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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말의 지혜 ...인간과 동반자적 관계

 

2014년 갑오년은 청마의 해이다. 갑은 푸른색을, 오는 말을 의미한다. 무리지어 생활하길 좋아하는 말은 인간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하계올림픽 종목에서 동물과 함께 하는 유일한 종목이 마장마술이다.

 

육십갑자에서 얘기하는 청마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천우속(天雨粟) 마생각(馬生角)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하늘에서 곡식이 쏟아지고 말머리에 뿔이 난다는 뜻이다. 있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이 말은, 어쩜 청마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2014년 환갑을 맞은 필자가 수없이 들은 동물은 말이다. 말의 고장인 제주는 생사고락을 다한 후 나의 뼈를 묻으려는 곳이기에, 나와 말과의 관계는 상상속의 벗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영주10경 중 9경인 고수목마를 내세우기도 한다. 한라산 자락 수풀 속에서 뛰노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보는 이들에게 삶의 생동감을 안겨준다. 정부가 제주를 전국 유일의 말산업 특구로 지정한 것은 어쩜 늦었다 싶다.

 

41면 화폭에 제주의 다양한 풍광이 그려져 있는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도 말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말에 관련된 화폭인 봉마 공진, 산장구마, 우도점마 등에 모두 9천여 필이 등장한다. 이는 말 생산이 제주의 기간산업이었음을 증명한다 하겠다.

 

오름과 화산송이, 억새와 유채꽃, 지상의 흑룡만리 밭담과 지하의 동굴 궁전, 청초한 바다의 빛깔과 한라산 풍설 등의 제주 자연은 다채로운 색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제주의 자연을 닮으며 자라온 말은, 성미가 온순하고 순박하고 우직하고 충성스럽다.

 

청각장애를 얻어 평생 붓으로 세상과 소통한 운보 김기칭(1913- 2001) 화백은 평소 말을 자주 그렸다. 그가 그린 말을 보면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말이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고들 한다. 힘차게 달리는 말의 모습에서 생명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반면 제주 출신 변시지 화백의 그림에 나타나는 말은 제주 사람들을 닮았다. 바람 타는 섬에 자연과 더불어 사는 주인을 닮은 듯 관조의 시선으로 주변을 응시한다.

 

조선 이전의 탐라목장과 이후 10소장(목장)의 국영목장에서 길러 진 말들은, 원나라·청나라·명나라·일본 등지로 옮겨간 세계적인 품종이었다. 조선조 초기 60년간 약 5만여 필의 말이 명나라의 강요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중 대부분이 제주마였다. 해마다 동짓달에 사신과 함께 동지마로 제주마를 가져갔던 것이다.

 

유사 이래 말은 인간과 동반자적 관계라서 그런지 말에 관한 고사성어도 많다. 죽마지우, 마각노출, 새옹지마, 지록위마, 주마간산, 천고마비, 노마지지 등. 그중 나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뜻을 좋아 한다.

 

춘추시대의 제나라 환공 때의 일이다. 환공은 명재상 관중을 대동하고 고죽국을 정벌하러 나섰다. 전쟁은 그해 겨울에야 끝났다. 그들은 혹한 속에서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진퇴양난에 빠져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고는 풀어놓은 늙은 말 뒤를 따라 행군한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누가 나서 관중의 지혜를 발휘할 것인가. 말띠 해인 올해(2014년)는 갑오개혁이 일어난 지 만 12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수상 아베의 편협한 역사관과 언행, 중국의 G2로의 부상, 고모부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김정은…. 수많은 사건들로 동북아에 긴장과 갈등의 파고가 높다. 통일은 대박이라 하지만 언제 오려는지.

 

제주 도처에 있는 말에 대한 지역들을 훑어본다. 일도지구의 고마로에는 말 형상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특히 야간에는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의 칼 호텔 주변에는 말을 관장하는 별인 방성을 향하여 제사지내던 마조단이 있었다.

 

마조단(馬祖壇)은 천마성(天馬星)이라고도 부르는 방성에 제사지내던 제단이다. 천마라는 말의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마조제라 하였다. 서울에는 태조 이성계 이후 마조단에 제사를 지낸 터가 동대문 밖에 있다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타고 다녔던 팔준마(八駿馬) 중 하나인 응상백이 제주마라는 사실이 익히 알려진 것을 보면, 어승생은 임금이 총애하는 말을 가꾸던 지명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림읍 옹포에는 마대기 빌레라는 지명이 있다. 지금의 옹포는 예전의 명월포이다. 오래전 이곳은 군마를 육지로 실어 나르던 곳이었다. 바람의 영향으로 배를 띄울 수 없을 경우 말들을 이곳에 대기하곤 했을 것이다. 너른 곶자왈이나 빌레에 말을 대기시키거나 모아두었다가, 바다가 잔잔하면 전라우수영이 있는 진도와 강진 등지로 실어 날랐을 게다.

 

공마를 육지로 보내는 바닷길 입구로는 조천포·화북포·어등포· 애월포· 명월포가 있었다. 제주의 여러 포구에서 떠난 공마선은 강진, 해남, 영암 등지에 도착한 후 나주, 공주 등을 거쳐 한성까지 옮겨지곤 했을 것이다. 전남 강진의 옛 이름은 탐진이다. 탐진강 하구에 있는 마량면 마량포구는 제주말들이 뭍으로 올라온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한다.

 

성산읍에는 큰물뫼와 작은물뫼라고 불리는 대소수산봉이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광활한 목장지대였던 수산평이 펼쳐진다. 수산리와 일출봉까지도 포함된 수산평은 고려시대부터 상당한 역할을 한 큰 목장이었다.

 

지금도 일출봉의 서녘기슭 바닷가를 수매밋 또는 수마포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마(受馬) 즉 말을 실어냈던 포구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바닷가에 있는 신천마장도 말과 관련된 곳임을 짐작케 한다.

 

표선면 가시리 마을 지경에 있는 갑마장은 조선조 제주의 국마장 중 일등품 말(甲馬)들을 기르던 곳이다. 가시리 갑마장길은 올레 길로도 널리 알려지고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그곳에 산재한 녹산장과 따라비 오름은 걷기 힐링의 대표적인 곳으로 거듭 나고 있다.

 

고마(雇馬)는 관아에서 시골 백성으로부터 징발하던 말이다. 지금의 일도지구에 있는 고마로는 고마를 방목했던 곳이다. 고마로는 조선시대에 고마장(雇馬場)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고마장은 제주시 사라봉 별도천 서편에 길게 펼쳐진 곳으로 비옥한 경작지와 수풀이 울창했던 곶자왈 지역이었다. 수백 마리의 말떼가 방목되어 있는 국마장 정경이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영주십경 중 하나인 고수목마로 칭송되었을 것이다. 현재 고마로 중심부의 솔동산 소공원(수협 4거리 공원)의 팔각정에는 고마정이라는 현액이 걸려 있어 고마장의 옛 정취가 남아 있기는 하다.

 

어릴 적 소꿉동무들과 함께 연자방아인 몰고랫방에 숨거나, 인근에 방목한 말들에게 접근하여 주인 몰래 말 꼬리인 말총을 당겼던 추억거리도 있다. 그러다 화들짝 놀란 말의 뒷발에 치어 다치기도 했었다.

 

제주 도처에서 특히 조천지방에서는 말 꼬리에서 뽑은 말총으로 갓을 제작하는 사업도 성행했었다. 말총을 뽑는 일은 남자가, 갓을 만드는 일은 주로 여자들이 담당하였다.

 

낮에는 바다에 물질 가거나 밭에 나가 농사일을, 밤에는 꺼져가는 깍지 불 아래에서 말총으로 갓을 만드는 제주여인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본다. 고단함을 이길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런 노 동요 중 하나가 ‘망건 짜는 노래’인데 그 가사가 매우 흥미롭고 묘미가 있다.

 

후렴: 이년 이년 이여도 호라 이년 맹건 모자나 지라,
1절: 장닭 같은 시아방에 암탉 같은 시어멍에
2절: 코생이(물고기 이름) 닮은 시동생에 메옹이(고양이) 닮은 시누이에
3절: 물그럭(문어) 같은 서방 놈은 밤만 되면 못살키여.

 

특히 3절에 묘미가 있다. 밤이 되면 서방이 문어처럼 마누라의 몸을 더듬고 만지는 장면을 상상케 한다. 일의 노역과 성적 흥분을 삶의 흥으로 승화시키는 묘미에서 나는 제주여인의 여유로움과 억척 스러움을 엿보곤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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