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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제주선인에게 길을 묻다
소쇄옹 양산보 ... 뭍으로 떠난 제주선인들의 사연제주에서 바다로, 세계로 나간 제주선인들 ... 조선 최고의 정원 탄생배경
문영택  |  yeongtaek24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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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2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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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필자는 지금 마누라와 둘이서 제주에 산다. 집 떠난 딸 둘은 미국 뉴욕과 시카고에 거주하고, 아들은 장교생활을 막 마치고 백수생활 중이다. 자식 떠난 가정의 쓸쓸함이란.

그 빈자리를 메워주려는 듯 매달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아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타지에서 삶의 터전을 제주로 옮긴이들이 많듯,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긴 제주사람들이 2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여기에서는,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전남 담양 근처의 소쇄원을 세운 양산보와 출퇴근 길에서 현양비를 통해 수시로 만난 고광림 박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고·양·부 삼성의 후예들을 제주가 아닌 객지에서 만나는 날이면, 어떤 역사적인 일로 그들 조상들은 제주를 떠났을까 하고 궁금해 진다. 남도여행 중 들렸던 소쇄원에서도 나는 제주출신을 객지에서 만나는 기쁨을 얻기도 했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알려진 소쇄원을 가꾼 이는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이다. 본관이 제주인 양산보는 열다섯이 되던 해에 정암 조광조 문하에서 글공부를 하여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숫자를 줄여 뽑는 바람에 낙방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중종이 그를 친히 불러 위로의 말과 함께 지필묵을 하사하셨다.

그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자 양산보는 전남 담양에 소쇄원이라는 정원을 짓고, 스스로를 소쇄옹(瀟灑翁)이라 칭하며 두문불출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벼슬길에 나갈 것을 제의 받았으나, 출사하지 않고 끝내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연구하며 지냈다 전한다.

다섯 번이나 방문한 소쇄원 뒤에는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있다. 이 산 저 산에서 발원한 물은 계곡을 따라 흘러 소쇄원으로 흘러내려온다. 산에서 내리는 물로 오염된 육신을 깨끗이 씻는 정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필자가 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소쇄원을 찾고 있었다.

난중일기에도 양씨 성을 가진 이들이 여럿 등장한다. 일설에는 삼별초 사건을 진압하는 데 기여한 공신 중에 지금의 남원 일대를 조정으로부터 물려받아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도 하고, 통일신라에서 작위를 받은 제주선인이 남원에 뿌리를 내려서 양씨 후예가 이어졌다고도 한다. 삼별초 사건 이후 원나라가 제주섬을 경영하는 데 협조적이지 않은 일부 제주선인들을 남원 등지의 육지로 유배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 문영택 전 교육국장

남원 양씨 세보에는 ‘세전유기(世傳遺記)에 말하기를, 양을라·고을나·부을나 세 신인이 땅속에서 솟아나왔는데, 그 땅에 구멍이 있는데 모흥이라 한다.

지금은 삼가고 깨끗이하여 세시(歲時)에 제사를 지낸다. 나라이름을 탁모라(乇牟羅)라 하고 후예들이 매우 번성하여 고려 때에 어떤 양성(良姓)을 가진 자가 바다를 건너 내조하여 성(姓)을 양(梁)씨로 바꾸고 그 자손이 공이 있자 왕실은 남원부(南原府)에 적을 두게 하사하였다고 한다.’라는 기록도 있다.

역사는 사실(fact)을 캐내는 일과, 일부의 사실을 바탕으로 사실임직 한 것을 만드는 일(faction)이 모여 이루어지는 삶의 드라마이다. 승자의 기록들이 역사로 전해왔지만, 제주선인들의 삶이 진취적이고 개척적인 삶이라고 유추하는 것 역시 승자의 길을 걸으려는 제주후손들의 역사의식이어야 하지 아닐까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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