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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게(똑똑하고 게으른)와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10)
김상회 정치학 박사  |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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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7  09: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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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도가 ‘나태(sloth)’의 죄를 물어 살해한 잡범은 도시에서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퍼뜨리며 먹고살던 이였다. 무척이나 부지런하게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팔고, 역시나 부지런히 악덕 변호사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받아 가석방되곤 했다. 그리고 가석방이 되자마자 또다시 부지런히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사고 팔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변을 당했다.

   
▲ 게으름은 안분자족(安分自足)의 미덕일 수도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존 도가 ‘나태’의 죄로 정죄한 잡범을 살해한 방식은 대단히 독특하다. 서머셋과 밀스 형사가 살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 잡범은 침대에 결박된 채 거의 미라와 같은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당연히 시체인 줄 알았던 미라가 좀비처럼 괴성을 지르고 눈을 떠 모두를 기겁하게 만든다.

존 도는 왜 이 잡범에게 나태의 죄를 물어 처형했을까. 나태의 죄를 물으면서 그를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강제 나태’하게 만들어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태란 ‘게으름(laziness)’과는 다르다. 게으름이란 단지 할 일을 안 하고 자기 한몸 편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나태란 그 어원이 ‘살피지 않는 것(without care)’이다.

‘살핀다(care)’는 것은 또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들을 돌보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게으름이란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죽어 마땅한 죄(deadly sin)’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나태는 얘기가 달라진다. 나태란 바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기 필요나 편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태다. 게으름은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지만, 나태는 민폐를 끼치거나 해악을 끼친다. 그것이 존 도가 이 잡범을 침대에 묶어버린 이유다.

   
▲ 게으름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나태는 민폐나 해악을 끼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나태한 자를 강제로 게으르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잡범은 평소에 결코 게으른 자가 아니었다. 부지런히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팔러 돌아다니고, 역시나 부지런히 악덕 변호사를 찾아다니며 가석방된다. 가석방이 된 후에는 또다시 부지런히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팔러 돌아다닌다.

존 도가 보기에 이 나태한 잡범은 세상을 위해서 차라리 ‘게으른’ 것이 백번 천번 낫다. 부양할 가족도 없는 듯한 이 잡범이 게으르다면 기껏해야 본인만 망가지고 말지만, 남에게 폐 끼치는 나태한 잡범이 대단히 부지런하다면 문제가 커지고 복잡해진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남들이 겪게 될 고통과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는 나태한 자들은 게으를수록 그나마 다행이다. 얼마 전 고인이 된 한 전직 국회의원이 생전에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서 최고의 총리는 ‘똑게(똑똑하고 게으른)’라 하고, 최악의 총리는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라고 정리한다.

똑똑한 지도자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면(똑부) 아랫사람들이 너무 피곤해지거나 독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똑똑하지만 게으른 지도자가 더 바람직하단다. 멍청한 지도자가 게으르면(멍게) 사회적 피해가 그나마 줄어들지만 멍청한 지도자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대형사고가 난단다.

   
▲ 주말이면 온 도심이 시위로 어리접고 삼천리강산이 쓰레기로 뒤덮인다. [사진=뉴시스]

우리는 경제발전 시대에 ‘잘살아 보세’를 노래하면서 ‘사람은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한다’는 교육이 성공을 거둬선지 모두가 부지런한 듯하다. 똑똑해도 부지런하고, 멍청해도 부지런하다. 잠도 없고 휴일도 없다. 더구나 남들의 고통과 피해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나태한’ 자들도 모두 부지런스럽다. 악인들도 대단히 부지런하게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럴수록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다. 우리 모두 부지런함을 떤 덕분에 이만큼 살게 됐는지도 모르지만, ‘부지런’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닐 테고, 과문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태해 보이는 인물들이 종횡무진 극도로 부지런함을 떨고 다니는 모습을 접하다 보면 이들이 조금쯤 게으르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나태한 사람들이 부지런함을 떨고 주말도 온 도심이 시위로 어지럽고, 삼천리강산이 쓰레기로 뒤덮인다. 정치인들도 이제 좀 덜 부지런했으면 좋겠다. 존 도가 했던 것처럼 이들을 침대에 묶어두고 싶기도 하다. 게으름이 꼭 악덕일리는 없다. 게으름은 안분자족(安分自足)의 미덕일 수도 있다. 이제 모두 조금은 게으르게 살면 안 될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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