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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여행자, 마르코 폴로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20)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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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4  09: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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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Marco Polo, 馬可波羅, 1254~1324), 이탈리아 베니스 상인, 여행가이다. 1275년경에 이란을 거쳐 상도(上都)에 도착해 원 세조 쿠빌라이의 신임을 받고 후한 대우를 받았다.

중국에 머무르는 10여 년 동안 중국 대부분을 여행하고 1292년에 유럽으로 돌아갔다. 『세계 경이(驚異)의 서(통칭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를 구술해 저술하고 동방의 풍족함과 문물의 창성함을 칭찬하였다. 이로써 동서양 교류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계기를 만들게 됐다고 평가받는다.

『동방견문록』이라 통칭되는 『마르코 폴로 여행기』는 서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세계 제일기서’라 칭송받았다. 유럽 최초의 동양을 기록한 역사지리 자료서이기 때문이다.

원 왕조 초기의 역사서로 화려한 문체를 사용해 동방의 문명을 소개함으로써 유럽인에게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렸다. 이 여행기는 베니스를 거쳐 유럽 전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각종 문자로 출판되었다. 이로써 마르코 폴로는 명성을 얻게 된다. 물론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마르코 폴로는 여행기에서 자신이 중국에 있을 때 네 가지 언어에 능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네 종류의 언어를 읽을 줄도 알았고 쓸 줄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언어인지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아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남기고 있다. 마르코 폴로는 과연 한어(漢語)를 알고 있었을까?

근대 프랑스인 학자 포티어(G.Pauthier) 등은 마르코 폴로가 한어, 위구르어, 파스파(八思巴)문자, 그리고 아라비아 문자로 쓴 페르시아어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명한 『마르코 폴로 여행기』의 주석가인 영국인 율(H.Yule), 프랑스인 코르디에(H.Cordier)는 마르코 폴로가 한어를 알고 있었다는 데에는 회의적이다. 부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르코 폴로는 소주(蘇州)를 땅(地)으로 번역하고 항주(杭州)를 하늘(天)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그가 한어에서 소(蘇), 항(杭)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쑤저우,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下有蘇杭)”라는 구절만을 근거로 당연히 그렇겠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둘째, 한자 필법의 특징은 서양 문자와 전혀 다르다. 서양인에게 동방 문자를 설명하는 책에는 이 점을 놓치는 경우가 없는데 마르코 폴로는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

셋째, 여행기에서 언급한 여러 지명, 예를 들어 Tangut(唐兀惕, 서하〔西夏〕), Cathay(契丹, 거란), Cambaluc(汗八里, 대도〔大都〕) 등은 모두 몽골어이거나 돌궐(突厥)어 혹은 페르시아의 명칭이다. 이 지명에 상응하는 한어 명칭이 분명 있다. 그런데 마르코 폴로는 버리고 사용하지 않은 것을 보면 한어의 그러한 지명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율과 코르디에의 이러한 설은 마르코 폴로 저작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인정받고 증명되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돌궐 문자, 몽골 문자, 페르시아 문자는 표음 자모를 사용해 맞춤법에 따라 표기하는 데에는 확실한 규범이 있고 정확하지만 한어 어휘는 무척 적고 맞지도 않는다. 가끔 중국어식 지명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대부분 페르시아, 돌궐 등 문자로 전환해 사용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마르코 폴로는 페르시아어, 몽골어, 돌궐어는 알고 있었지만 한어, 즉 중국어는 전혀 몰랐다고 단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학자들은 마르코 폴로가 한어를 알지 못한 까닭을 원 왕조의 내부 정세를 가지고 분석한다. 원은 몽골인이 건국한 왕조다. 한족을 임용하기는 했지만 거반 색목인(色目人)〔원나라 통치자들이 서역(西域) 각 민족과 서하(西夏) 사람들을 지칭한 말〕들을 대거 기용해 국가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지위는 한족보다도 위였다.

원 조정의 조령(詔令)은 몽골의 신문자를 사용하였고 몽골 국자학을 세워 몽골과 한족 관료 자제들에게 교육하였다. 각 관료 기구에는 통역이 있었다. 따라서 한어와 한자는 관방에서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조익(趙翼)의 『입이사찰기(廿二史札記)』기록에 따르면 원 왕조의 역대 황제들은 거의 한문을 몰랐다고 한다. 원 세조 지원(至元) 15년(1278) 강회(江淮, 장강 중하류와 회하〔淮河〕 유역)의 행성(行省, 원나라 지방 통치 기관. 현대 중국의 지방 행정 구역인 성〔省〕의 기원)의 관료들 중 한자를 쓸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몽골인의 한자 지식이 이와 같은데 어찌 외국인에게 한문을 알도록 요구할 수 있었겠는가?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교류하고 얘기를 나눈 부류는 주로 조정을 출입하는 외국인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기본적으로 페르시아어였다. 페르시아어는 당시 몽골 조정의 외국인이 사용하는 공통 언어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마르코 폴로도 한어를 배울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마르코 폴로가 알고 있다고 한 네 가지 언어는 몽골어, 페르시아어, 아라비아어와 돌궐어(위구르어)였지 한어, 즉 중국어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 마르코 폴로는 학자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문학가도 역사가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르코 폴로가 여행기를 저술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구술해 기록하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중국에서 17여 년이란 긴 기간을 거주했지만 진정한 ‘중국통(中國通)’이 됐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중국 현지인들과 직접 그들의 언어나 문자를 가지고 소통하는 데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흥미를 가지고 있던 분야는 문화 방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중국의 한자와 인쇄술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연구하거나 기록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여행기에서 서술한 지명은 대부분 페르시아 식이다. 이는 마르코 폴로가 평상시에 접촉한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에 장사하기 위해서 온 페르시아 상인이나 돌궐인이었음을 설명해준다. 그가 한자를 몰랐으니 지명 표기에 어쩔 수 없이 페르시아어 형식을 사용할 수밖에.

   

만약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만 했다면 한어를 그리 잘 할 필요가 없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하더라도 한어를 모르면서 현지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없었던 마르코 폴로가 양주(楊州) 총관을 3년 동안 역임했다는 데에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기에서 자신이 원 황조 황제의 명을 받아 남방을 순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족적이 닿은 지역의 기후, 물산, 풍속, 인심, 종교 신앙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양주를 얘기할 때 그 도시가 당시에 “전국 20개 도시 중 하나”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자랑하듯이 “친히 대칸의 명령을 받아 그 도시를 3년 동안 다스렸다”고 자부하고 있다. 당시 양주는 제국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한족이 중심이 된 도시였다. 그런데 한어를 모르는 사람이 그 도시를 3년이나 다스렸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여하튼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여행가의 한어 능력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아쉬운 것은 중국에는 그의 언행을 기록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르코 폴로가 한어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아무도 확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중국 역사상 몽골의 원 왕조가 갖고 있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원 왕조는 몽골인이 다스렸던 중국이었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색목인들이 중심이 됐었고…….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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