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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2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태감은 중국 봉건제도의 기형적인 산물이다. 봉건황조의 극단적으로 잔인한, 그러면서도 비인도적인 문화다. 태감은 일반적으로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생존을 위하여 생식기를 떼어 내고 황궁에 들어가 황실에 시봉하였다. 태감이 되면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여론의 질시를 감내해야하였다. 그들은 봉건사회의 최하층을 이뤘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중국 역사에는 ‘행운’을 누렸던 태감이 있다. 위충현(魏忠賢), 이연령(李連英)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황실의 총애를 받아 비할 데 없는 권위를 향유하였다. 이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역사상 외국 국적의 태감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분명 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외국 국적의 태감이 바로 박부카(Buqa, 朴不花)다. 고려인으로 원 문종 시대에 태어났다. 박부카는 황궁에서 기락(奇洛)황후와 가까워 높은 관직을 얻게 되자 대신들조차 그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한 시대의 권력을 누린 인물이었으니 ‘태감’이란 가문(?)을 드높였다 할 것이다. 그에 대해 사전적 풀이를 잠시 보자.

 

“왕불화(王不花)라고도 한다. 원나라 때 고려사람. 환관으로 들어와 순제(順帝) 기황후(奇皇后)를 섬겼다. 기황후 역시 고려 사람으로 서로 알고 지냈는데 극히 총애하였다. 자정원사(資正院使)가 돼 황후의 재정을 관리하였다. 위세가 대단해 승상(丞相) 초스간(搠思監)과 한 패가 돼 사방에서 경고하는 말을 막고 장군과 신하들이 세운 공훈에 대해서도 모두 억눌러 들리지 않게 하면서 조정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관직은 집현대학사(集賢大學士)까지 올랐다. 나중에 베이르 테무르(BeiLuoTieMuEr, 孛羅帖木兒)에게 피살되었다.”

 

 

박부카는 일곱 살 때 우연한 기회에 거세돼 원 왕조의 황성으로 보내졌다. 차를 따르고 물을 깃는 일을 하거나 청소를 담당하는 일상적인 잡무를 하였다. 그와 같은 시기에 황궁으로 들어온 고려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기락(奇洛)이었다. 박부카와 동향으로 어릴 적 놀이 동무였다.

 

기락은 황궁에서 바느질과 같은 일을 하다가 틈이 날 때마다 둘이 같이 얘기도 나누고 놀기도 하면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달랬다. 둘은 서로 보살펴주고 아껴주었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궁정에서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몇 년이 지났다. 비바람이 거세지 않은 안락한 궁내 생활은 기락을 아리땁게 성장토록 하였다. 귀엽고도 사랑스러웠다. 원 문종의 아들 토곤 테무르(Toghon Temür, 妥懽帖睦爾)가 놀이를 하면서 기락을 만났다.

 

어찌 됐을까? 손을 잡고 자신의 궁으로 이끌었다. 기락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영리하면서도 온유하였다. 토곤 테무르는 사랑에 빠졌다. 오래지 않아 토곤 테무르가 즉위하는데 그가 바로 원 순제(順帝)다. 순제는 기락을 이황후(二皇后)에 앉힌다. 그녀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화후(奇皇后)다.

 

기락이 모의천하(母儀天下)의 황후가 됐으니 금의옥식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동향인 박부카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박부카를 자신의 흥성궁(興聖宮)으로 불러들여 영록대부(榮祿大夫)로 삼고 자정원사(資政院使)에 앉힌다.

 

자정원은 원 왕조에서 전국 재정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였다. 이른바 은화를 챙길 수 있는 노른자위였다. 기락황후는 그렇게 실속 있는 자리를 박부카에게 선사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부카는? 금전을 챙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박부카는 점차적으로 거액의 재산을 축적한다. 기황후에게도 많은 재화를 거둬 준다. 박부카는 은밀하게 횡령하였다. 교묘하기 그지없었다. 조정에서 알아차릴 수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했다. 횡령한 재물을 조정의 권신과 황친 국적들에게도 보냈다. 그럼으로써 황궁 내외에서 박부카가 사람 좋다고 칭송이 자자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박부카가 변하기 시작한다. 재물로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자신의 사욕을 채울 수 없게 되자 권력을 탐하게 된다. 마침 원 순제도 박부카를 좋아하였다. 박부카에게 임시 관직을 줘 이재민 구제나 향진 사찰 등 업무를 주관하게 하였다.

 

 

기락황후가 낳은 아들이 황태자가 된 후 박부카는 관심을 태자에게 돌렸다. 태자의 먹고 자는 모든 것을 다 박부카가 처리하였다. 순제가 정무에 싫증을 느껴 가무와 여색만을 탐하게 되었을 때는 군사 대권을 모두 태자에게 일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부카가 추천한 초스간(搠思監)을 재상에 앉혔다. 그때 박부카는 막강한 권력이 이미 조야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인물이 되어있었다. 관리 임면만 아니라 국책 입안도 모두 박부카가 결정하였다. 박부카는 조정에서 자신과 불목 하는 관리들을 모두 강등시켰다.

 

원 순제가 박부카, 초스간 등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방임하자 조야 내외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군벌세력도 기회를 틈타 기병하였다. 군벌은 세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궁정 권력 투쟁에 참여하였다. 일순간에 천하는 혼란에 빠졌다.

 

그때 태자는 천자의 자리에 일찍 앉고 싶었다. 불안한 국가 정세를 보면서 부황이 자신에게 선위하도록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박부카, 초스간, 기락황후도 찬동하였다. 몇몇이서 암암리에 전복 활동을 전개한다. 바로 그들이 계획대로 자신들을 반대하는 조정 중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하려 할 때 원 순제에게 음모가 발각되었다. 조정에서도 안하무인으로 무법천지를 만들려고 하는 그들을 탄핵하기 시작하였다. 순제는 박부카와 초스간을 하옥하도록 명령한다.

 

평소 그들의 행위를 주시하고 있던 베이르 테무르가 태자가 경성에 없는 틈을 타 둘을 주살해 버린다. 이는 궁정의 황태자 옹립파와 반대파 갈등에서 비롯된 정치 투쟁이었다. 태자인 기황후의 아들 보르지긴 아유르시리다르(Bordjigin Ayusiridara, 孛兒只斤愛猷識理答臘)는 북원(北元)의 소종(昭宗)이 되고 그 역시 고려 출신 여성 권 씨와 김 씨를 맞이해 황후로 삼았다. 몽골식 재위명은 빌레그트(Bilig-tü, 必里克圖) 칸이다.

 

한번 어그러진 정세는 바로서지를 못했다. 군벌이 혼전 중에 남방의 주원장(朱元璋)이 세력을 키워 대원제국의 운명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쓰러져 가는 제국을 보면서 순제는 눈물을 흘리며 태자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너희들 모자가 내 천하를 그르쳤구나. 내 대원의 강산이 너희 모자의 손에 무너지는구나!” 원 순제의 이 말은 옳은 것일까?

 

박부카의 일탈을 방임한 자는 누구인가? 기황후가 태자를 일찍 옹립하려 하였던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황태자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권력투쟁하고 군벌이 득세해 강산이 혼란하게 된 것은 누구 탓인가?

 

 

어찌됐든, 박부카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 중국 천하를 움켜쥐었던 대원제국은 막북으로 옮겨 북원이란 이름으로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으니. 세계를 횡횡하였던 몽골 제국은 또다시 초원으로…….

 

역사는 발전하는가? 아니면 돌고 도는가?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를 가만히 지켜보면 돌고 도는 것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른다는 말이다.

 

제왕을 위한 ‘제국’이 2천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선택의 문제요,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사상’의 문제다. 우리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 역사는 ‘그것’에 따라 굴러가리라.

 

그렇기에 역사 앞에서 우리는 겸손하여야하고 진중하여야한다. 그리고 ‘사상’을 옳게 가져나가야 한다. 최소한 모든 사상을 총괄해 보편화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현재를 제대로 파악하는 ‘시대정신’만은 가지고 있어야한다. 모든 인류와 생명을 위하여…….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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