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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돌이 된 나와 내 어미를 위로.추모한다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올(2011년) 9월부터 나는 경관 좋기로 유명한 탐라교육원에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 이곳 못지않게 전 근무지인 중문고등학교의 교정도 매일 나를 홀릴 정도로 근사하다. 그 풍경에 반한 나는 학교에서 교단일기를 쓰곤 했는데, 다음은 그중 일부이다.

 

오늘도 나는 한낮의 땡볕을 피하기 위해 교정 서쪽에 있는 청송원(靑松園)으로 향했다. 청송원은 푸른 소나무를 비롯한 백여 그루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300여 평의 학교정원이다. 고요한 분위기에 취할 수 있고, 너울대는 나무들의 속삭임을 들 수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

 

2년 전 이곳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무슨 담배꽁초가 그리 많던지. 아이들이 피우고는 버린 꽁초를 줍고 또 주우면서 새내기 교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을 자주 찾게 하자, 나무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게 하자, 이곳은 내 사색의 공간이기에 앞서 저들의 놀이터여야 한다.

 

그러한 바람으로 나무들과 바위들이 산재한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던 우리는 놀라운 것을 보고야 말았다. 공사를 맡은 이들이 잡목과 잡풀을 들어낸 그 곳엔 여태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머리와 꼬리 형상 바위들의 행렬을 보는 순간, 용두암과 용머리바위 전설이 스쳐갔다.

 

새끼용의 형상이 내 앞에 나타났고 이내 내 눈은 환희에 들떴다. 그리고 새끼용의 애환과 환희의 전설을 다시 써나갔다.

 

옛날부터 제주섬 경치는 중국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특히 산방산 인근에서 중국을 호령할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리라는 예언을 염려한 송나라는, 풍수 전문가인 호종단 일행을 제주로 급파한다. (호종단은 동쪽 바닷가 마을인 구좌읍 종달리, 일설에는 한립읍 옹포항을 통해 제주에 상륙했다고도 한다.)

 

제주 땅 여지저기를 파헤친 그들은 서귀포 홍리의 지장(知藏)샘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직후 산방산에 도착한다. 명당임을 직감한 그들은 곧장 예리한 침봉으로 주변을 마구 찌르기 시작한다.

 

오호 통재라, 바닷가에서 잠시 쉬던 용은 그만 피를 토하며 한 맺힌 삶을 마감하였으니. 심해에서 여의주를 찾은 어미용은 산방산 경치에 넋을 잃어 잠시 승천의 때 를 기다리다 그만 변을 당한 것이었다.

 

모성애의 현양인 것을. 어미용이 죽을힘을 다하여 감싼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새끼용의 탄생. 만신창이 몸으로 탈출에 성공하나 어미 잃은 슬픔을 포효하는 새끼용의 처절함으로, 제주 전역은 비바람 천국이 되었다.

 

늦게 사태를 알아챈 한라산 신령은 매로 변신, 거센 풍랑을 일으켜 중국으로 향하던 호종단 일행을 서쪽 바닷가인 한경면 고산리 차귀도(遮歸島) 주변 바다에 잠재운다. 호종단의 귀향을 차단한 섬이라는 차귀도의 지명유래는 이에서 생겼으니, 전설이 곧 사실임직 하지 않은가.

 

어미가 온몸으로 막아준 덕에 목숨을 가까스로 건진 새끼용의 몸은 성한 데가 없었다. 갈기갈기 찢긴 어미의 살점 하나라도 부여안고 숨을 곳을 찾아가는 새끼용의 애처로운 모습에 신령님도 할 말을 잃었다.

 

고난 끝에도 새 삶이 있는 법, 어미 잃은 슬픔에 몸서리 치던 새끼용은, 어느 날 환희에 들떠 이곳에서 방황과 비애의 나래를 접는다. 오름과 바다가 보이는 이곳이 명당임을 한눈에 알아본 새끼용은 죽어서라도 이곳에 묻히기를 다짐한다.

 

내 어미가 생전에 좋아한 산방산과 주변 바다를 내려다보고, 한라영봉을 올려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리라. 어미의 운명처럼 내 비록 바위가 된다 해도 내 어미의 살점들과 함께 이곳에 묻히리. 먼 훗날 돌이 되어 있을 나와 내 어미를 누군가 위로하고 추모한다면 나는 지극정성으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 리라.

 

이렇듯 슬픈 사연을 간직한 새끼용이 이곳에 잠들어 있음이 놀랍지 않은가. 끊겨지듯 이어지는 돌로 된 용의 형상은 새끼용의 처참한 상처들이 바위로 굳어진 것이다.

 

주변에 산재한 크고 작은 바위 들은 새끼용이 사력을 다해 몸에 지녀온 어미의 살점이 아니던가. 언제부턴가 이러한 전설이 알려지고, 용의 신령함을 아는 이들이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빌고 또 빌어 그 뜻을 이루리라.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운 바위의 마음을 그대는 아는가. 이곳에 온다면 그러한 바위의 마음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언젠가 이곳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행운의 장소로 자리매김 하리라 ….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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