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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촛불'의 미래, '확증편향'의 감옥에서 나올 때 가능하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말이 있다. 인지심리학(認知心理學, Cognitive Psychology) 용어다. 마음이 반대하는 것에 맞닥뜨리는 걸 체계적으로 회피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이미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에 모순되는 증거는 과소평가하거나 그냥 깎아내리는 것이다.

 

미국의 원로 언론인 잭 풀러(Jack Fuller)가 2010년에 낸 <뉴스의 현재(What is Happening to News)>라는 책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신문을 읽지 않는 요즘 세대에 언론은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철학과 심리학을 동원해 풀어놓은 책이다.

 

확증편향에 빠지면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게 된다.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는 버리거나 애써 외면하고 유리한 정보만 찾아내 합리화시킨다. 자신의 견해에는 너무나 긍정적인 반면 다른 견해에는 너무나 배타적이다. 이른바 ‘색안경’을 쓰게 되기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뭉치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번져간다.

 

 

20대 청년기를 1980년대에 보냈다. 대학에 입학하던 그 시절 우린 앞선 세대의 눈물 겨운 투쟁으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했다. 그 시절 우리 청년세대 지상 최고의 과제는 ‘민주화’였다. 박정희 정권에 이은 전두환 정권의 신군부독재로 참혹한 정국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 시절 우리가 선대로부터 배우려 애쓴 주제는 ‘4·19혁명’이었다. 4·19혁명 정신과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외친 청년들의 패기는 우리에게 귀감이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거, 민주주의를 목 놓아 외친 4·19혁명의 전개과정은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뒤안길을 돌아보며 서서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러니였다.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시절 군부세력으로 채워진 집권여당의 간판은 민주정의당이다. 그런데 그 민정당의 간판 국회의원은 4·19혁명의 시기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쳤던 대학 총학생회장이었다. 그들이 신군부 정권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권력의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우리가 배우고자 한 4·19혁명의 이념과 정신이 있을진대 그를 주도한 이들이 그 정신을 부정하는 군부독재 정권에 부역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기까지 했다. 1960년에 벌어진 일에 대해 그로부터 25, 6년이 지나 청년세대가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1987년! 우리들의 20대 시절은 이 한 해로 집약된다. 영화 ‘1987’이 보여준 실상 그 자체였다. 암흑의 시대에서 희망을 쏘아 올린 그 해였다.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건이 도화선이 돼 연세대생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사망으로 온 국민의 분노가 촉발되던 한 해였다. 그해 12월 다시 부활한 대통령 직선제는 그런 투쟁의 성과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핵심세력은 그 시절 대학가 시위와 거리투쟁을 주도한 인물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상호 의원이 그렇고, 그 시절 학생운동의 대표조직인 전대협 의장이었던 이인영 의원이 그렇다. 송영길 의원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역시 1980년대 전·후반기를 풍미했던 대학가 총학생회장 출신들이다. 정치권에 있는 그들만이 아니라 일부 정부 부처 장관이나 문화·예술계 유력 인사들도 그런 전력을 갖고 있다.

 

지금과 1987년의 간극을 물리적 시간차로만 놓고 보면 30년여의 세월이다. 우리가 대학시절 만난 4·19혁명의 간극과 그리 차가 나지 않는다. 아마 어찌 보면 지금 대학생일 청년세대가 우리와 같은 젊은 시절의 고민과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네 자식세대들이다. 과연 우린 당당하고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역사는 발전했다고. 그래도 과거 권력에 기생했던 이들의 비양심과는 결별한 정권이자 정통성을 갖춘 정권이라고. 그래도 권력을 보좌하는 이들이 아직 양심을 팔고 살고 있지는 않다고. 100% 동의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게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건 사실 수백만 군중이 목놓아 외친 ‘촛불혁명’의 정신이다. 불과 2년 5개월여 전 온 국민이 들고 일어선 함성의 원천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자괴감이었다. 최순실을 비롯해 특정인들끼리, 자기들만의 나라로 유린해 온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전면적인 쇄신이 목표였다. 더 이상 특정인들만의 나라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진화된 민주주의 정신이자 성숙된 민주의식의 표현이었다.

 

다시금 우리를 돌아본다. 한국의 지배그룹엔 다시 ‘근거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걸 억지로 끌어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꿰맞추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자주 꺼내드는 견강부회(牽强附會)란 사자성어의 뜻풀이다. 그가 적절한 때 이 말을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 우리 사회 지배세력엔 이런 일이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낙하산 인사’와 ‘회전문 인사’를 밥 먹듯 하던 과거의 ‘불공정’과 완전히 이별하리라 생각했건만 현정권에서도 숱하다. 도무지 적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들이 정권과의 인연으로 한 자리씩 꿰차고 앉는 걸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툭하면 ‘빨갱이’·‘종북’ 낙인찍기에 맛을 들인 자유한국당 역시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일관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으로선 어떨 땐 ‘도긴 개긴’이다. '내로남불'의 사례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의 늪에 빠지면 견강부회와 아전인수의 ‘우물’에 더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타인에 대한 경직된 태도를 보이며 쉽게 폭력과 파괴적인 성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히틀러는 집단적인 피해의식을 가진 국민들을 선동해 독일인이 가장 우월하다는 편견을 심었다. 결국 그 편견은 집단 간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전쟁과 파괴를 불러왔다. 히틀러도 수많은 양민을 학살할 때 당시의 법과 원칙을 따랐다. 다만 자기 생각에 맞춰 법과 원칙을 만들었고 철저히 적용했을 뿐이다.

 

리더나 의사결정자는 확증편향의 유혹에 늘 노출돼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은가에 대해 회의를 품고 검증하기엔 이미 확증편향의 심리가 고착화된 경우가 많다.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간 경우가 리더들에게서 심심찮게 보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고 지나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

 

두 거대정당이 마치 ‘치킨게임’을 하듯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보인다. 양측 모두 ‘확신’에 가득차 보인다. 한국이란 거대담론으로 갈 것도 없이 우리 제주사회를 돌아봐도 그렇다. 해군기지란 십수년의 갈등에서부터 이제 ‘제2공항’ 문제에 이르기까지 찬·반으로 나뉘어 끝없는 주장이 꼬리를 문다. 원심적으로 분열만 거듭할 뿐 구심적 통합의 시대로 가는 게 퍽이나 버거워 보인다. 양측 모두 ‘강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촛불혁명으로 반전의 역사를 만들어낸 우리 시대는 이제 그런 사고의 패턴과 결별할 때가 됐다. 모든 걸 이념의 잣대로만 싸우던 것 역시 제주사회에서 그만둘 때도 됐다. 스스로를 다른 눈으로 재점검할 때도 됐다. 세상은 천연색인데 ‘흑백’의 색안경으로만 본다면 보이는 건 모두 ‘흑백사진’이다.

 

그래서 칼 맑스(K. Marx)는 “모든 걸 의심하라”는 말을 남겼는가 보다. “세상의 모든 건 다 변한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의 교훈은 그래서 유용한 것인가 보다. 그래서 ‘확증편향’의 도그마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경계의 대상이다. 문득 그런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조금씩 나이를 먹다보니 스스로에게 던지는 ‘경계’의 화두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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