으면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마시오.” 태자가 말했다. “내게 태부(太傅)가 있습니다. 그에게 묻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태부 신자(愼子)(★★★)가 말했다. “동쪽 변방의 토지를 제나라에 주십시오. 귀국해 왕위를 계승하기 위함입니다. 토지를 아껴 죽은 부친의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면 불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데 토지를 할양하겠다고 답하는 게 좋겠습니다.”

태자가 제왕을 만나서 말했다. “왕의 요구에 따라 오백 리 땅을 할양하겠습니다.” 그러자 제왕은 초나라 태자가 귀국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태자가 초나라에 돌아간 후 왕의 자리를 계승하였다. 제나라는 병거 50량을 초나라에 보내 토지를 넘겨주라고 독촉하였다. 초왕이 신자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신이 찾아와 동쪽 토지를 내놓으라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신자가 말했다. “군왕께서 내일 입조할 때 모두에게 계책을 내놓으라고 하십시오.”

이튿날 상주국(上柱國) 자량(自良)이 입조해 초왕을 뵐 때 초왕이 말했다. “내가 고국에 돌아와 국가 대권을 맡을 수 있었던 까닭은 제나라에 5백 리 토지를 할양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오. 지금 제나라가 찾아와서 토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자량이 말했다. “왕께서는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주의 말은 한번 내뱉으면 바꿀 수 없습니다. 변경의 토지를 강한 만승지국 제나라에 주겠다고 이미 대답했으니 주지 않으면 신용을 잃게 됩니다. 이후에 제후와 맹약을 체결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게 됩니다. 신이 보기에 토지를 할양해 주시고 이후에 공격해 뺏어오는 게 좋겠습니다. 토지를 할양하는 것은 신용입니다. 무력으로 뺏어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먼저 토지를 할양해주십시오.”

자량이 물러나고 조상(照常)이 입조하니 초왕이 물었다. “제나라 사자가 와서 동쪽 변경 500리를 주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조상이 답했다. “줄 수 없습니다! 만승지국이라면 토지가 넓기에 만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동쪽 변경 500리를 넘겨준다면 우리나라의 반을 없애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만승이란 칭호만 남게 될 뿐입니다. 천승이라 부를 땅조차도 없게 됩니다. 아니 됩니다. 신은 넘겨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컨대 군대를 주둔해 동쪽 변경의 토지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조상이 물러나고 경리(景鯉)가 입조하자 초왕이 또 물었다. “제나라 사자가 와서 동쪽 변경 500리를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경리가 답했다.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초나라 혼자서 그것을 지키기 힘듭니다. 대왕께서는 지존이시라 대왕의 말은 금구옥언(金口玉言)입니다. 토지를 만승지국 제나라에 할양한다고 대답하고는 주지 않으시면 천하의 사람들이 불의하다 말할 것입니다. 초나라도 혼자서 지킬 힘이 없으니 신은 서쪽으로 가서 진나라에 도움을 청하기를 원합니다.”

경리가 물러나자 신자가 들어왔다. 초왕은 대부 3명의 주장 모두를 신자에게 말해주었다. “자량은 내게 동쪽 토지를 할양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소. 먼저 주고 나중에 무력으로 뺏어오자고 하였소. 조상은 제나라에 토지를 할양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소. 동쪽 토지를 군대를 파견해 지키라고 하였소. 경리는 제나라에 토지를 할양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초나라 혼자 지킬 힘이 없으니 마땅히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고 하였소. 신이 보기에 내가 누구의 방책을 따라야 하겠소?”

신자가 답했다. “대왕께서는 모두의 의견을 따르시면 됩니다.” 초왕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태부는 정말 이상하시오. 모두 따르라니 무슨 뜻이오?”

신자가 말했다. “신이 결코 농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의견에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말을 들어보시면 그 세 가지 계책을 동시에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시게 되실 겁니다. 대왕께서는 상주국 자량에게 병거 30승을 내주시고 제나라에 가서 토지 500리를 할양하러 왔다고 전하게 하십시오. 이튿날 조상을 파견해 군대를 동원해 동쪽 토지를 지키도록 하십시오. 사흗날에 다시 경리를 파견에 병거 50승을 거느리고 진나라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라고 하십시오.”

   

초왕은 신자의 세 가지 계책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책에 따라 먼저 토지를 할양한다고 자량을 제나라에 파견하고는 암암리에 조상에게 동쪽 토지를 굳건히 지키라고 분부하였다.

제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동쪽 토지를 접수하러 사람을 보냈다. 조상이 성벽 위에 굳건히 서서 사자에게 말했다. “나는 이 토지를 지키라고 명령을 받았다. 이 땅과 생사를 같이 할 것이다. 나이 60인 5척 나 이 남아는 30여 만 조나라 사병과 함께 죽음을 불사하려 한다. 비록 무기와 장비가 변변치 못하나 이 땅을 지키기 위하여 한 몸을 바칠 것이다.”

사자가 돌아와 제왕에게 보고하자 제왕이 자량에게 말했다. “대부는 친히 토지를 바치겠다고 나를 찾아왔는데 조상은 어찌해 그곳을 지키며 움직이지를 않소? 어찌된 일이오?”

자량은 초왕이 자신에게 한 말대로 대답하였다. “신은 친히 초왕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조상은 왕명을 받았다고 사칭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동쪽 변방을 공격해 조상을 토벌하십시오!”

제왕은 대군을 거느리고 조상을 토벌하러 떠났다. 초나라 변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나라의 50만 대군이 제나라 변경에 다다랐다. 진나라 장수 우양(右壤)이 말했다. “제나라가 초나라 태자가 귀국하는 것을 저지했으니 그것은 불인(不仁)이다 ; 그러고도 초나라 토지 500리를 공격해 약탈하려하니 그것은 불의(不義)다. 군사를 돌리면 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공격할 수밖에 없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제왕이 듣고는 질겁해 자량을 놓아주고 귀국케 하고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 강화를 청하여 제나라에 닥친 재난에서 벗어났다.

이 일을 보면 초나라가 말을 했으면서도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군사를 동원해 전투를 벌이지도 않고 동쪽 변경을 초나라 영토로 보전한 결과를 보면 신의를 지키는 것보다는 가치가 있다. 초나라에서 볼 때 제나라는 적이 아닌가? 제나라 왕이 억지스럽게 탐욕을 부려 제나라를 핍박해 억지로 성하지맹을 맺게 한 까닭에 빚어진 일이다. 초나라에게 “신의를 저버렸다”는 불명예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 성하지맹(城下之盟), 성 아래에서의 맹세,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와서 항복하고 체결하는 맹약으로 대단히 굴욕적인 강화다 : 『춘추좌전(春秋左傳)』 환공(桓公)12년 기록에 보인다. 초(楚)나라가 교(絞)에 쳐들어가 성 남문에 진을 쳤다. 막오(莫敖) 벼슬에 있는 굴하(屈瑕)가 계책을 말했다. “교 땅의 사람들은 도량이 좁고 경솔합니다. 사람이 경솔하면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땔나무 하는 인부들을 호위병을 딸리지 않은 채 내보내서 이것을 미끼로 삼아 그들을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나무하는 인부들을 내보냈다. 교 땅 사람들은 예상대로 북문을 열고 나와 산속에 있는 초나라 인부를 삼십 명이나 잡아갔다. 이튿날은 더 많은 인부를 내보냈더니 교 사람들은 재미가 붙어 성문을 열고 서로 앞 다투어 산속으로 들어가 인부를 쫓기에 바빴다. 그 틈을 타 초나라 군사는 북문을 점령하고 산기슭에 숨겨 두었던 복병이 성 밖으로 나온 군사를 습격함으로써 크게 승리를 거두고 성 아래에서의 맹세를 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 『춘추좌전』宣公15年 기록에도 나온다. 초(楚)나라가 송(宋)나라 성을 포위했을 때 송나라가 끝끝내 버티고 항복을 하지 않는지라 초나라 신숙시(申叔時)가 꾀를 써 숙사를 짓고 밭을 가는 등 장기전 태세를 보였다. 그러자 송나라는 겁을 먹고 사신을 보내 화평을 청했다. “성 아래에서 맹세는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군대를 30리만 후퇴시키십시오. 그러면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성하지맹이란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와 항복하고 체결하는 맹약을 일컫는다. 적에게 성을 포위당한 끝에 견디다 못해 나가 항복하는 것이다.

★★ 초(楚)경양왕(頃襄王, BC329~BC263), 호북(湖北) 의성(宜城) 동남에서 출생하였다. 성은 미(芈), 웅(熊) 씨, 이름은 횡(横), 초(楚)회왕(懷王)의 아들로 전국시기 초나라 국군(國君)이다. BC298~BC263 재위하였다. 재위시기에 초나라는 이미 쇠락단계였다. BC263년 초경왕이 병사하자 진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태자 웅완(熊完)이 도망쳐 와 계위했는데 고열왕(考烈王)이 그이다.

★★★ 신도(愼到, 약 BC390~BC315), ‘신자(愼子)’라 존칭 받는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한단(鄲郸, 현 하북성) 사람이다. 『사기(史記)』는 그가 ‘황로의 술(黃老之術)’을 전공했다고 하였다. 제(齊)선왕(宣王) 때에 일찍이 사직에서 강학을 하여 가장 영향력이 있는 학자 중 한 명이었다. 『사기』에는 저서 『이십론(十二論)』이 있다고 하였고 『한서·예문지』는 법가류 저서 『신자(愼子)』42편이 기록돼있다. 도가(道家)에서 나온 법가 창시자로 돼있다. 나중에는 대부분 산실돼 현존하는 『신자』는 「위덕(威德)」, 「인순(因循)」, 「민잡(民雜)」』, 「덕립(德立)」, 「군인(君人)」 5편이고 『군서치요(群書治要)』에는 「지충(知忠)」, 「군신(君臣)」』 2편이 있다. 청(淸)왕조 때 전희조(錢熙祚) 7편으로 합편해 『수산각총서(守山閣叢書)』를 만들었다. 이외에 근대에 신도 일편(佚篇) 『신자왕공검(愼子曰恭儉)』이 출토되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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