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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3)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은 관객들에게 ‘죄악(sin)’와 ‘범죄(crime)’의 의미를 묻는다. 존 도(John Doe)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7가지 죄악(탐식·나태·시기·교만·욕정·탐욕, 분노)’을 범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연쇄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 세상에서 ‘죄악’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존도에게 범죄는 이런 거였다.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7가지 ‘죄악’은 분명 ‘7가지 죽을 죄(seven deadly sin)’로 명기돼 있다. 말 그대로 ‘죽어야’ 한다. 알아서 죽어주지 않으면 누군가 나서서 죽여야 할 자들이다. 반면에 국가공권력인 형사 서머셋과 밀스에게 7가지 죄악은 붙잡아 전기의자에 앉힐 만한 ‘범죄 행위’는 결코 아니다.

 

그저 혀를 차거나 눈살 찌푸릴 정도의 일일 뿐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범죄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죄악을 범해도 그것이 범죄행위만 아니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게 존 도는 죄악을 저지른 자들을 찾아 정죄하려 하고, 서머셋 형사와 밀스 형사는 범죄를 저지른 존 도를 정죄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어찌 보면 연쇄살인마 존 도나 서머셋 형사, 밀스 형사 모두 법의 집행자다. 다만 존 도는 ‘하늘의 법’을 집행하려 하고, 서머셋과 밀즈는 ‘이 땅의 법’을 집행하려 할 뿐이다. 결국 하늘의 법과 이 땅의 법이 충돌한다. 어느 법이 우리가 따라야 할 법일까.

 

존 도는 일견 미치광이 살인마로 그려진다. 연쇄살인마, 혹은 ‘하늘의 심판관’ 존 도의 첫 희생자는 죽어라 먹어대는 비만환자다. 존 도는 이 딱한 비만환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12시간 동안 스파게티를 강제로 먹이고, 배를 걷어차 죽인다. 이 비만환자는 문자 그대로 배터져 죽게 된다.

 

 

‘탐식’과 ‘비만’이 죄악일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범죄는 아닐 터다. 탐식하고 비만하다고 모두 붙잡아 전기의자에 앉혀 버린다면 대한민국 ‘먹방’ 출연자들 모두 사형수가 될 판이다. 그러나 존 도의 살인 대상에 ‘법꾸라지’ 변호사, 미성년 강간, 마약 밀매자, 창녀 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7가지 죄악에 대한 정죄에 나선 존 도의 분노에 차츰 공감하게 된다. 영화 속 법꾸라지 변호사는 변호사라기보다는 ‘법 기술자’다. 제아무리 온갖 죄를 저지른 자도 거액의 수임료만 지불하면 무죄로 만들어준다.

 

존 도는 이 법 기술자를 ‘탐욕’의 죄를 물어 처단한다. 또한 이 법 기술자 덕분에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마약을 팔고도 대로를 활보하는 자를 붙잡아 1년 동안 침대에 묶어놓고 ‘나태’의 죄를 물어 처단한다. ‘반반한 외모’ 하나 믿고 못 생긴 사람들을 ‘개무시’한 미모의 모델은 ‘교만’의 죄명으로 얼굴을 난도질해 죽여버린다. 모두 사실상 ‘죽을 죄(deadly sin)’를 저지른 자들이다. 다만 현행법상 범죄가 성립되지 않거나, 혹은 ‘합법적’으로 풀려난 자들이다.

 

이들에 분노하는 것은 존 도만은 아닐 듯하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疏而不失(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무엇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가 보기에 ‘하늘의 그물’도 ‘법의 그물’도 놓치는 것이 너무나 많다. 거물 변호사만 선임하면 하늘의 그물과 법의 그물을 모두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듯하다.

 

무슨 사연인지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술이 취해서, 혹은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저지른 짓이라고 집행이 유예되기도 한다. 분명 죄악을 범했다는 것이 명명백백해도 현행법상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하고, 죄를 물을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고도 하며, 심증은 가나 증거가 불충분해서 죄를 물을 수 없다고도 한다.

 

이렇게 하늘의 그물과 법의 그물을 모두 빠져나온 자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활보한다. 피해당사자는 더 말할 것도 없겠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존 도의 충동을 느낄 듯하다. 존 도는 그들이 비록 법의 그물은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노자가 말한 하늘의 그물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하늘의 그물을 집행하러 존 도가 나설 필요 없도록 법의 그물이 조금은 더 촘촘하기를 소망한다. 하늘의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법망회회소이불실法網恢恢疏而不失(법이 엉성해 보여도 놓치는 것이 없다)’의 사회를 소망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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