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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11)

영화 ‘세븐’에서 신의 대리인을 자칭한 연쇄살인마 존 도에게 걸린 또 한명의 희생자는 매춘부다. 죄목은 ‘정욕(lust)’. 정욕은 모든 종교에서 예외 없이 죄악시한다. 같은 욕망이지만 ‘열정(passion)’은 신의 의지에 따르는 정신적 욕망으로 상찬받지만, 정욕은 신의 의지에 반하는 육체적 욕망으로 철저하게 죄악시된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신이 만든 인간의 모든 육체적 본능은 항상 문제적이고 죄가 된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7가지 죽을 죄(seven deadly sins)’라는 식탐·교만·시기·욕망·나태·분노·정욕 모두가 어쩌면 신이 특별할 것도 없는 우리에게 부여한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그것이 모두 ‘죽을죄’라면 인간이 모두 리콜 대상인 불량품인 셈이다. 애초에 좀 잘 만드셨으면 인간도 편하고 신도 불량품 단속하고 처벌하고 회수하느라 바쁘지 않았을 듯한데 안타까운 일이다. 신에게 조롱당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회사원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정욕’을 해결하기 위해 매춘부를 찾아간다. 이 운수 사나운 남자는 차라리 경찰 단속에 걸렸으면 경범죄 정도로 끝났겠지만, 경찰이 아닌 정욕을 7가지 죽을죄로 간주하는 신의 대리인인 존 도에게 된통 걸려버린다. 그런데 당연히 존 도가 정욕의 죄를 범한 이 남자를 처형할 것이라 예상하는 관객에게 뜻밖의 장면이 전개된다.

 

 

존 도는 남자 고객이 아니라 매춘부에게 정욕의 죄를 물어 살해한다. 직접 살해하지 않고 남자가 여자를 죽이도록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우리에게 익숙한 법 적용이나 법 감정과는 왠지 거리가 느껴진다. 처형 방식도 글로 옮기기에 부적절할 만큼 엽기적이고, 끔찍하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존 도는 정욕의 죄를 범한 남자보다 정욕의 원인 제공자, 혹은 정욕의 대상을 응징하는 꼴이다. 무척이나 머리를 무겁게 하는 장면이다.

 

이런 식이라면 영화 속에서 ‘식탐’의 죄를 범한 뚱보의 경우도 뚱보 대신 식탐을 유발한 스파게티를 처단해야 마땅하다. 식탐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미슐랭 별딱지를 붙인 식당 주인과 셰프를 처단해야 한다. ‘분노’의 죄를 범한 밀스 형사보단 그가 분노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기자를 응징해야 마땅하다. 또 여자가 야한 옷을 입고 있어 자신의 성욕을 유발했다는 성추행범의 항변도 인정해줘야 한다.

 

성구매자인 남자가 아니라 성판매자인 매춘부를 처단하는 존 도의 방식은 어쩌면 ‘원인’을 중요시하는 대단히 ‘미국적’ 방식이다. 미국은 마약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자보다 마약 판매상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 그들을 문제의 원인 제공자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질러도 우리보다 ‘정당방위’ 인정의 범위가 대단히 넓다. 멋모르고 남의 집 마당을 가로질러 가다 총에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사회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항상 문제적이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두 마리의 뱀과 같다. 원인이 결과를 일으키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원인과 결과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다. 그러나 하나의 결과를 낳은 수많은 원인들을 모두 규명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편의상 결과에 책임을 묻게 된다.

 

 

존 도가 남자에게 정욕의 원인을 제공한 매춘부를 정욕의 죄로 정죄했다면, 매춘부가 매춘을 하게 된 또 다른 수많은 원인들의 죄는 어찌할 것인가. 가난 때문에 한 여자가 매춘의 길에 들어서게 한 사회구조의 책임까지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매춘부가 된 한 여자에게만 돌을 던지고 다 같이 시치미를 뗄 뿐이다.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원인이나 사회 구조상의 문제는 묻어두고 오직 살인이라는 행위의 결과만 놓고 책임을 묻는다. 살인자를 만들어낸 것이 사회구조의 문제라면, 그 사회구조가 변치 않는 한 살인자를 아무리 단죄해도 또 다른 살인자들이 계속 나올 뿐이다. 원인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결과론’의 함정이다.

 

결과론의 또 다른 함정은 인과관계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지 않음에도 우리는 결과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근면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이 꼭 성공하고, 방탕하고 나태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실패하거나 가난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으로 성공을 상찬하고 실패를 매도한다. 이 땅의 수많은 ‘성실한 실패자’들을 분노하고 좌절하게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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