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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쪽이 정의일까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헤이트풀 8 (6)
김상회 정치학 박사  |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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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7  10: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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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이트풀 8’에서 서로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힌 8명이 모인 미미네 잡화점은 그야말로 ‘혐오의 백화점’이 된다. 흑인과 백인이, 범죄자와 범죄자 사냥꾼이, 남군과 백군이 서로를 혐오한다. 그중에서도 북군 출신 흑인 워렌 소령과 남군 출신 백인 샌포드 장군의 혐오는 인종과 정치를 포함한 ‘중층中層’의 혐오를 선보인다.

   
▲ 결투는 국가가 시시비비를 가려줄 만한 역량이 없거나 상실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남북전쟁에서 패한 백인 샌포드 장군은 괴롭기 짝이 없다. 눈폭풍을 피해 들어온 미미네 잡화점에서 거만한 흑인 워렌 소령이라는 자와 함께 있게 된 것이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고통스럽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벌레’ 같은 흑인 장교 따위는 당연히 무시하고 모욕함으로써 최소한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워렌 소령은 패장인 주제에 여전히 오만한 백인 장군이 아니꼽기 그지 없다. 결국 둘 사이에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시비는 워렌 소령이 먼저 건다. 샌포드 장군은 워렌 소령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외면한 채 그곳에 있는 백인 보안관을 통해 대답을 전달한다. 한마디로 흑인 워렌 소령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다. 남군 백인 장군과 북군 흑인 장교 사이에 벌어지는 기묘한 ‘간접 대화’는 점점 날이 서기 시작한다.

샌포드 장군에게 ‘비인간’ 취급의 모욕을 당한 워렌 소령은 침착하게 명예회복을 위한 결투를 계획한다. 샌포드 장군이 앉은 테이블 위에 총을 한 자루 올려놓고 샌포드 장군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총을 집어들 순간까지 그의 분노를 유발한다. 자신이 전쟁터에서 ‘잘난’ 샌포드 장군의 아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아들이 얼마나 ‘비루한 자식’이었는지를 묘사하며 이죽댄다.

결국 샌포드 장군은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총을 집어 든다. 그러나 장군이라고 사병보다 더 칼질 잘하고 총질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총질에 이골이 난 워렌 소령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신들린 총질을 한다. 그렇게 샌포드 장군은 ‘강제 결투’에 휘말려 비명횡사를 한다.

   
▲ 흑인 워렌 소령과 백인 샌포드 장군 간에 아슬아슬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사진=더스쿠프포토]

워렌 소령의 살인은 결투에 의한 정당방위로 정당화된다. 미미네 잡화점에는 샌포드 장군이 먼저 총을 집어 드는 것을 본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 결투는 신청자가 먼저 장갑을 벗어 상대의 얼굴에 던지고, 상대가 그 장갑을 집어 드는 것으로 성립된다. 그 순간부터는 누가 누구를 죽이든 모두 정당한 살인이 된다.

결투란 대단히 야만적인 행위임에 분명하다. ‘문명의 땅’ 로마의 카이사르와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야만의 땅’ 게르만에서는 개인 간의 시시비비를 결투에 의해 가린다고 어이없어하고 개탄하는 기록을 남긴다. 그러나 로마가 결국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해 무너지고, 게르만의 습속이 퍼지게 되면서 유럽 전역에 ‘결투’라는 방식이 자리잡게 돼 1800년대까지 계속된다.

결투의 논리적 근거는 ‘신은 결코 정의롭지 못한 자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대단히 부실한 것이었다고 한다. 꼭 ‘신의 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기보다, 아마도 결투를 용인한 현실적인 이유는 국가의 사법기관이 개인 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할 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대규모의 '집단 결투'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대규모의 ‘집단 결투’가 벌어진다. 서로 장갑을 벗어 상대의 얼굴에 집어 던졌고, 상대는 그 장갑을 집어 들었다. 결투가 성립된 셈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 돋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장 모욕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총을 집어 들지 않는다는 게 비정상적일 정도다. 서로를 향한 모욕적인 언사들이 결투에서 동원되는 칼질·총질처럼 모두 정당화되는 듯하다.

이 집단 결투의 승패는 오롯이 어디에 사람이 더 많이 모였는지로 결판이 나는 것처럼 서로가 머릿수를 부풀리고 줄이기에 여념이 없다. 마치 결투의 합리화의 근간이 됐던 ‘신의 의지’처럼 ‘신이 계시다면 정의로운 쪽에 더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아마도 이렇게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나와 집단 결투를 벌이는 것은 국가, 정부, 혹은 의회가 이 시시비비를 가려줄 만한 권위나 역량을 갖추지 못했거나 상실했기 때문일 듯하다. 샌포드 장군을 죽인 워렌 소령의 살인이 정당방위가 됐듯, 지금 광화문이 죽든 서초동이 죽든, 죽인 쪽이 신의 뜻이고 정당화되는 것일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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