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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9)

‘세븐’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존 도는 7가지 죄악의 정죄 대상을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선택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혹은 전국 단위로 죄악마다 1명씩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죄목마다 비슷한 대상을 1명씩 찍는 방식이다. 찍힌 사람들은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이상한 놈’ 옆에 살다가 벼락 맞는 꼴이다.

 

 

아마도 극단적인 기독교 광신자인 듯한 존 도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명기된 인간이 범해서는 안 될 ‘7가지 죄악(seven deadly sins)’을 저지른 자를 신을 대신해 응징한다. 그러나 존 도의 정죄 방식은 석연치 않다. 식탐, 탐욕, 교만, 나태, 욕정, 분노의 죄악을 범한 자들 중에서 아무나 하나씩 걸리는 대로 처형한다.

 

7가지 죄악이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7가지 죄악을 저지른 자들을 응징한다는 것은 어쩌면 노아의 홍수처럼 인류를 아예 멸종시켜야 될 일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경전 말씀’을 경직된 진리로 받아들이는 ‘원리주의’나 ‘교조주의’는 항상 난폭하다. 기독교 원리주의나 이슬람 근본주의, 교조주의적 공산주의 등은 항상 ‘문제적’이다.

 

원리주의 정신 속에서는 인간이 설자리가 없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수백만 인간쯤은 죽여도 괜찮다. 교황들이나 마오쩌뚱이나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 등은 자신들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수백만·수천만의 인간이 죽어나가도 좋다. ‘타노스’처럼 아예 인류를 멸종시킬 만한 능력은 갖추지도 못하고, 스탈린이나 히틀러만 한 권력도 장악하지 못한 존 도가 택한 방식은 ‘무작위 추출’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범위나 전국 단위에서 추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죄악마다 정죄 대상을 1명씩 찍는 방식이다. 찍힌 사람들은 억울하다. ‘이상한 놈’ 주변에서 벼락 맞는 꼴이다.

 

 

예를 들어 존 도가 ‘식탐’의 죄를 물어 처형한 뚱보는 아무리 봐도 결코 식탐죄의 대표는 될 수 없어 보인다. 식탐의 죄를 정확히 묻는다면 성 어거스틴이 명시한 5가지 식탐의 조건을 골고루, 최고로 갖춰야 한다. 오거스틴은 필요 이상으로 먹고, 식사시간이 아닌 때에도 먹고, 지나치게 맛있는 것을 먹고, 지나치게 귀한 것을 먹고, 지나치게 장식한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존 도가 식탐의 죄를 물어 처형한 불행한 뚱보는 허름한 집구석에서 스파게티만 죽어라 먹어대던 비만 환자에 불과했다.

 

그 가엾은 뚱보는 환자이지 죽을 죄를 지은 범죄자는 아닌 듯하다. 식탐죄를 범한 처형 대상자를 찾는다면 아마도 각종 ‘먹방’ 출연자들이 어거스틴의 기준에 더 부합할지도 모른다. ‘탐욕’의 죄를 물어 처형한 변호사 역시 세계 최고, 혹은 적어도 미국 최고의 탐욕쟁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존 도가 편의상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존 도의 처형 대상자 선정 방식의 문제점들은 스스로가 자신도 처형 대상자에 포함시킴으로써 상쇄된다. 존 도는 자신이 밀스 형사의 젊고 매력적인 아내를 보고 ‘질투’하는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고, 밀스 형사의 아내를 살해한 후 자신은 밀스 형사의 총에 처형당하는 길을 택한다.

 

교조주의적 기독교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존 도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씀’ 한마디에 집착해 끝까지 모든 사람들을 증오하며 살인을 이어갔다면 아마도 그는 최악의 살인마로 기억될 만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존 도는 남들의 죄만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까지도 공평하게 묻는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짝이 없다. 한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76%가 ‘아니다’고 대답한다. 이어 ‘당신은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0%가 ‘그렇다’고 응답한다.

 

 

아귀가 안 맞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문제가 없고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내가 위반하는 것은 위반이 아니고 남이 위반하는 것은 위반이다. 남의 눈에 티는 보여도 제 눈은 보지 못한다.

 

존 도는 최악의 연쇄살인마일지언정 적어도 내로남불의 죄를 범하지는 않고 자신까지도 스스로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엄격히 정죄하는 드높은 정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 내로남불이 아니라 존 도처럼 ‘내불남불(내가 해도 불륜, 남이 해도 불륜)’의 자세를 갖는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더 바란다면 ‘내불남로(내가하면 불륜, 남이 하면 로맨스)’의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참 좋은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오직 자신의 죄만 묻고 다른 사람들의 죄는 묻지 않을 수는 없을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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