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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심층심리(1)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11)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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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4  17: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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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과 관련해 중요한 편지가 한 장 있다. ‘문혁’ 초기 모택동(毛澤東)이 강청(江靑)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다. 1966년 7월 8일, 모택동이 소산(韶山) 적수동(滴水洞)에서 작성해 강청에게 보냈다.

모택동은 이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먼저 주은래(周恩來), 왕임중(王任重) 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주은래로 하여금 상해에 있는 강청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였다. 강청이 보고 난 후 주은래에게 또 그 편지를 대련(大連)에 있던 임표(林彪)에게 보내어 읽도록 하였다.

모택동의 일생 중 개인적으로 쓴 편지는 많지만 그렇게 길게 쓴 것은 없다. 그 편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감정을 써서 보낸 것이라 보기 어렵다. 모택동의 정견을 표현한 특수한 방법인 셈이다. 당시 중국 정치 형세에 대한 고민과 예측의 결과물이었다.

모택동은 그 편지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그리고 자기 내면의 남모르는 근심 등을 모두 써내려갔다. 모택동이 그 편지를 쓴 근본 목적은 무엇일까? 이미 형성된 ‘문화대혁명’에 대한 사고의 방향을 강청에게 얘기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바로 ‘문혁’ 결행을 격려하려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강청 일파에게 어떤 ‘좌파(左派)’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어떤 좌파들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결국 모택동이 마음잡고 문화대혁명을 시작했으며 조종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편지였다.

모택동은 객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중앙 문화혁명 소조의 구성원들이 북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보고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날은 1966년 7월 18일이었다. 무한(武漢)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北京)에 도착한 날이었다. 좀 쉬고 나서 보고를 듣겠냐고 주변 사람들이 묻자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중앙 문화혁명 소조에게 즉시 중남해(中南海)의 거처로 모이도록 했었다.

그 시각, 객실 가득 둘러앉아 있는 부하들을 보면서 모택동은 침착하면서도 평온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정치가라면 자주 공격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확실한 기회를 포착해 강력한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 옳지 않던가.

정권을 잡고 휘두르며 그 나이까지 왔는데, 심사숙고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안경 뒤 깡마르면서 주름이 깊게 팬 얼굴을 하고 있는 강생(康生), 안경 뒤 광대뼈가 돌출해있고 두 뺨이 쏙 들어간 얼굴의 장춘교(張春橋),안경 너머 반짝이는 눈빛을 머금고 있는 검은 눈썹의 강청, 안경 너머 부종이 있는 듯한 작달막한 얼굴의 진백달(陳伯達),유일하게 여태 한 번도 안경을 써본 적이 없는 둥글고 통통한 얼굴의 요문원(姚文元) 모두 공손하게 모택동을 향하여 있었다. 고분고분하였다.

그들은 북경의 대학과 대학교, 그리고 중등학교 학생들의 반공작조(反工作組)와 공작조(工作組)가 학생을 진압하는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강청이 가장 말을 많이 하였다. 그 다음으로 장춘교와 강생이 많은 말을 하였다. 진백달은 말이 많지 않았다. 요문원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이 많든 적든 모택동을 둘러싼 이들은 모두 충성스런 전투조직이었다.

빙 돌며 올라가는 담배 연기를 사이에 두고 그들의 눈은 조심스레 모택동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모택동의 반응을 주시하였다. 대군을 맞아 임전태세를 갖추었다는 보고를 약간 눈을 찡그리는 듯한 모양으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고 나서도 모택동은 유달리 침착하였고 편안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을 텐데. 간혹 세세한 부분 한두 개를 묻기는 하였다. 예를 들어 북경 반공작조의 학생들이 반혁명으로 몰렸는가 하는 문제와 같은. 강청이 들고 있던 자료를 훑어보고는 곧바로 대답하였다. “24개 대학, 대학교의 1만여 명의 학생들이 반혁명으로 몰렸고 3만여 명이 다른 성격의 비판투쟁을 당했습니다.”

모택동은 담배를 피우면서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아 계속해서 보고를 들었다. 요원 한 명이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유소기(劉少奇) 동지가 왔습니다. 문화대혁명의 상황을 보고 드린답니다.” 강청 등은 보고를 멈췄다. 미동도 하지 않고 모택동을 바라봤다. 모택동은 손을 들고 손등으로 밖을 향해 내저었다.

모택동에게 말을 건넸던 요원은 늘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키가 크고 늘씬한 간호사 이수지(李秀芝)였다. 젊은 여성으로 강청조차도 감히 경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쉬셔야 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모택동은 눈을 약간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반대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수지는 총총걸음으로 객실을 나섰다.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는 듯이.

보고는 계속 진행됐지만 모택동 머리에는 푸대접받고 무시당했던 한 가닥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올랐다. 눈앞에 자신을 눈꼴셔했던 유소기의 애매한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에 흩날리는 구름과 연기처럼 역사적인 사건이라 부를 만한 장면이 눈앞에서 스쳐지나갔다.

   
▲ 모택동(毛澤東), 임표(林彪)와 홍위병(紅衛兵)

1964년 12월, 바로 중공중앙(中共中央)이 사청공작(四清工作) 회의를 소집했었다. 당시 회의를 소집하면서 회의를 주관한 중공중앙 총서기 등소평(鄧小平)은 모택동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모택동은 화가 났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등소평은 전화로 해명하였다. “오늘은 일반적이 업무 회의입니다. 주석께서 요 며칠 건강이 다소 좋지 않다고 들어서 먼저 알려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자 모택동이 말했다. “이 회의는 내가 참석해야 합니다. 할 말도 있고요. 건강이 조금 좋지 않다고 해서 회의에 참석 못할 지경은 아닙니다.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전선에서 물러서는 법은 없잖소.”

회의에 참석하니 유소기, 등소평 일파가 모두 모여 있었다. 모택동이 발언하였다. 아주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어투였다. “현재 농촌의 문제는 실제로 보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노선의 투쟁입니다. 무산계급과 자산계급 두 계급사이의 투쟁이고. 이것이 중요합니다.” 날카롭고 엄숙하게 치당(治黨) 치국의 근본을 강조하였다.

그때 국가주석 겸 당 부주석을 맡고 있던 유소기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농촌의 모순은 여려 종류가 있습니다. 간부와 군중간의 갈등, 사청(四淸, 네 가지 정돈, 즉 정치, 조직, 경제, 사상 정돈을 말하며 계급투쟁을 기본으로 한다는 전제 하에 발동한 사회주의 교양운동)과 사불청(四不淸) 간의 갈등, 구체적인 갈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어떤 갈등이냐 하는 문제는 그 갈등의 원인을 가지고 해결하여야 됩니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유소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고집스레 대립하는 모양새를 표출했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모택동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말을 자르다니. 공개적으로 대치 국면을 만들겠다는 심산이 아니던가. 의도가 분명해졌다. 모택동은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노선 투쟁의 관점을 계속해서 강조하였다. 그와 동시에 자신은 중공중앙에서 이미 제외돼 있음을 깊이 느꼈다. 그들 그룹은 유소기의 관점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 사이에는 이미 의견이 상당히 일치돼 있다는 분위기를 느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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