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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12)

성경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식탐, 교만, 나태, 탐욕, 정욕, 시기, 분노를 ‘7 deadly sins(7가지 대죄)’라고 표기한다. 영화 ‘세븐’의 살인마 존 도는 ‘deadly sin’을 혹시 문자 그대로 ‘죽을 죄’라고 직역해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설마 그것을 ‘모두 죽어 마땅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고 가르쳤을까.

 

 

연쇄살인마 존 도가 소위 ‘7가지 죄악’을 범한 7명을 7일간 살해하는 스토리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마냥 통쾌하고 후련해하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그 ‘찝찝함’의 원인은 아마도 ‘죄’와 ‘도덕’의 혼란에서 오는 듯하다. 존 도는 성경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표기된 ‘7 deadly sins’의 ‘deadly sin’을 혹시 ‘죽을 죄’로 직역해 그들 모두를 죽여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deadly sin’은 ‘심각한 죄’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죄(sin)’와 ‘범죄(crime)’는 분명 다르다. 죄는 도덕적인 문제이며 범죄는 처벌을 받아야 할 실정법의 문제다. 우리는 거의 하루에도 몇번씩 혹은 항상 7가지 죄를 저지르고 산다. ‘7가지 감정’을 느끼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몇번이나 있을까. 다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행동으로 직접 옮기지 않고 자제할 뿐이다. 많은 경우 그 감정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면 곧 폭행, 강간, 강도, 살인이라는 범죄로 이어진다.

 

영화 ‘세븐’에서 그나마 7가지 죄를 저지르지 않는 듯 보이는 인물은 아마도 정년퇴직을 앞둔 노형사 서머셋밖에 없는 듯싶다. 서머셋 형사는 탈진한 듯 보이기도 하고, 산전수전 모두 겪어서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기도 하다. 물욕도 없고, 명예나 지위 욕심도 없다. 그저 은퇴하면 시골 가서 작은 목장이나 하며 은둔자의 여생을 보내는 것이 꿈이다.

 

가족도 없다.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을 찾아 독서로 소일한다. 존 도는 밀스 형사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보고 ‘시기심’을 느끼지만 사랑에 실패해서 가정을 이루지도 못하고 홀로 사는 서머셋 형사는 부러움이나 질투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대자대비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밀스 형사의 분노 게이지를 급상승시키는 기자에게도 덤덤하다. 먹는 것도 참으로 맛없게 깨작거린다. 한마디로 형사가 아니라 고승 대덕이나 수도원장의 풍모다.

 

 

서머셋 형사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실정법을 범하는 범죄는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가 명문화한 ‘7 deadly sins’도 저지르지 않고 살지도 모르겠다. 그 나머지는 어림도 없다. 7가지 죄를 저지른 자들이 말 그대로 모두 죽어야 한다면 살아남을 자들이 몇이나 될까. 또 다른 ‘노아의 홍수’가 있다면 서머셋 형사 정도가 2대 ‘노아’의 역할을 맡아 방주를 띄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진화’와 ‘진보’를 말한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인간과 사회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진보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자동차 타고 KTX 타고 비행기 타고 다니는 것, 편지에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는 대신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을 진보라고 한다면 그것도 진보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진정한 진보의 기준은 도덕성의 진보가 아닐까. 도덕의 진보를 생각하면 인간이 진화하고 진보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까마득한 옛날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개탄한 신이 홍수로 타락한 인간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데, 1200년대를 살았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전히 「신학대전」에서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 범하는 7가지 죄악상을 개탄한다. 노아의 홍수 시대에서 1200년까지 인간의 도덕적 결함에 관한 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모양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대로부터 또다시 1000년이 흘렀지만 인간이 저지르는 7가지 죄악은 더하면 더했지 여전하고 나아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법을 사회의 중심에 놓고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도덕적 진보를 이미 포기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도덕은 포기하고 법만이라도 지키라고 기대 수준을 대폭 낮춰버린 모양이다.

 

존 도는 법학자 루돌프 예링의 말대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일 뿐인 것이 확실할진대, 분명 끔찍한 도덕적 죄를 짓고도 그것이 실정법상 범죄가 성립되기에는 애매하단 이유로 너무도 당당한 인간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법의 잣대로 본다면 별것도 아닌 일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 사형을 집행한 존 도는 그저 ‘미친 살인마’일 뿐인지, 혹은 그 심정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그것도 혼돈된다.

 

어느 전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법치주의적 공방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그들의 행각은 실정법의 잣대를 대면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말 그대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뒤이어 쥐 한마리가 나타남)’일 수도 있겠지만,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가족을 탈탈 털어대는 사람들 말처럼 그야말로 ‘죽어 마땅한 죄(deadly sin)’가 될 수도 있겠다. 공직자들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지도 혼란스럽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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