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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은 왜 임표를 죽여야 했는가?(3)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07)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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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0  09: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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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표는 왜 도망가야만 했는가? 몇 가지 행적을 보면 임표는 원래 도망갈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어쩌면 임표는 운명이 주어지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결코 자아비판을 하지 않았다. 모택동이 마음대로 처리하면 어떻게 하냐고? 지가 알아서 하라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고 보인다.

   

다시 남쪽 광주로 도피하려고 했다는 것도 단지 복안이었을 따름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광주로 도피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그의 ‘사대금강’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계획을 잡은 이들은 섭군과 임립과였을 것이고. 임표도 동의하였을 것은 분명하다.

임표가 탔던 256호 비행기에 탑승한 것도 분명 수수께끼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북경의 임두두에게 알린 것은 분명한데 반응이 너무 늦었다. 왜 그렇게 뜸을 들였을까?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둘째, 북경에서는 임두두에게 256호 비행기를 타라고 하였을 텐데도 임두두는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셋째, 비행기를 몰았던 기장은 반경인(潘景寅)이다. 20세기 80년대에 등소평(鄧小平)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경인은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칭찬하였다. 그는 ‘7.20사건’(무한〔武漢〕사건) 때 모택동 전용기 기장이었다. 모택동도 그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당시 모택동은 그를 가리켜 모안영(毛岸英, 모택동의 장자로 6․25사변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다)과 닮았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이렇듯 구체적인 상황을 보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아직까지도 새로 발굴된 자료들이 없고.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임표사건(林彪事件), 즉 ‘9.13사건’은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름대로 요약한다.

중국공산당 부주석 임표(林彪)가 주석 모택동(毛澤東) 암살을 계획했으나 실패해 공군기로 도망가다가 몽골에서 추락사한 사건이다. 1972년에 중국 당국이 공표하였다. 공산당 정권 수립 이래 중국 최대의 정치사건으로 기록돼있다.

임표는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사상’을 절대화하고 인민해방군을 지휘해 국가 주석인 유소기(劉少奇)를 실각시키고 모택동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는데 앞장섰다. 그 공으로 중국공산당 구전(九全)대회(1969년)에서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모택동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는 임표파, 강청(江靑)이 주도하는 공산당 극좌파,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주은래파 등 세 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임표는 이중 강청이 주도하는 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을 확고히 하려고 시도했다가 오히려 모택동의 견제를 받고 실각하였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이 사건을 1973년 중국공산당 십전(十全)대회에서 정치보고를 통하여 발표한 총리 주은래는 ‘임표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70년 8월 제9기 중앙위원회 제2차 총회에서,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미수에 그쳤다. 이어 1971년 3월 반혁명 무장쿠데타 계획인 『571 공정기요工程紀要』를 입안하였고, 9월 8일 반혁명 무장쿠데타를 일으켜 주석 모택동을 모살하고, 별도로 중앙정부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음모가 실패로 끝난 후, 임표는 9월 13일 몰래 비행기를 타고 소련 수정주의 진영으로 도피, 당과 나라를 배반하려다가 몽골의 운데르한에서 추락해 죽었다.”

여기의 『571 공정기요』의 ‘571(우치이)’는 무장봉기를 뜻하는 ‘우치이(무기의〔武起義〕)’의 발음을 빗댄 말이며, 유포되어 있는 ‘기요’에 의하면 마오쩌둥을 ‘현대의 진시황제’라 하여 그를 타도하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 임표사건에는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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