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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기생충 (2)

영화에 등장하는 ‘지하실 남자’는 조연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 속 남자의 행태는 그의 비주얼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압도적이다. 주연 같은 조연이다. 집주인이 동거인으로 허락지도 않았는데 가정부인 아내에 묻어 남의 집에 잠입해 사람의 내장처럼 미로 같은 지하실 깊숙한 곳에 자리 잡는다. 그야말로 기생충이다.

 

 

기생충이 몸속을 활개 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듯, 지하실 남자도 으리으리한 저택을 헤집고 다니는 법 없이 지하실에 꼼짝 않고 앉아 아내가 물어다 주는 아무것이나를 먹으며 지낸다. 지하실 한편에 꽤 많이 쌓여있는 수험 도서들로 미뤄 짐작건대 아마 공무원이나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다 여의치 않았는가 싶다.

 

몸도 성치 않은 지하실 남자는 먹는 것 이외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먹는 일도 일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가 하루에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라곤 특이하게도 지하실 두꺼비집 전선을 이용해 어디론가 모스 부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일이다.

 

남의 집 지하실에 숨어서 사는 이 특이한 남자가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보내는 모스 부호의 수신인은 뜻밖에도 다름 아닌 집주인이다. 남의 집에 숨어 기생하는 남자가 집주인에게 모스 부호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의아하지만, 그 메시지 내용은 더욱 뜻밖이다. 지하실 남자는 군국주의 일본의 신민들이 눈뜨면 천황에게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봉송하듯 집주인에게 감사와 충성의 인사를 보낸다.

 

지하실에 ‘서식’하는 남자가 두꺼비집 전선을 이용해 주인집 계단의 전등을 깜빡거려 발신하는 ‘충성서약’을 주인이 알아먹을 리 없다. 전등이 공연히 깜빡거리는 것이 짜증날 뿐이다. 지하실 남자 역시 자신의 메시지가 주인에게 전달되리라는 기대도 없다. 하지만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두꺼비 집에 매달린다.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숨어 산다는 것이 집주인에게 면목 없고 미안한 일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집주인에게 감사하고 나아가 충성을 다짐할 일인지 궁금해진다. 감사와 그 보답으로서의 충성은 은혜를 베푼 대상을 향한 것이지 집주인이라고 무조건 감사와 충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집주인에 대한 무조건적 감사와 충성은 군국주의 일제시대의 황국신민서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기택의 ‘가족 사기단’이 주인님을 기만하고 등쳐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하실 남자는 마치 주인님의 호위무사인 양 칼을 빼 들고 지하실에서 올라와 가든파티장에 난입한다. 그리곤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처럼 기택의 가족들에게 칼부림을 행한다. 세상에 이런 기특한 기생충이 있을까. 가히 황국신민서사를 바친 신민다운 기개와 최후다.

 

 

충의의 표상처럼 일컬어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명종 임금의 승하 소식을 듣고 읊조린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조식 선생으로부터 내가 그곳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나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집주인이면 무조건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서일까, 일제시대 때 멋모르고 암송한 황국신민서사가 무의식 속에 박혀버려서일까.

 

북한 주민들은 밥을 굶어도 최고 지도자 동지의 안위부터 걱정하고 충성편지 이어달리기를 한다. 지하실 남자처럼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그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도 오직 장군님 덕이라고 감사하며 장군님께서 받아볼 리 없는 감사와 충성의 모스 부호 편지를 보낸다.

 

남쪽에서는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 없는’ 신민들이 ‘서산에 진 해가 눈물겨워’ 여전히 태극기 앞세우고 광화문에 모인다.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가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는 햇살 가득한 잔디밭에 나와 칼을 빼 들고 칼부림의 대상을 찾는 듯한 느낌이다. 충절과 충의, 그리고 애국이 모두 어지럽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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