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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09)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문화대혁명’시기 유소기를 무너뜨릴 때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중국의 동지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외국의 공산당원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평가를 함에 있어 전후가 모순된다는 것은 정치적 원인에 의한 것이지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님을.

 

 

“둘째는 등소평.” 모택동은 두 번째 손가락을 꼽았다. 현장에 있던 동지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명성이나 직무로 볼 때 분명 주은래를 꼽을 줄 알았는데 등소평을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정치성이 강하죠. 사원행방(四圓行方, 지식은 해박하고 다 갖춰져 있으며 일을 처리함에 정직하고 소홀히 하지 않음)이라 할까. 원칙성이 있으면서 융통성이 남다르고.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지요. 외유내강이지요. 발전성이 많아요.”

 

흐루쇼프가 갑자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나도 그 사람 대단하다 느꼈어요. 쉽게 상대하지 못하겠더라고. 문제를 관찰하는 것도 예리하고…….” 흐루쇼프는 입을 다물고 손시늉을 하면서 확고하며 과단성이 있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모택동도 웃었다. 등소평이 양당 담판 중 소련사람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택동은 손가락을 세우면서 강조하였다. “이후 그가 여기에 오거들랑 내가 여기에 온 것과 같이 대해주세요. 내게 대해주는 것처럼 그에게도 대해주시구려.”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동지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모택동은 등소평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결점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택동은 계속해서 세 번째 손가락을 꼽았다. “세 번째는 주은래. 이 동지는 큰 국제무대에서 나보다도 뛰어나게 활동하고 있지요. 각종 복잡한 갈등도 잘 처리하고요. 그런데 주은래의 정치적인 약점은……, 그런데 좋은 사람이죠.”

 

흐루쇼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모두 60세가 넘어서, 우리는 코시긴(Kosygin)에게 장관자리를 넘겨줘서 회의 주석 직무를 맡겼지요. 미코얀(Mikoyan)도 정치에 있어 원칙성이 그리 많지 않고. 누굴 빼라고 하면 어려워하고……, 그런데 좋은 사람이지요.” 흐루쇼프가 입술을 핥고서는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듯이 보충하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내가 전체 국면을 관리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모택동은 벌써 네 번째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주덕 동지는 나이가 많아요. 덕망이 높죠.” 모택동이 좀 쉬고 나서 힘주어 말했다. “덕망이 높긴 한데. 그에게 큰일을 맡겨 처리하도록 기대하지는 마세요. 나이는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법이니. 아무튼 이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라도 여기에 오게 되면, 나를 대하듯이 맞이해 주세요. 당신들 친구처럼 대해주시고.”

 

“당연하지요. 분명 그렇게 할 겁니다.” 흐루쇼프는 집게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실제로 당신들은 우리들의 친구니까.”

 

모택동이 내린 평가를 보면 말은 간결하나 뜻은 모두 들어 있었다. 확실히 충분하면서도 사실적이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주은래는 여러 차례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통솔력을 갖춘 인재가 아니다.”

 

 

어느 날 인사 분담을 논의하는 회의석상에서 모택동은 주은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주은래 동지, 당신이 하면 어떻소?”

 

주은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주석님, 나를 잘 알고 계시잖소. 나는 통솔할 능력이 있는 인재가 아닙니다. 난 집안일을 잘 정리하면 되고. 통솔자는 못됩니다…….”

 

동필무(董必武)가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총리께서는 우리나라의 큰 살림꾼이지요.”

 

이런 평가를 어떻게 이해하여야할까?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 어찌 그렇게 일치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을까? 어쩌면 박일파(薄一波)의 기억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50년 6월 6일, 중공 7차 삼중전회가 북경에서 개최되었다. 회의의 주요 내용은 모택동의 『국가 재정경제 상황의 기본적 호전 쟁취를 위한 투쟁』에 대한 보고였다. 그 때문에 회의기간 중 주은래는 중재위(中財委) 박일파와 개인적으로 물가안정 등의 문제를 의논한 적이 있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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