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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예부인은 누구인가? (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26)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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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6  16: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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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 화예부인(花蕊夫人)이라 부르는 여성이 몇 있었다. 용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시부(詩賦)에도 능하여 다재다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에 관한 사적은 오대에서 양송(兩宋)에 이르는 여러 사적에 두루 보인다. 그들이 처한 시대가 서로 같고 모두 화예부인이라 불렀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과 사적은 지금까지도 많은 의혹에 싸여 있다.

오대십국 사이에 화예부인이라 불린 여성은 3명이다.

첫 번째, 전촉(前蜀) 군주 왕건(王建)의 숙비(淑妃) 서(徐) 씨(약883~926), 성도(成都)사람이고 궁중에서 화예부인이라 불렀다. 언니도 왕건의 비였기에 ‘소서비(小徐妃)’라 부르기도 한다. 자매가 모두 총애를 받았다. 언니의 아들 왕연(王衍, 세칭 후주〔後主〕)이 황위에 오른 후 익성황태비(翊聖皇太妃)에 봉해졌다. 화예부인과 그 언니는 총신들과 교재하고 뇌물을 받고 정치에 간여하면서 후주를 놀이에 빠져 실정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왕연과 함께 후당(後唐)의 장종(莊宗)에게 피살된다.

두 번째, 후촉(後蜀) 군주 맹창(孟昶)의 비였다. 성은 서(徐, 일설에는 비〔费〕 씨라고 하기도 한다) 씨로 혜비(慧妃)에 봉해졌다. 청성(青城, 현 사천 관현〔灌縣〕) 사람으로 용모가 화예(花蕊)처럼 아름다워 ‘화예부인’이라 불렸다. 맹창이 송(宋)에 항복한 후 송나라 궁궐로 압송돼 송 태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셋째, 청대(清代) 학자 조익(趙翼)의 『해여총고陔餘叢考』에 나오는 인물로 그 ‘화예부인’은 남당(南唐) 후주 이욱(李煜)의 궁인이라 한다. 민(閩) 지역 출신 여인으로 시부에 능했다고 전한다. 그녀는 남당이 망한 후 송(宋)나라 궁으로 압송된 후 진왕(晋王)에게 피살되었다. 사람들은 ‘소화예(小花蕊)’라 부른다.

사천은 예부터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불린다. 진(秦) 이빙(李冰)의 부자가 도강언(都江堰) 치수 때부터 그곳 경제는 발달하였다. 성도(成都)는 지난날 익주(益州)라 불렸다. 제갈량(诸葛亮)이 『융중대隆中對』에서 “익주는 험한 요새요 옥토가 전리에 펼쳐 있다(益州塞險,沃野千里)”라 하였던 곳이다. 성도 평원은 참으로 천부지국의 정화다. 예로부터 금성(錦城)이라 불렸다. 이백(李白)도 시를 지어 성도의 부유함과 아름다움을 읊었다.

九天開出一成都(구천개출일성도) 구천이 열리면서 생겨난 성도에
萬户千門入畫圖(만호천문입화도) 수많은 인가들이 그림 속에 들어있구나.
草樹雲山如錦繡(초수운산여금수) 초목, 운산이 비단을 수놓은 듯
秦川得及此間無(진천득급차간무) 진천에서는 이런 풍경 볼 수 없으리니.

이처럼 우월한 지리 환경을 갖고 있어서일까, 중국이 분열하는 시대에는 그곳에 독립된 정권이 수립된다. 오대십국 시기에 그곳에는 전후로 전촉, 후촉이 건립되었다. 그런데 청사에 이름을 남겨 광범위하게 전송되는 인물은 황제도 아니요 문신이나 무장도 아닌 바로 화예부인이다.

   

화예부인이란 여성의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말이다. “꽃으로 그 모습 비교하기 부족하고 꽃술로 그 용모 형용하기 부족하다(花不足以擬其色,蕊差堪狀其容).” 그 화예부인은 전촉 개국 황제 왕건의 비 서(徐) 씨에게서 이름을 얻었다. 당시 서 씨 두 자매는 모두 왕건의 총애를 받았다. 대서비는 왕건에게서 아들 왕연을 낳았는데 본래 11번째로 가장 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친과 이모의 영향 아래 황태자로 옹립된다.

왕건이 황제가 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기 때문에 왕연이 황제가 되자 무절제하게 놀이에 빠진다. 먹고 마시고 놀며 즐기는 데에만 몰두해 무절제한 향락 생활에 빠져 버렸다. 그가 모친과 이모와 함께 청성산(青城山)으로 놀러 갈 때 궁녀들에게 꽃구름이 그려진 헐렁한 도포를 입게 하였다. 연화관(蓮花冠)을 쓰고 농염하게 치장토록 하였고. 이를 ‘취장(醉妝)’이라 부른다. 왕건은 스스로 그들을 뒤따르면서 박판을 끼고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저리 가거라 화류(花柳)를 찾자, 이리 오거라 금배주(金杯酒)를 마시자.”

왕연은 나이가 어려 경험이 적고 물정에 어두웠다. 하루 종일 두 서비와 함께 공경대부의 집에서 연회를 하지 않으면 촉의 명산과 사찰, 도관을 유람하였다. 대소 서비는 환관과 결탁해 매관매직을 행하며 체통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후당 장종은 기회를 틈타 전촉을 멸망시킨다. 이 화예부인은 그야말로 칭송할 가치란 찾아볼 수 없다 하겠다.

그러면 『궁사宫詞』의 작자는 누구인가? 송나라 이후 사람들은 후촉의 화예부인이라 여겨왔다. 『철위산총담鐵圍山總談』에 “맹 씨에 이르러 다시 촉을 세웠고 그 아들 창에게 전했다. 그때 또 한 명의 화예부인이 있었으니 『궁사宫詞』를 지은 이가 그이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명나라 모진(毛晉)이 편찬한 『삼가궁사三家宫詞』는 그 설을 따르고 있다. 20세기 40년대 초, 포강청(浦江清)이 『화예부인궁사고증花蕊夫人宫詞考證』을 발표하면서 작자는 전촉 황제 왕건의 소서비(小徐妃)라고 고증한다. 이로써 전대 학자들의 오류를 바로 잡고 천고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화예부인궁사花蕊夫人宫詞』에 “법운사(法雲寺)의 중원절(中元節)이요, 또 관가(官家)의 탄생일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중원절’은 음력 7월 15일이고 ‘관가 탄생일’은 바로 황제의 생일이다. 만약 『궁사』의 작자가 맹창(孟昶)의 비라면 이 관가는 맹창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맹창의 생일은 사서에 모두 11월로 기록하고 있다. 7월 15일이 생일인 황제는 오로지 전촉 후주 왕연(王衍)뿐이다. 그리고 『궁사』에서 읊은 것은 모두 전촉의 선화원(宣華苑)의 사물들이다. 따라서 작자는 분명 전촉의 화예부인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또 다른 화예부인은 후촉 후주 맹창의 가기(歌妓) 출신인 비(費) 귀비다. 전촉이 멸망한 후 후당 장종은 맹지상(孟知祥)을 양천(兩川) 절도사로 삼는다. 맹지상이 촉에 도착한 후에 후당은 내란이 일어나 장종이 피살된다. 맹지상은 야심이 생겼다. 갑병(甲兵)을 훈련하여 당 명종(明宗)이 죽자 맹지상은 황제를 참칭하였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죽고 맹창이 그 자리를 계승한다.

맹지상은 조야로 벼리별 궁리를 다하여 새로운 국면을 만들었기 때문에 권력이 맹창의 손에 들어가서도 10년 동안 봉화가 오르지 않았고 분쟁도 없었다. 수확이 풍성하고 경제가 안락하였다. 모두 향락에 몰두하였다. 백성도 이를 따라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고 웃음을 팔고 즐기기에 여념 없었다. 궁정에는 매일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밤마다 미주를 즐겼고 교방에 가기들은 넘쳐났다. 글을 파는 신하들과 유객들은 태평성세라 칭송하는 장면만을 연출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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