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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유마(木牛流馬)의 비밀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38)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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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8  10: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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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여 년 전, 삼국(三國)시대 촉(蜀)나라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목우유마는 어떤 모양의 운송 도구였을까? 고래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면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의 기록을 먼저 보자. 『삼국지·제갈량전』에는 “제갈량은 교묘한 생각에 뛰어났는데, 기존의 활을 개조한 연노(連弩)라든가 목우유마 등은 모두 제갈량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기록돼있다. 또 “건흥 9년(231) 제갈량이 다시 기산으로 나왔는데 목우를 이용해 군량미와 말먹이를 운반하였다”, “건흥 12년(234) 봄, 제갈량의 무리들이 야곡으로부터 나와 유마로 짐을 운반하였다”고 돼있다.

이 기록을 보면 ‘목우유마’는 분명 제갈량이 발명한 것이고 서로 다른 두 가지 운송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중 목우가 먼저이고 유마는 나중에 발명된 것이고.

배송지(裴松之)의 주에서 인용한 『제갈량집』에는 목우유마의 제작법을 상세하게 인용하고 있다. 이로써 역사상 제갈량은 확실히 목우유마를 제조하고 응용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실물이나 도형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아 오리무중일 따름이다.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만들고 200년 후 남북조 시기의 기술의 천재 조충지(祖沖之)가 “제갈량의 목우유마를 모방하여 제작했다”(『남제서南齊書·조충지전』)고 한다. 그러나 상세한 자료는 역시 남겨두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반자동화나 자동화된 운송도구였을 리는 만무하다.

사료 기록을 보면 섬서성 한중(漢中)시 면(勉)현의 황사(黄沙)진이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제조한 지역이라 돼있다. 고증에 따르면 제갈량이 그해 8년의 북벌을 감행하는 사이에 목우유마를 세 번 이용했다고 한다. 목우유마는 그곳에서 출발해 250킬로미터의 잔도(棧道)를 지나 기산(祁山) 오장원(五丈原)에 도착한 것으로 돼있다.

현지 노인이 묘사한 전설 속의 목우유마를 보자. “나무로 말 머리를 만들고 자그마한 목재로 말의 몸체를 만든 후 말 다리를 만들고 배에는 톱니바퀴를 안치하였다. 목마 뒤쪽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조작할 때 한 번 누르면 한 걸음 나가고 다시 누르면 다시 한 걸음 나갔다.” 그렇다면 목우유마는 톱니바퀴를 설치하였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전진했다는 말이 된다.

근현대에 들어와서 직접 목우유마를 만들고 전시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중 양국군(梁國君)은 네 발로 제작한 것이 그나마 『삼국연의』에 묘사된 것과 유사하다고 평가 받는다. 그런데 곽청화(郭清華)는 다리가 네 개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잔도를 건너는데 네 발로는 불가능하고 바퀴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목우유마는 바퀴가 달렸던 것일까 아니면 네 발이 있었을까? 북송(北宋)의 진사도(陳師道)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촉(蜀) 지방에는 작은 수레〔小車〕가 있는데 여덟 석〔八石〕을 실을 수 있고 소머리를 하고 있다 ; 또 큰 수레〔大車〕도 있는데 네 사람이 밀고 다니고 열 석〔十石〕을 실을 수 있는데 목우유마다.” 송대(宋代) 고승(高承)이 쓴 『사물기원事物紀原』에는 “목우는 지금의 작은 수레로 앞에 끌채가 있다 ; 유마는 지금은 밀고 가는 수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목우는 앞에 끌채가 달린 일륜차이고 유마는 끌채가 없는 밀고 다니는 일륜차라는 말이다. 그런데 송대의 기록은 삼국시대보다 천여 년 뒤의 기록이니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청화대학 고문헌연구소 풍립승(馮立升)은 목우유마란 기본상 일륜차라 본다. 각종 사료와 문헌 증거들을 보면 일륜차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삼국시대의 잔도(棧道)의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포하곡구(褒河谷口)가 포사(褒斜) 잔도의 기점이다. 한중시에서 북쪽으로 20킬로 떨어져 있다. 1700여 년 전 제갈량의 목우유마가 바로 그곳에서 양식을 운반해 전선으로 나갔다.

기이한 것은 고대의 잔도는 무척 평탄하고 험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대인들이 무척이나 총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진령산(秦嶺山)에서 가장 완만한 노선을 선택해 길을 냈다. 큰 어려움 없이 산을 오르면 힘도 안 들이고 산을 내려 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그런 길이라면 네 발이 달린 기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일륜차보다 효율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시의 목우유마는 네 발이 달려 보행하는 것과 같은 기계일 가능성은 많지 않다. 사륜차일 경우도 많지 않다. 사륜차는 방향 전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평지에서도 사륜차는 방향 전환이 쉽지 않는데 그런 특수한 조건이라면 더더욱 가능성은 적을 수밖에 없다.

잔도의 상황을 분석해 본 결과 역사에서 말하는 목우유마가 일륜차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목우유마가 일륜차라면 기록에서 보이는 목우는 ‘일각사족(一脚四足)’이라 했는데 네 발을 일륜차에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숨겨진 기관이란 명칭을 포함한 부품의 이름들은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할까? 아직도 의문은 남는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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