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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도 아닌 작자들의 갑질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그린 북(Green Book) (2)
김상회 정치학 박사  |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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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8  08: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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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우리네처럼 알게 모르게 ‘족보’를 따진다. 미국 시민권이 있다고 모두 똑같은 미국인이 아니다. 미국을 움직이는 주류 사회는 흔히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로 통칭된다. 백인이라고 다 같은 백인이 아니다. 백인이되 영국 앵글로색슨 혈통이어야 하며, 남유럽계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여야 한다.

   
▲ 모두가 갑질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모두가 갑질의 피해자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이란 나라의 인종차별 문제는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제여서 어지간해서는 심드렁해지기도 하고 따분해지기 쉬운 주제다. 그러나 영화 ‘그린 북’은 토니 발레롱가라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을 등장시켜 미국의 인종문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라틴계이며 가톨릭 전통을 지닌 이탈리계 미국인은 ‘진골’이나 ‘육두품’ 어디쯤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와스프의 ‘성골’ 신분은 아니다.

토니는 클럽에서 ‘성골’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간다. 어느날 클럽이 내부수리를 위해 휴업하게 되고 토니는 일시적 실업자 신세가 된다. 임시직을 구하던 토니에게 일자리 제안이 들어온다. 돈 셜리 박사라는 피아니스트의 8주간 진행되는 콘서트 투어의 운전사 겸 보디가드다. 토니는 카네기홀 2층에 자리 잡은 돈 셜리 박사의 사무실로 면접을 보러 간다.

토니는 돈 셜리 박사가 흑인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는다. 토니로 말할 것 같으면 집에 터진 수도관 고치러 온 흑인 배관공이 마신 물컵조차 마치 세상에 가장 끔찍한 병원균으로 오염된 그 무엇을 대하듯 손끝으로 쥐어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극단적 흑인혐오자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을.

   
▲ 토니는 흑인 배관공이 마신 물컵조차 버릴 만큼 극단적인 흑인혐오자다. [사진=더스쿠프포토]

카네기 홀 사무실에서 성공한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와 흑인을 혐오하는 이탈리아계 백인의 기묘한 조우가 이뤄진다. 돈 셜리 박사의 집무실은 어느 강남 졸부의 거실처럼 세상 온갖 비싸고 진귀한 장식들로 채워져 있다. 거의 엽기적인 수준이다. 도무지 방 주인의 취향이나 가치관을 헤아릴 수가 없다. 매우 건방진 자세로 면접을 기다리는 토니 앞에 나타난 돈 셜리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생뚱맞게 이슬람의 왕이나 족장 같은 복장으로 등장해 용상과도 같은 어마어마하고 드높은 의자에 임금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앉아 토니를 내려다본다. 돈 셜리 박사의 기묘한 등장은 멸시당하는 흑인으로서의 열등감의 가장 처절한 방식의 고백처럼 보인다. 와스프에게는 어쩔 수 없지만 토니 따위의 ‘2류 백인’에게만은 기죽지 않고, 더 나아가 군림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득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을 맞아 한국 정치인에게는 ‘호떡의자’ 같은 응접의자 하나 내어주고 자기는 큼지막하고 높은 요란한 꽃무늬 의자에 앉은 일본의 아베 총리라는 사람의 모습과 겹쳐진다. 아베 총리가 미국 국회의장도 호떡의자에 앉히고 혼자 큼지막한 꽃무늬 소파의자에 앉아 면담했는지 궁금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한다. 돈 셜리 박사는 백인들에게 온갖 설움을 당하고 그 울분을 엉뚱하게도 2류 백인 토니로부터 보상받고 싶어한다. 아베 총리라는 사람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뺨 맞고 전전긍긍하다가 만만한 한국 대통령에게 눈을 흘기고 온갖 기염을 토한다.

   
▲ 자신보다 맘만해 보이고 힘 없는 자를 괴롭히는 '갑질'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일본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에 저항했던 일본 정치사상사의 권위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는 일본의 가혹했던 식민정책 심리를 ‘억압심리의 이양’으로 설명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인들에게 당했던 모욕과 압박을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복수하듯 퍼부었다는 것이다.

백인들에게 얻어터지던 돈 셜리 박사나 일본이나 누군가 조금 만만한 상대에게 자신도 한번쯤 시원하게 ‘갑질’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조금은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 갑질의 욕구가 어디 돈 셜리 박사나 아베 총리뿐이겠는가. 우리라고 마루야마 마사오가 경고한 억압심리의 이양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혹시 백인, 일본인에게 받은 ‘억압심리’를 애꿎은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이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금은 만만해 보이고 힘 없는 자기 회사 직원이나 아파트 경비원, 편의점 아르바이트, 백화점 직원들에 대한 ‘갑도 아닌’ 사람들의 ‘갑질’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어디선가 뺨 맞고 엉뚱하게도 그 울분을 만만해 보이는 애꿎은 그들에게 이양하고 보상받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뺨 맞았으면 뺨 때린 놈과 멱살잡이를 할 일이지 엉뚱하게 만만한 상대를 잡아 패악을 할 일은 아니다. 모두가 갑질의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모두가 갑질의 피해자가 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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