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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시의 정수, 북경의 고건축 (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23)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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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5  16: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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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北京)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도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귀한 문물들이 이 도시의 가장 가치 있는 부동산이라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장성(長城), 고궁(故宮), 천단(天壇), 십삼릉(十三稜)은 북경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고대 건축으로 지난날 황가의 권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고대 건축물도 고도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의미심장한 맛이 난다.

천단 안에 ‘소황궁(小皇宮)’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소황궁’이란 천단 서쪽의 ‘재궁(齋宮)’이다. 천단은 명청(明淸)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매년 동지 때에 황제는 천단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오곡이 풍성하기를 기도하였다.

고대 예절에 따르면 황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3일 전에 재궁에서 재계(齋戒)하여야했다. 3일 동안 훈채(葷菜)를 먹지 않고 음주하지 않으며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으며 형사(刑事)를 처리하지 말아야했다. 줄곧 화려한 옷과 진귀한 음식을 먹고 마음껏 가무와 여색을 즐기던 황제에게는 감옥생활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옹정(雍正) 이후 자금성(紫禁城) 내에 다른 재궁을 건축하고 체천의식 때마다 먼저 황궁 안에서 ‘치내재(致內齋)’하고 제례를 거행하기 두세 시간 전에서야 천단의 재궁으로 가 ‘치외재(致外齋)’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천단의 재궁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전에 휴식하는 공간인 셈이다.

   

천단의 재궁은 기년전(祈年殿) 서남, 환구(圜丘) 서북에 위치해있어 세 곳이 정족(鼎足)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 자금성은 두 개의 성벽, 황성과 자금성으로 돼있다. 천단의 재궁도 두 개의 성벽이 있다. 밖에는 전성(磚城)이고 안은 자금성 성벽이다.

자금성은 해자(垓字, 호성하〔護城河〕)가 빙 둘러져 있고 안에는 통자하(筒子河)가 있다. 천단 재궁을 에워싼 것이 전성과 자금성 벽 외에 해자가 있다. 두 해자를 가로질러 3개의 한백옥교(漢白玉橋)가 놓여있다.

그리고 전성 네 모퉁이에는 각각 군사들이 주둔하는 집이 다섯 채가 있다. 자금성 네 모퉁이 각루(角樓)와 비슷하다. 그 건축 양식이 자금성과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규모는 비교가 안 되지만.

천단 재궁의 두 궁문을 들어서면 서쪽에 동쪽을 향하여 서있는 다섯 채의 대전이 있다. 녹색 유리 기와로 돼있고 겹처마 지붕에 두공(枓拱) 구조이며 기둥과 대들보를 채화로 화려하게 장식돼있다.

전체 건축물이 장엄하고 화려한데 바로 재궁이 정전이다. 좌측 석정(石亭)에는 동인(銅人)이 모셔져 있다. 당 태종 때의 재상 위정(魏征)이라 전해온다. 그는 손에 ‘재계(齋戒)’라 쓰인 패를 들고 황제에게 재계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일깨우고 있다. 오른쪽 석정에는 시진(時辰)대가 놓여 있는데 황제에게 시간에 맞춰 재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구실을 한다. 시간을 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명과 청 왕조 양대의 제도에 따르면 황제는 일률적으로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해야 하였다. 모든 궁전 회랑은 황색 유리 기와로 되어있는데 어째서 천단의 재궁만 서쪽에 앉아 동쪽을 향하게 만들었을까? 황제는 스스로 봉천승운(奉天乘運, 천명을 받들다)한 ‘천자’라 하였다. ‘하늘’의 ‘아들’이 천단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망자존대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 재궁은 서쪽에 세워 동쪽을 향하게 건축하였고 녹색 유리기와를 사용하였다.

그럼 이제, 광서(光緖) 황제를 수금(囚禁)하였던 영대(瀛臺)를 살펴보자. 광서제는 변법을 추진하며 국가 진흥에 힘쓰다 결국 10여 년 동안 영대에 구금된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죄수요 비극적 인물이다. 사람들은 혹간 영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또 묻는다, 어찌 위풍당당한 황제를 가둔 우리가 됐는가?

영대는 북경의 중남해(中南海)의 남해에 있다.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있어서 조그마한 섬과 같다. 북쪽으로 목교를 놓아 육지와 연결하였다. 중간에는 함원전(涵元殿)이 세워져있고 주변에는 정대(亭臺), 누각과 기석, 고목들이 즐비하다. 명대에 처음 세워져 남대(南臺)라 불렀는데 청대 순치(順治) 연간에 수리 증축해 영대라 불렀다. 강희(康熙)와 건륭(乾隆)이 여러 차례 그곳에서 정무를 보거나 연회를 베풀었다.

무술정변(戊戌政變) 이후 자희(慈禧)태후가 노기를 참지 못하여 광서제를 함원전에 구금하였다. 함원전은 영대의 정전으로 남쪽을 향하여 북쪽에 세워져있다. 북쪽으로 함원문(涵元門)과 상란각(翔鸞閣)이 마주하고 있고 남쪽에는 향신전(香宸殿)과 영훈정(迎熏亭)이 마주보고 있으며 호수를 사이에 두고 신화문(新華門)이 세워져있다. 건축 규모는 자금성과 크기를 비교할 수 없지만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광서제가 함원전에 수금되면서 그곳은 처량하고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광서제는 매일 아침 자희태후에 이끌려 조야에 참석하는 것 이외에 나머지 시간은 그곳에 수감돼 외출할 수 없었다. 광서제를 시봉하는 태감은 모두 자희태후의 심복 이연영(李蓮英)이 직접 선발해 광서제를 시봉한다는 명의 하에 감시하였다. 어느 해 겨울, 남해 수면이 얼음이 얼자 하루는 광서제가 미복으로 출행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발각돼 ‘궤조(跪阻, 무릎 꿇고 저지하다)’돼 돌아갔다. 자희태후가 그 사실을 알고는 사람을 시켜 호수의 얼음을 깨게 해서는 광서제가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전한다.

   

광서제가 영대에 구금된 기간, 심신이 고통 받았다. 함원전의 종이로 바른 창에 구멍이 생겼는데 수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온다. 혹한의 북국 겨울바람을 참아낼 수 있었겠는가. 광서제는 살을 에듯 추운 삭풍 속에서 온몸이 얼어 사시나무 떨 듯 떨렸고 수족은 마비되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광서제가 등극한 후 힘을 다해 나라를 다스려 조상의 업을 부흥시키기도 전에 자신은 “날고 싶으나 날개가 없고(慾飛無羽翼), 건너려 하여도 댄 배가 없다(欲渡無舟艤)”하였음이니. 그가 자주 “나는 한나라 헌제(獻帝)보다도 못하다!”다고 개탄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광서제가 더 참기 힘든 것은 자희태후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바로 광서제가 가장 총애하는 진비(珍妃)를 연금시켜 광서제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만들었으니.

광서제의 영대 수금 생활은 그의 일생의 마지막 세월이었다. 광서 34년 10월 21일 자희태후가 죽기 하루 전날 함원전 동쪽 방에서 비극적인 일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이 자희태후와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희태후가 그를 모살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어떤 이는 원세개(袁世凱)가 독살했다하기도 하고. 아직도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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