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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예부인(花蕊夫人)은 누구인가?(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29)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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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6  09: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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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예부인의 죽음에 대해 두 번째 설은 주로 채동번(蔡東藩)의 『송사연의宋史演義』에 보인다. 조광윤이 화예부인에 빠져 몇 년을 헤어나지 못하다가 화예부인의 미색이 쇠하자 조광윤은 딴 마음이 생겼다. 미인 송(宋) 씨에게 애정이 옮겨갔다. “그때 송 씨는 17세였고 태조 나이는 이미 42세였다.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치심여자부심한(痴心女子負心漢)’〔여자는 사랑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남자는 무정하다 ; 남자는 사랑에 빠져도 쉽게 벗어나고 여자는 일단 사랑에 빠지면 끝내 헤어나지 못한다〕라고 하지 않던가. 화예부인은 원래 황후가 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송 씨 여인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태조의 사랑도 송 씨에게로 넘어가니 총애까지도 사라져버렸다. 커다란 집이 고요 속에 빠져들었으니 어느 누가 적막함을 풀어줄 수 있었겠는가? 고국의 멸망을 애통해했고 새로운 왕조에서는 총애를 잃었으니. 애통함이 병이 돼 지는 낙엽처럼 흐르는 물에 뛰어들어 구슬 같은 아름다운 향기를 흘러 보냈구나.”

채동번의 이야기는 침소봉대한 점이 있기는 하다. 역사 자료를 고증해보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치밀함을 잃어버렸으니 진지하게 듣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설을 비교해보면 화예부인이 조광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치에 맞지 않는가.

만약 주희(朱熹)의 “죽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절개를 굽히는 것은 큰일이다(身死事小,失節事大)”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화예부인의 죽음은 교훈적이지 못하다. 나라가 망할 때 순국하던지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든지 조광윤에게 모욕을 당할 때 절의를 지키든지. 만약 그때 죽었다면 미인이요 재능을 갖춘 여자라는 칭송과 더불어 정절의 여인이라는 명예가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도리일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오르락내리락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을 때는 주희라는 인물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음이니. 어찌 “멸인욕,존천리(滅人欲,存天理)”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나라가 멸망할 때 “14만 명이 무장해제 됐는데 사나이 같은 남자가 한 명도 없었다(十四萬人齊解甲,寧無一個是男兒)”지 않던가.

그렇지 않은가, 남편이면서 국왕인 맹창도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했음인데. 어찌 여인 혼자 정절을 지키라 요구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같이 할 이 하나도 없었는데…….

화예부인은 목단(牡丹) 꽃과 홍치자(紅梔子) 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맹창은 관민 모두에게 목단을 대량으로 심게 하고 “낙양의 목단이 천하의 제일인데 지금부터는 성도(成都)의 목단이 낙양을 뛰어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을 각지에 파견해 우수한 품종을 구매해 오게 한 후 궁중에 ‘목단원(牡丹苑)’을 지었다. 맹창은 화예부인과 아침저녁으로 꽃 아래에서 노니는 것 이외에도 여러 신하들을 소집해 목단 감상연회를 베풀었다.

홍치자 꽃은 도사 신천사(申天師)가 바친 것이라 전한다. 씨 두 알만 있어도 꽃이 피는데 발긋발긋한 색이 여섯 화판을 이루고 맑은 향기가 사람을 압도하였다. 어떤 이가 그 꽃 모양을 본떠 단선(團扇)에 그림을 그리니 하나의 기풍이 되었다. 바로 ‘부용(芙蓉)’ 꽃이다. 매년 부용이 만발할 때면 성을 따라 40리에 금수를 깔아놓은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부용성(芙蓉城)’은 그렇게 얻어진 이름이다. 성도(成都)를 또 ‘부성(蓉城)’이라 부른다.

   

민간에 ‘송자낭랑(送子娘娘)’의 전설이 전해져온다. 아들을 얻게 해주는 ‘여신’이란 의미다. 이야기는 역시 화예부인에게서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해져온다.

후촉 국왕 맹창의 비 화예부인은 부용 꽃을 너무 사랑하자 맹후주는 아름다운 화예부인을 위하여 성 밖 가득 부용을 심었다. 오래지 않아 송나라 군대가 후촉을 침략해오자 맹창은 투항하였고 화예부인도 포로가 되었다. 송 황제 조광윤은 화예부인이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의 비로 삼으려 했으나 화예부인은 그를 무척 싫어하였다. 송나라 궁궐로 가기는 했으나 화예부인은 옛 군주를 잊지 못하여 맹창의 화상을 그려 제사를 지냈다. 인적이 끊기는 깊은 밤마다 맹창의 화상을 꺼내 눈물을 흘리며 사념의 정을 토로하였고.

나중에 송 태조에게 발각돼 누구 그림이냐고 묻자 황급하게 “장선(張仙)을 그려 걸어놓았습니다. 아들을 낳게 하는 신입니다. 촉나라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합니다”라고 대답해 위기를 모면하였다. 아들을 낳게 해주는 신이라는 말이 궁궐에 전해지고 나중에는 민간에 까지 퍼져나갔다. 만청(晚清) 시기에 남자인 장선을 화예부인과 같은 여성으로 바뀌게 되고 화예부인 또한 ‘아들을 낳게 해주는 여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나중에 조광윤이 그 사실을 알고 화예부인에게 화상을 내 놓으라 추궁했으나 화예부인은 죽어도 내 놓지 않았다. 그래서 조광윤이 홧김에 화예부인을 죽여버렸다. 화예부인이 쓰러지며 선혈을 뿌려 궁궐의 부용꽃을 붉게 만들었다고 하고. 그렇게 옛 군주의 애정을 쫓아 죽음을 불사한 화예부인의 충절을 기려 ‘부용화신(芙蓉花神)’으로 추앙하게 돼 지금까지도 존중받고 있다.

역사인가, 전설인가?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여인을 여신으로 추앙하는 것은 변함이 없음이니.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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